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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이 피 흘려 사신 그 한 영혼을 내 교만으로 짓밟으면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종교적 자기기만(마취제)에 빠져 양심의 화인을 맞은 상태로 살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이 피 흘려 사신 그 한 영혼을 내 교만으로 짓밟으면서도 , "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용서해 주실 것 " 이라는 종교적 자기기만 ( 마취제 ) 에 빠져 양심의 화인을 맞은 상태로 살아가서는 아니 됩니다 !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 누가복음 17:1-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 장 1-4 절 말씀을 읽고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몇 개의 헬라어 단어과 문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 단어들과 문장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a)    첫째 헬라어 단어는 , “σκάνδαλα”( 스칸달라 )(“ 실족하게 하는 것 ”) 입니다 (1 절 ).   (i)                   누가복음 17 장 1 절에 복수형태인 'σκάνδαλα( 스칸달라 )' 로 등장하며 , 바로 뒤이어 1 절 끝과 2 절에 동사 형태인 ' 스칸달리세 (σκανδα...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삶

 

부자거지 나사로의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더라 이에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19-3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6 19-3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이미 개로 나눠서 묵상했습니다: (a) “ 부자 땅에서의 ’ [말씀 묵상 제목: "세상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껍데기의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은혜와 행실의 옷을 입었는가?"(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4306375603)] (b) “거지 나사로 땅에서의 ’[말씀 묵상 제목: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없는, 영적인나사로들입니다.”(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4307459422)].  오늘은 마지막으로 부자 거지 나사로의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삶을 대조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거지 나사로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i)                  거지 나사로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삶에 관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에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22), “…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3), “…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25).

 

·         여기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22) 말씀은 헬라어로 πενεχθναι ατν π τν γγέλων ες τν κόλπον βραάμ”(아페네크데나이 아우톤 휘포 앙겔론 에이스 콜폰 아브라암)인데 πενεχθναι”(아페네크데나이) 단어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어는 나사로가 맞이한 사후 세계의 상태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역동적이고 주권적인 단어입니다.   단어의 깊은 의미를 어원, 시제, 그리고 영적 맥락으로 나누어 인공지능이 이렇게 설명해줬습니다(인터넷):

 

1.      어원적 의미: "분리와 안전한 이동"

 

단어는 개의 단어가 합쳐진 합성 동사 ποφέρω(아포페로)에서 나왔습니다:

 

“ἀπό”(아포): "~로부터 멀리", "~로부터 분리되어"라는 뜻의 전치사입니다.

 

“φέρω”(페로): "짊어지다", "이동시키다", "가져가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 어원적인 뜻은 "있던 곳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다"입니다.  나사로는 평생 부자의 대문 앞이라는 비참한 자리에 묶여 있었지만, 죽음과 동시에 고통의 장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πό) 새로운 처소로 운반(φέρω)되었음을 뜻합니다.

 

2.      문법적 특징: 강제성과 주권 (수동태 부정사)

 

단어의 형태는 '과거 수동태 부정사'입니다.  여기서 수동태라는 점이 영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나사로의 무력함: 나사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낙원에 가거나 아브라함의 품을 찾아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상에서나 죽을 때나 철저히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수동태는 이동이 '천사들을 부리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능력' 의해 이루어졌음을 뜻합니다.  나사로는 가만히 있었으나, 천사들이 그를 거룩한 힘으로 '들어 올려' 옮겼습니다.

 

3.      신학적·영적 의미: "장례와 호위의 대조"

 

문맥 속에서 단어를 보면 숨겨진 영적 위로가 드러납니다.

 

부자와의 대조: 22 후반부를 보면 부자는 죽어서 "장사되매"(τάφη, 에타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자의 시신은 위의 화려한 무덤에 갇혔지만, 나사로의 영혼은 천사들에 의해 하늘로 옮겨졌습니다(πενεχθναι).

 

존엄한 호위: 세상은 나사로를 쓰레기처럼 취급했고 그의 죽음을 아무도 돌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영계의 황실 호위대인 천사들을 보내셨습니다.  왕의 가마를 태우듯 그를 정중하고 안전하게 영원의 세계로 운반하신 것입니다.

 

결국 πενεχθναι”(아페네크데나이)(“받들려”) 지상의 비참했던 삶과 고통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이자,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으로 영원한 안식처에 '안전하게 착륙했음' 선포하는 단어입니다.

 

-          저는 πενεχθναι”(아페네크데나이)(“받들려”) 단어외에도 “τν κόλπον βραάμ”( 콜폰 아브라암)(“아브라함의 ”)(22, 23)이란 문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πενεχθναι”( 아페네크데나)(“받들려”) 고통으로부터의 극적인 탈출과 이동의 과정을 보여준다면, “τν κόλπον βραάμ”( 콜폰 아브라암)(“아브라함의 ”)이란 문구는 나사로가 마침내 도달한 영원한 사후 세계의 본질과 상태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핵심 표현입니다.  뜻을 단어의 본래 의미와 유대적 문화, 그리고 깊은 영적 의미로 나누어 인공지능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 줬습니다(인터넷):

 

a.      단어 본연의 의미와 시각적 이미지

 

“τν κόλπον” ( 콜폰): 본래 사람의 '가슴', '', 옷의 앞자락이 겹쳐져 생기는 ' 안의 공간' 뜻합니다.

 

βραάμ” (아브라암):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름입니다.

 

문구의 시각적 이미지는 단순히 공간적인 장소(: 천국, 낙원)라는 개념을 넘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품에 나사로를 안아주고 있는 상태" 뜻합니다.  이는 사후 세계가 차가운 공간이 아니라, 인격적인 온기와 사랑이 가득한 곳임을 시사합니다.

 

b.     1세기 유대 문화로 보는 2가지 배경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표현은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가지의 강력한 문화적 비유였습니다.

 

천국 잔치의 가장 영예로운 상석 (가장 친밀한 자리)

 

당시 유대인들은 식사나 잔치를 의자에 앉지 않고, 왼쪽 팔꿈치로 바닥을 기댄 비스듬히 누워서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자세 때문에 뒤에 누운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의 가슴() 쪽에 머리를 두게 됩니다.

 

잔치에서 주인의 (가슴) 기대어 누울 있는 사람은 잔치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자 가장 귀한 귀빈(상석)이었습니다(요한복음 13 23절에서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이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던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문화적 반전: 평생 부자의 식탁 아래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조차 제대로 먹던 거지 나사로가, 천국 잔치에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상 아브라함의 바로 옆자리() 누워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유대교 외경과 랍비 문헌의 관용구

 

당시 유대인들의 사후세계관(: 외경 4마카베오서 )에서 '아브라함의 ' "의인들이 죽은 영혼이 들어가는 낙원의 낙원, 가장 안전한 처소" 가리키는 대명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의인이 죽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를 환영해 준다" 믿었습니다.

 

c.      신학적·영적 의미: 나사로가 누린 영원한 사후의

 

문구를 통해 본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나사로의 영원한 삶의 실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철저한 위로와 보상: 위에서 나사로는 온몸에 헌데(종기) 나고 개들이 와서 핥을 정도로 부정한 취급을 받으며 누구에게도 따뜻한 위로나 포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후 세계에서는 믿음의 조상의 품에 안겨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치유받고 위로받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적 신분의 회복: 부자는 나사로를 대문 앞에 방치하며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참된 믿음의 사람)이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영원한 안전함: 성경에서 누군가의 '' 안긴다는 것은 외부의 어떤 위험이나 고통도 범접할 없는 완벽한 보호를 뜻합니다.  나사로는 이제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며, 외롭지 않은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았습니다.

 

결국 πενεχθναι (천사들에게 들려 완전히 옮겨져) τν κόλπον βραάμ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다)라는 표현의 조합은, 땅에서 비참하게 버려졌던 영혼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인해 어떻게 우주에서 가장 존귀하고 따뜻한 위로의 자리로 격상되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성경의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         마지막으로, 저는 거지 나사로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삶을 생각할 아브라함 부자에게 이제 (나사로) 여기서 위로를 받고 …”(25)라고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문장은 헬라어로 “νν δ δε παρακαλεται”(뉘인 호데 파라칼레이타이)인데 짧은 문장은 거지 나사로가 사후 세계에서 누리고 있는 영원한 안식의 실체를 가장 강력하게 선언하는 구절입니다(인터넷):

 

1.      “νν” (뉘인): "그러나 이제는" (시간의 대역전)

 

의미: '지금', '현재' 뜻하는 시간 부사입니다.

 

구체적 깊이: 단어는 나사로의 인생이 땅에서의 과거 '사후 세계의 현재' 완벽하게 동강 났음을 선언합니다.  세상에 있을 그의 시간은 끝없는 배고픔과 종기의 고통, 무시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을 통과한 "지금ν)"(“이제”)부터는 과거의 모든 고통이 완전히 단절되고, 차원이 다른 새로운 영원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2.      δε” (호데) : "여기서는" (장소의 대역전)

 

의미: '이곳에', '여기서' 뜻하는 장소 부사입니다.

 

구체적 깊이: 여기서 말하는 여기 앞서 언급된 아브라함의 ”(낙원) 가리킵니다.  나사로가 살아남기 위해 매일 누워 있어야 했던 처참한 장소는 '부자의 대문 '이었습니다.  그곳은 개들이 와서 상처를 핥고 부스러기를 기다리던 수치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durla”(δε)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믿음의 조상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우주에서 가장 안전하고 영예로운 장소로 최종 처소가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낙원이라고 말한 것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a.      낙원”(Paradise) 성경적 정의

 

성경에서 낙원(그리스어: παραδεισος, 파라데이소스) 구원받은 의인들의 영혼이 죽음 직후에 들어가는 영광스러운 처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천국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 회개한 강도에게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3:43) 하신 바로 장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영적으로 이끌려 올라갔던셋째 하늘역시 낙원(고후 12:4)으로 표현됩니다.

 

b.     아브라함의 낙원을 뜻하게 되었는가?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천국의 주인/대표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믿음의 조상이자 구원받은 자들의 영적 아버집니다.  유대인들의 사상 속에서천국(낙원) 들어간다 것은 조상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간다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머무는 장소 자체가 바로 낙원을 의미했습니다.]

 

3.      “παρακαλεται” (파라칼레이타이) : "위로를 받고 있다" (상태의 대역전)

 

어원: “곁에 뜻하는 “παρά”(파라) 부르다 뜻하는 “καλέω”(카레오) 합쳐진 동사입니다.  , 누군가를 곁으로 가까이 불러 품에 안고 달래다라는 시각적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문법적 비밀 (현재 시제): 헬라어에서 현재 시제는 '지속성' '반복성' 가리킵니다.  나사로가 받은 위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사후 세계에서 그의 삶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끊임없이 위로가 마르지 않고 계속되는 상태임을 문법적으로 보여줍니다.

 

문법적 비밀 (수동태): 나사로 스스로 위로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아브라함에 의해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위로를 '당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평생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했던 영혼이, 하늘의 주권자로부터 완벽하게 수용되고 치유받는 상태입니다.

 

결국 문장은 지상에서의 비참했던 '그때, 자리' 삶은 완전히 끝났고, '지금, 이곳 낙원'에서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토록 마르지 않는 치유와 평안을 누리고 있다라는 나사로의 영원한 운명을 확증하는 선언입니다.

 

(b)   부자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i)                  부자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삶에 관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16:22-24).  저는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에 2가지 단어나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첫째는, “음부라는 헬라어 단어 δ”(하데스)입니다(23).  단어의 의미가 무엇이고 거지 나사로가 천사들에게 받들려 들어간 아브라함의 ”(낙원) 어떻게 되조가 되는지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답변을 하였습니다(인터넷):

 

1.      δ” (하데스) 어원과 구체적 의미

 

기본 형태: 단어의 주격 형태는 δης (하데스)이며, 본문(23)에서는 전치사 ν(, ~안에서) 결합하여 역격(처소격) 형태인 δ (하데) 사용되었습니다.

 

어원적 유래: 고대 헬라어 어원상 '보이지 않는 ' 또는 '보이지 않는 세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스올(Sheol)' 헬라어로 번역할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성경에서 '하데스' 단순히 육체가 묻히는 무덤이 아니라,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는 사후 세계' 가리킵니다.  특히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의 맥락에서 이곳은 최종 심판(백보좌 심판) 있기 전까지, 하나님을 거역한 죄인들의 영혼이 격리되어 형벌과 고통을 겪는 중간 처소(임시 감옥)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부자가 "고통 중에" 눈을 들었다는 표현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여기서 중간 처소(임시 감옥)”이란 연옥(Purgatory)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a.      연옥과 본문의 '음부' 절대 다른 이유

 

가톨릭의 연옥은 "죄가 남아있는 영혼이 천국에 가기 ,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와 공로를 통해 죄를 씻는(정화하는) " 뜻합니다.  , 운명이 바뀔 있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본문(누가복음 16) 음부는 연옥과 정반대입니다.

 

신분 변경 불가: 26 말씀처럼 "너희와 우리 사이에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건너가고자 하되 없다" 선언합니다.

 

영원한 형벌의 확정: 이곳에 들어간 부자는 죄를 씻거나 구원받을 기회가 완전히 박탈된 상태로, 지옥의 형벌이 이미 확정된 상태입니다.

 

b.     '중간 처소'라는 신학적 용어의 진짜 의미

 

정통 개신교 주석가들이중간 처소(State of Intermediate)’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부활과 최종 심판의 시점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 예수님이 재림하실 모든 사람이 육체로 부활하여 최종 심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현재의 음부/낙원 (중간 상태): 지금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히고, 영혼은 즉시 낙원(천국)이나 음부(지옥) 갑니다.  부자는 이미 음부에서 지옥의 고통을 100% 그대로 겪고 있습니다.

 

장차 영원한 지옥 (최종 상태): 세상 종말의 , 음부에 있던 영혼들은 육체와 결합하여 부활한 , 백보좌 심판을 거쳐 최종적인 '불못(Gehenna, 게헨나)' 영원히 던져지게 됩니다(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 부자가 있는 '음부' 고통의 수준이나 형벌의 성격이 지옥과 다를 바가 전혀 없지만, 역사의 마지막 날에 임할 최종적인 불못 심판 단계라는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뿐입니다.  부자의 운명은 이미 낙원으로 없도록 100% 지옥으로 확정된 상태입니다(인터넷).

 

2.      아브라함의 ” vs “음부(하데스)” 4가지 극적인 대조

 

장소는 공간적, 영적, 환경적으로 완벽한 대척점에 있습니다.  본문 속에서 발견할 있는 대조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적 매장(화려함) vs 영적 격리(비참함)

 

부자의 삶과 죽음: 부자는 죽어서 세상의 법도에 따라 화려하게 "장사되매"(τάφη) 땅속 무덤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눈을 곳은 어둡고 단절된 음부(δ)였습니다.

 

나사로와의 대조: 나사로는 위에서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해 버려졌을지 모르나, 그의 영혼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의 아브라함의 품으로 올라갔습니다.  인간의 화려한 장례식이 영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함을 대조합니다.

 

철저한 고립(소외) vs 최상의 친밀함(공동체)

 

음부: 부자는 음부에서 철저히 혼자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화할 동료도, 위로해 사람도 없이 고립되어 멀리 있는 아브라함을 바라볼 뿐입니다.

 

아브라함의 : 이곳은 믿음의 조상과 가슴을 맞대고 누워 있는 친밀한 잔치의 자리입니다.  나사로는 이상 외롭지 않고 영적인 가족 공동체 안에서 환대받고 있습니다.

 

불꽃의 타는 괴로움(결핍) vs 마르지 않는 위로(만족)

 

음부: 부자는 "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며 손가락 끝에 묻은 방울의 자비를 구하는 극심한 갈증과 결핍을 겪습니다.   위에서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던 자가 사후에는 가장 비참한 결핍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 나사로는 어떤 배고픔과 목마름도 없이, 하나님의 임재 곁에서 영원한 "위로를 받고(παρακαλεται)" 있습니다.  모든 상처와 결핍이 완벽하게 해갈된 상태입니다.

 

낮아짐과 올려짐의 위치적 대조

 

음부: 부자는 고개를 "눈을 들어 멀리" 쳐다보아야 했습니다.  이는 음부가 영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낮고 어두운 심연의 장소임을 시사합니다.

 

아브라함의 : 나사로가 있는 곳은 부자가 우러러보아야 만큼 영광스럽고 높은 영적 처소(낙원)임을 시각적으로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결국 δ (음부)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인간의 부와 명예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영적 파산과 형벌의 장소'입니다.  평생 자기를 신으로 삼고 이웃을 외면했던 부자는, 사후에 대가로 완벽한 결핍과 고독 속에 갇히게 것입니다(인터넷).

 

·         둘째는, “고통중이라는 헬라어 문장 πάρχων ν βασάνοις”(휘파르콘 바사노이스)(23) 괴로워하나이다라는 헬라어 단어 δυνμαι”(오뒤노마이)(25)입니다. 

 

1.      πάρχων ν βασάνοις” (휘파르콘 바사노이스) : "고통 중에 있으면서"

 

구절은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을 겪기 시작한 '객관적인 상태' 묘사합니다.

 

πάρχων”(휘파르콘): '~ 존재하다', '~ 상태에 있다'라는 뜻의 동사 πάρχω”(휘파르코) 현재 분사입니다.

 

구체적 의미: 단순한 일시적 느낌이 아니라, 부자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라는 환경에 '완전히 잠겨 있고 지속되고 있음' 뜻합니다.  그의 삶의 기반이 위의 '호화로움'에서 음부의 '고통'으로 완전히 바뀌어 굳어졌음을 보여줍니다.

 

ν βασάνοις”( 바사노이스):

 

“ἐν”() '~ 안에'라는 공간적 전치사입니다.

 

“βασάνοις”(바사노이스) '바사노스(βάσανος)' 복수 처소격입니다.   단어의 원래 뜻은 금의 순도를 시험하는 '시금석(Touchstone)'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진실을 자백받기 위해 가하는 '고문', '혹독한 형벌', '극심한 고통' 뜻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 의미: 부자가 있는 곳은 단순한 정신적 후회의 장소가 아니라, 몸과 영혼을 옥죄는 혹독한 고문과 형벌이 가해지는 격리소 같은 공간(ν)임을 생생하게 출근합니다.  단수가 아닌 '복수형' 쓰여, 사방에서 밀려오는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고통을 시사합니다.

 

2.      δυνμαι”(오뒤노마이) : "내가 괴로워하나이다"

 

단어는 24절에서 부자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아브라함에게 부르짖을 사용한 동사입니다(25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인칭 단수인 δυνσαι 변형되어 쓰입니다).

 

원형 : “δυνάω”(오뒤나오) 현재 수동태/중간태 1인칭 단수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 "애가 타다"라는 뜻입니다.

 

구체적 의미: 단어는 단순한 아픔을 넘어내면에서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슬픔과 절망, 그리고 육체적인 타는 듯한 갈증 결합한 단어입니다.  부자가 "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한다고 고백할 , 불길이 주는 외적인 뜨거움과 더불어, 기회가 지나가 버렸다는 내면의 처절한 절망감이 단어 하나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현재 시제의 의미: 역시 현재형으로 쓰여, 부자의 부르짖음과 고통이 끝나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나사로의 위로(παρακαλεται) 부자의 괴로움(δυνσαι) 문장별 대조

 

a.      관계의 대조: ‘하나님의 고독한 고문대

 

나사로의 위로: ‘파라칼레이타이 하나님이 자신의 곁으로 가까이 불러 품에 안아주시는 인격적인 친밀함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부자의 괴로움: 반면 부자가 처한바사노이스 마치 진실을 자백받기 위해 혹독한 형벌을 가하는 고문대 위에 홀로 격리된 것과 같은 철저한 고립을 의미합니다.

 

b.     환경의 대조: ‘완벽한 채워짐타들어 가는 결핍

 

나사로의 위로: 지상에서 겪었던 모든 배고픔과 상처, 소외의 눈물이 낙원의 신령한 은혜로 완벽하게 치유되고 해갈된 상태를 뜻합니다.

 

부자의 괴로움: 반면 부자의오뒤나마이 손가락 끝에 묻은 방울조차 허락되지 않아, 영혼과 육체가 안팎으로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극심한 갈증과 심판의 불꽃을 뜻합니다.

 

c.      시제의 공통점과 운명의 대조: ‘영원한 평안영원한 형벌

 

나사로의 위로: 단어의현재 시제 낙원에 도달한 나사로에게 임한 하나님의 위로가 끊어지지 않고 영원토록 지속되는 상태임을 선언합니다.

 

부자의 괴로움: 부자가 겪는 괴로움 역시현재 시제 기록되어, 그가 받는 형벌과 절망의 고통이 중간에 멈추거나 경감되지 않고 영원히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됨을 보여줍니다.

 

결국 상태의 대조는,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눈물 흘렸던 자에게는 끝없는 영원의 위로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웃을 외면했던 자에게는 돌이킬 없는 영원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후 세계의 엄중한 법칙을 문장마다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인터넷).

 

(ii)                부자의 영원한 사후의 세계에서의 아브라함과이 대화 내용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27-31). 


·         부자와 아브라함의 사후 대화는 "어떻게 해야 영원한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얻을 있는가?"라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선포하는 핵심 결론부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지 핵심 포인트로 명확하게 정리해준 것입니다(인터넷):

 

1.      사후 세계의 참상과 뒤늦은 간구

 

부자는 지상에 남은 다섯 형제만큼은 자신이 겪는 음부의 고통(바사노스) 오지 않기를 바라며, 죽은 나사로를 지상으로 보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합니다.

 

핵심 의미: 간구는 역설적으로 사후 세계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하고 실재적인지를 부자의 입을 통해 증언합니다.  또한 죽은 뒤에는 아무리 처절하게 후회하고 간구해도 자신은 물론 타인의 운명조차 바꿀 없다는 기회의 완전한 상실을 보여줍니다.

 

2.      구원의 절대 기준: "모세와 선지자들" (기록된 성경 말씀)

 

아브라함은 부자의 요청을 거절하며, 지상에 있는 형제들에게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어야 한다" 답합니다.

 

핵심 의미: '모세와 선지자들' 구약 성경,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유대적 표현입니다.  구원을 얻고 회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진리는 이미 성경에 충분히 주어져 있으므로,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이 필요 없다는 '성경의 충분성' 선언합니다.

 

3.      기적의 한계와 완악한 인간의 마음

 

부자는 "죽은 자가 살아나서 가면 회개할 "이라고 재차 주장하지만, 아브라함은 "성경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볼지라도 결국 믿지(권함을 받지) 않을 "이라고 단언합니다.

 

핵심 의미: 인간의 회개와 믿음은 눈앞에 보이는 기적이나 초자연적 체험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완악한 마음은 어떤 영적 기적으로도 깨뜨릴 없습니다.  실제로 훗날 예수님께서 다른 인물인 '나사로' 죽은 가운데서 살리셨을 때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과 나사로를 모두 죽이려 했습니다.

 

최종 요약:

대화의 최종 결론은 "구원은 오직 살아있는 동안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성경) 듣고 회개할 때만 가능하다" 것입니다.  기적을 쫓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경 말씀을 겸손히 듣고 순종하는 삶이 영원한 사후 세계를 결정짓는 유일하고 확실한 길임을 예수님은 대화를 통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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