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들여다 보자!
1. 내가 가장 먼저 알아야만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아 인식
2. 내가 가장 잘 지내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자아상
3.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기 정직
4. 내가 가장 변화시켜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자기 성장
5.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나 자신이다: 자기 책임감
[존 멕스웰, "함께 승리하는 신뢰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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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주 성찰해 봐야 한다. 마치 거울을 자주 들여다 보는 여인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영적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에 자주 비춰보는 자아반영(self-reflection) 및 자아성찰(self-examination)의 시간을 순간 순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 즉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을 가르키지 못하고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본성을 주님 앞에서 내려놓는 잘 익은 벼 이삭과 같은 그리스도인 (참고: "잘 익은 벼 이삭같은 그리스도인", www.vpcla.com 자유계시판에 실린 글), 즉 겸손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교만한 자는 영적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을 못보고 다른 이들을 보이는게 말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자기 주제를 알아가지 못하고 이 말씀은 '저 형제, 자매'가 필요한 말씀인데 하면서 상대방의 모습을 보는 것인지...
작가 시드니 해리스는 "자신을
편하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남들과도 편하게 지내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존 맥스웰은 덧붙혀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망친다"고 말하고 있다. 자아상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과의 관계가 주님 안에서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도 건강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님 안에서 자신과의 관계 가운데 용서라는 진리를 믿고,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을 진심으로 또한 쉽게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았다는 진리에 날마나 깊이 잠기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은혜라는 축복보다 개인적 관점의 율법의 잦대로 상대방을 마음으로 또한 생각으로 재고 비판하고 정죄할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다는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를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원수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더 이상 삐뚤어진 자아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형제, 자매들을
삐뚤어진 눈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눈으로 치체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모든 이들과도 편안하게 또한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다.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 모든 사람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자기의 결점, 잘못, 문제 등을 보면서 인정하고 하나님과 그리고는 사람에게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가 나의 결점, 잘못, 문제 등을 고백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한다면 그 마음은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자신을 비춰본 후 정직하게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죄 없다 하셨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상처 입기가 두려운 것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 혹은 흔적을 지니기를 왜 싫어하는가? 과연 이것이 하나님 중심된 신앙생활인가 아니면 사람 중심된 삶인가? 우리는 더 이상 비겁하게 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나 자신에게 정직하자. 거룩한척, 믿음 있는 척, 경건한 척 하지 말자. 더 이상 사람들에 비춰진 나의 모습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 및 칭찬 받아보았자 무슨 소용인가? 하나님께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고백하며 나아가자. 그런 후 지체들에게도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고백하며 나아가자. 그러한 나의 모습을 이해해 주고 받아 주며 더 나아가서 그러한 나의 모습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자가 진정한 주님 안에서 친구이다. 그러한 친구가 그립지 않은가? 그러한 친구를 만들어 가는 개척자가 되자.
참으로 변하지 않는 사람은 누군인가? 다른 사람 생각하고 가리킬 필요없다. 쉽게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세상에서 제일 변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보는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도 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문제를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돌릴 필요가 없다.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한다. 적어도 내가 변하면 다른 사람 바라보는 시각(관점)이 변하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저 사람은 왜 아직까지도 변하기 않고 있는가'하면서 한탄하면 세월 허송할 것인가? 그럴 시간 있으면 내 자신이나 부지런히 거울 들여다 보면서 변화에 힘을쓰자. 인간관계에 왜 이런 저런 문제들이 많다고 느껴지고 힘들어하며 스트래스를 받는 것인가? 문제의 원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그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보라. 스스로 무덤파는 격이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다고 전제하면서 한번 해결점을 찾아보자. 그리할 때 이젠 문제가 내 자신의 변화 및 성숙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도 업그래이드 되는 축복을 경험할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책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영적 거울인 말씀에 자기 자신을 비춰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러므로 자아성찰을 게을리하면서 부지런히 남의 결점만을 생각하며 찾는 사람은 참으로 무책임한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한다. 그렇게도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남들에게만 무대포로 손가락질 하면서 언행 모두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결코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러헌 갓난아기 신앙생활을 내려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웃 사랑할 줄 모르고 자기만 사랑하면서 자기 세상에서 왕으로 군림하며 살 것인가? 어찌하여 거울이 앞에 있어도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인가? 영적 장님이 따로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야 한다. 자기 자신의 변화를 추구하자. 더 이상 저 사람. 이 사람이 변화되야 한다고 생각하며 말하지 말자. 내가 변화면 문제는 해결된다. 내가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면 우리 가정 천국화 이룰 수 있다. 나의 언행이 더욱더 예수님을 모습을 닮아가면 내 직장, 사업, 섬기는 교회가 천국화 이루어 갈 것이다. 천국의 자녀들 답게 살자.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제임스 목사 나눔
(2006년 10월 11일 끝없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주님께서 승리케 하실 줄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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