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가치인 게시물 표시

겨자씨 한 알 같은 살아있는 믿음 (눅 13:18-19)

  https://youtu.be/-IF9LlaROSA?si=sitl9oecJuVNU27V

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4): 광야는 고난의 축복을 깨닫게 해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민수기 20장 2-13절)

광야는 기회의 장소입니다 ! (4)         [ 민수기 20 장 2-13 절 말씀 ]       여러분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와 같은 축복을 받아 누리고 계십니까 ?   제가 2020 년 2 월 21 일에 “ 이것도 저것도 없는 광야의 축복 ” 이란 제목아래 쓴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 원래 광야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 민 20:5), 오직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하늘 양식”“만나” ( 시 78:24; 참고 : 민 21:5) 와 반석에서 내시는 “물”이 있을 뿐입니다 ( 민 20:10-11; 참고 : 시 105:41).   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게 하신 것일까요 ? ( 민 20:5)   혹시 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하게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 ( 합 3:17-19).   혹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닐까요 ? ( 신 8: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

보석보다 더 귀한 지혜와 깨달음을 가진 자는 행복합니다.

보석보다 더 귀한 지혜와 깨달음을 가진 자는 행복합니다 .   은이나 금보다 더 가치가 있고 유익하며 보석보다 더 귀한 지혜와 깨달음을 가진 자는 행복합니다 .   그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왼손에는 부귀가 있으니 그 길은 즐거움과 평안의 길입니다 .   지혜는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 나무와도 같은 것입니다 .   그래서 지혜를 가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 참고 : 잠언 3:13-18, 현대인의 성경 ).

미련한 나는 언제까지 ...

미련한 나는 언제까지 ... 미련한 나는 언제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미워하며 언제까지 어리석은 것을 좋아할 것인가 ? ( 참고 : 잠언 1:22, 현대인의 성경 )   언제까지 나는 이 세상 어느 무엇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 ( 빌립보서 3:8, 현대인의 성경 ) 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 ( 참고 : 호세아 4:6) 을 사랑하기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 곧 육신의 정욕과 눈의 욕심과 삶에 대한 자랑 ( 요한일서 2:16, 현대인의 성경 ) 을 사랑할 것인가 ?   아아 ,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 ? ( 참고 : 로마서 7:24, 현대인의 성경 )

그 많은 어려움들은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많은 어려움들은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라면 그 징계를 통해서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면 그 많은 어려움들은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참고 : 신명기 8:5-6, 현대인의 성경 ).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가 신뢰하고 자랑하며 우리에게 유익하던 육적인 것은 예수님을 믿고난 후로는 다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 빌립보서 3:3-8, 현대인의 성경 ).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면 그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   ( 요한복음 8:54, 현대인의 성경 )

그릇된 가치관

그릇된 가치관 우리는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 그릇된 가치관이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 사 53:3).   예수님을 귀하에 여기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슬픔과 질고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3 절 ).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3 절 ).   즉 , 예수님은 슬픔 ( 비애 ) 의 사람이셨습니다 (3 절 ).   또한 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분이셨습니다 .   즉 , 예수님은 질고에 익숙하신 분이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슬픔도 그리고 질고도 싫어하므로  얼굴을 그것들로부터 돌립니다 .   그 이유는 우리는 기쁨과 행복 ,  그리고 안락함과 평안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싫어하며 멸시까지 하는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우리의 그릇된 가치관은  육신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요일 2:16).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했을 뿐만 아니라 먹음직도 했던 것처럼 ( 창 3:6)  우리의 그릇된 관점에서 세상에 많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보암직 할 뿐만 아니라  먹음직 한 이유는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   육신의 정욕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가치관을 버리게 하고  오히려 순간적인 가치관을 택하게 만듭니다 .   육신의 정욕은 무엇이 참으로 귀하고 무엇이 하잖은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그 결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헛된 것들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