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 현대인의 성경 ) “ 백성들은 메시야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혹시 요한이 그가 아닌가 하고 모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누가복음 3:15) 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 ” 고 있었던 분은 “ 메시야 ” 요 ( 눅 3:15, 현대인의 성경 ), 그들이 얼마나 메시야를 바라고 기다렸으면 세례 요한이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까지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a) 이러한 생각 속에서 든 생각은 제가 풀러 신학교를 다녔을 때 김세윤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유대인들의 메시아적 기대 (Messianic expectation) 3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 (1) 정치적 해방 (Political freedom), (2) 경제적 풍부 (Economic prosperity), (3) 사회적 공의 (Social justice)( 김세윤 ). (i) 세례 요한이 요단강 부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을 당시 (3 절 , 현대인의 성경 )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었던 로마 ...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28397/20250827/%EA%B0%95%EC%A4%80%EB%AF%BC-%EB%AA%A9%EC%82%AC-%EB%AA%A9%ED%9A%8C%EC%84%9C%EC%8B%A0-%EA%B9%8A%EC%9D%80-%EC%83%81%EC%B2%98-%EB%8D%94-%EB%8A%A5%EB%A0%A5.htm?r=la "깊은 상처, 더 깊은 능력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아픕니다. 상처는 흔적을 남깁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상처를 받으면 더 아픕니다. 실패와 상실의 때에 상처를 받으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피곤할 때는 작은 상처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무엇보다 상처는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게 됩니다. 칼로 찌르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듯, 관계의 가까움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물을 씻어주고 닦아줄 수 있는 것도 가까운 이들입니다. 멀리서는 눈물을 씻어 줄 수도 없고,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받는 일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아픈 사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만 받는 것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가 없는 곳은 무덤뿐입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상처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배신, 상처, 상실, 실패의 상처가 있습니다. 학대와 언어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죄책감과 후회의 상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저 역시 상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한 상처를 덜 받고 덜 주며 목회하려고 애쓰지만, 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날마다 무릎을 꿇습니다.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