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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4)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4)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 ‘ 내가 내 양들을 하나하나 심판하여 좋은 양들과 나쁜 양들을 가려낼 것이다 .   내가 내 종 다윗과 같은 목자를 세워 좋은 양들을 다스리게 하겠다 .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 참고 : 에스겔 34:22-23, 현대인의 성경 ).

우리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의 나이 30 살이 되던 해에 바빌로나아에서 포로들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보여 주는 영광의 광채를 보고 엎드려 “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을 듣게 되었 ” 습니다 ( 에스겔 1:1, 28,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1) 요셉도 그의 나이 30 세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 창세기 41:46), 다윗도 그의 나이 30 세에 왕이 되어 약 40 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고 ( 사무엘하 5:4) 또한 예수님은 나이 30 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 누가복음 3:23).   (2) 마치 포로 생활을 하듯이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 되었을 때에서야 귀로 듣기만 했던 주님께 대하여 이제는 우리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됩니다 ( 참고 : 욥기 42:5).   (3)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우리를 만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그 곳이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 참고 : 출애굽기 29:43, 현대인의 성경 ).   그리고 우리는 “ 나에게 말씀하시는 ”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 참고 : 에스겔 1:28, 현대인의 성경 ).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분노가 잔인하고 파괴적이긴 하지만 질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 잠언 27:4, 현대인의 성경 ).   질투는 까닭 없이 상대방을 싫어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어 멀리하게 만들며 심지어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만들어 살인을 시도하게까지 만듭니다 .   그리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   이것이 바로 ' 살인적 질투 ' 입니다 [ 참고 : 다윗을 향한 사울 왕의 질투 ( 사무엘상 18:9)].

갑자기 어려움들이 연달아 들이 닥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어려움들이 연달아 들이 닥칠 수 있습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이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았던 사탄은 “ 갑자기 ”( 욥기 1:15, 19, 현대인의 성경 ) 욥의 소유를 다 빼앗아 갔는데 그의 소와 나귀와 양떼와 낙타뿐만 아니라 그의 종들의 생명과 더 나아가서 그의 10 명의 자녀들의 생명도 다 빼앗아 갔습니다 .   이 소식을 욥은 “ 간신히 ”(15, 16, 17, 19 절 , 현대인의 성경 ) 살아남은 종들을 통해 들은 후 일어나 자기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으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20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삶 속에서도 갑자기 어려움들이 연달아 들이 닥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허락하셔서 사탄이 우리 가정을 공격하여 우리가 소유한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큰 충격과 깊은 슬픔과 아픔 속에서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런데 어떻게 그러한 상태에서 우리가 욥처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요 ?   어떻게 우리가 다윗처럼 우리 자녀가 죽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을까요 ? ( 사무엘하 12:20) 어떻게 우리가 한나처럼 하나님이 주신 우리 자녀를 평생 하나님께 바치면서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었을까요 ? ( 사무엘상 1:27)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뜻을 찾고자 하나님의 행하심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초점을 맞추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충동 혹은 감동?

충동 혹은 감동?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불러 일으키려고 다윗의 마음을 충동하여 인구 조사를 하도록 하였지만 ( 역대상 21:1,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모아 각 집안별로 등록하도록 하셨습니다 ( 느헤미야 7:5,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 충동 ” 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만들지만 ,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 감동 ” 시키시사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

그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을 통해 예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을 다스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 .   너는 아합의 집안 사람들을 죽여라 .   내가 이세벨에게 내 예언자들과 종들을 죽인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할 것이다 . …”( 열왕기하 9:6-7,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죽인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   우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는 하나님의 종을 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인데도 불구하고 ( 사무엘상 24:6) 그리하는 것은 그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죽은 개처럼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

예수님께서는 죽은 개처럼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 “ 개처럼 보잘것없는 ” 시리아 ( 아람 ) 왕 벤하닷의 신하인 하사엘은 벤하닷 왕을 이어 시리아의 왕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로 하여금 알게 하셨습니다 ( 열왕기하 8:13,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이 자기를 쫓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에게 자기 자신을 가리켜 “ 죽은 개나 벼룩 같은 자 ” 라고 말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 사무엘상 24:14, 현대인의 성경 ).  또한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다윗 왕에게 “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 라고 말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 사무엘하 9:8).  예수님께서는 죽은 개처럼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제 대신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  그 결과 저는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 이사야 43:4; 요한일서 3:1, 현대인의 성경 ).  저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 왕 같은 제사장 ” 이 되었습니다 ( 베드로전서 2:9, 현대인의 성경 ).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사무엘하 16장 12절)

“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 현대인의 성경 )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 ]( 사무엘하 16 장 12 절 ).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저주의 나무 ( 신 21:23) 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십시다 .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나사렛 예수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 신성모독 죄 ( 마 26:65)) 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유는 영원히 저주받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우리는 충분히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이유가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나무에 죽으실 아무 이유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임한 저주를 돌이켜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신 23;5, 느 13:2, 엡 1:3ff).   이 영생의 축복과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까닭 없는 비난을 받고 욕을 먹으며 심지어 저주를 받을지라도 묵묵히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   우리가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신뢰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또한 신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   오늘 본문 사무엘하 16 장 12 절을 보면 다윗은 아비새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