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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책망을 받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책망을 받고 싶습니다.  새해 2024 년도를 맞이하여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책망을 받고 싶습니다 ( 참고 : 잠언 24:25, 현대인의 성경 ).   저는 더욱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 에베소서 6:17) 제 양심에 가책을 더욱더 받는 ( 참고 : 사무엘상 24:5; 사무엘하 24:10, 현대인의 성경 )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

음란한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색욕을 품지 말며 그녀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

음란한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색욕을 품지 말며 그녀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  우리는 음란한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색욕을 품지 말며 그녀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부단히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통하여 부지런히 양심의 찔림과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 참고 : 잠언 6:24-25, 현대인의 성경 ).

회개케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회개케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양심을 찔러 책망하실 때 미련한 나로 하여금 돌이켜 회개케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 참고 : 잠언 1:23; 사무엘하 24:10, 현대인의 성경 ).

주님,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

주님,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 우리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회개치 않고 있는 죄를 책망받았을 때 양심에 찔림 속에서 ‘ 주님 ,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주님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 참고 : 시편 51:1, 현대인의 성경 ).

"주의하라" (8) (골 2:16-17)

“ 주의하라 ” (8)         ( 골  2:16-17)     A.   여러분 , 혹시 기독교의 양심 자유에 관하여 아디아포라 (adiaphora) 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 1.     아디아포라란 단어는 원래 철학적 용어로서 “대수롭지 않은” , “그리 중요치 않은” , “가치중립적인” , “해도 그만 , 안 해도 그만인 것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음 .   a.     그런데 이 철학적 용어가 신학 용어로 사용되었을 때 그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 그 문제를 개인이나 공동체의 문화적 양심과 상황적 특성에 근거하여 해결을 시도한다는 뜻 이 담겼음 .   (1)   다시 말하면 ,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서 , 사람의 형편에 따라 임의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라고 말함 ( 인터넷 ).   (a)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정의 를 내렸음 : 아디아포라란 “성경에 금하거나 명령하지 않은 어떤 의식적인 행사를 , 신자의 개인적 양심에 맡김”을 말합니다 ( 박윤선 ).   (i)             그 한 예로 술과 담배 등을 얘기할 수 있을 것임 .   또 어떤 신학교 교수님은 주일에 일하는 것 도 아디아포라라고 말하는 분도 있는 것 같음 .   B.   이 아디아포라 문제를 잘 묘사해 주고 있는 성경은 바로 로마서 14 장 1-12 절 말씀이라고 생각함 . 1.     그 말씀을 보면 아디아포라 문제는 구약 성서에 나와있는 엄격한 음식법을 따르는 문제 와 종교적으로 지키는 ...

떳떳하게 만들지 못하는 욕심보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만족이 낫습니다.

떳떳하게 만들지 못하는 욕심보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만족이 낫습니다 .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했지만 엘리사의 사한인 게하시는 나아만에게서 무엇이든지 좀 얻어 오려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서 “ 내 주인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며 에브라임 산간지대에서 두 예언자의 생도가 왔다고 그들에게 줄 은 34 킬로그램과 옷 두 벌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   그러자 나아만은 은 68 킬로그램과 옷 두 벌과 함께 자기의 두 사환에게 주어 게하시 앞에서 메고 가게 했습니다 .   “ 그들이 엘리사의 집 앞에 있는 언덕에 이르렀을 때 게하시는 그 물건을 받아 놓고 두 사환을 돌려보낸 다음 그것을 자기 집에 감추었 ” 습니다 ( 열왕기하 5:16, 20-24,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여호수아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을 감추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아간이 생각났습니다 ( 여호수아 7:1).   아간이나 게하시를 생각할 때 야고보서 1 장 15 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현대인의 성경 ) “ 욕심이 생기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   또한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욕심은 거짓말을 하게 하고 또한 숨기며 감추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떳떳하게 만들지 못하는 욕심보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만족이 낫습니다 .

양심의 가책을 받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 사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불러 일으키려고 다윗의 마음을 “ 충동 ” 하여 인구 조사를 하도록 했을 때 ( 역대상 21:1, 현대인의 성경 ) 다윗은 인구 조사 후에 “ 양심의 가책 ” 을 받아 하나님께 “ 내가 이 일로 큰 죄를 범했습니다 .   여호와여 , 이제 종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   내가 아주 미련한 짓을 하였습니다 ”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 사무엘하 24:10,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충동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혹여나 우리가 사탄의 충동질에 넘어가 아주 미련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   우리의 양심이 마비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  

자기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자기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한 ( 사무엘하 11:27) 다윗은 자기 자신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12:5).   즉 , 그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한 줄 몰랐습니다 .   그 정도로 다윗의 양심이 죄로 인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비가 되어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우리도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 에베소서 6:17) 우리의 마음이 지속적으로 찔린 바 되어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 참고 : 사도행전 2:37-38) 우리의 양심도 마비가 되어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한 것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

설득력과 충실한 자

설득력과 충실한 자  분명히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 왕이 자기들이 숨어 있는 동굴의 깊숙한 곳까지 용변을 보려고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원수인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생각하고 “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 하고 다윗에게 속삭였습니다 ( 사무엘상 24:3-4,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며시 베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의 부하들에게 사울을 해하지 말라고 설득했습니다 (4-7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다윗의 말에 설득을 당하여 “ 사울을 차마 죽일 수가 없었 ” 던 다윗의 부하들 (7 절 , 현대인의 성경 ) 을 생각할 때 마치 다윗이 사울 왕에게 “ 충실한 자 ”(22:14) 였던 것처럼 다윗의 부하들도 다윗에게 충실한 자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또한 다윗이 자기의 부하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득한 것을 볼 때 잠언 16 장 23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욥기 6 장 25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 “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언제나 신중성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 잠언 16:23), “ 진실한 말은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 …”( 욥기 6:25).

양심의 가책?

양심의 가책?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헤매는 사울 왕 ( 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 ) 이 용변을 보려고 공교롭게도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곳에 들어왔을 때 (3 절 , 현대인의 성경 ) 자기의 부하들은 “ 이제 당신의 때가 왔습니다 .   여호와께서는 원수들을 당신에게 넘겨 줄 테니 좋을 때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 하고 속삭이므로 살금살금 사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잘랐습니다 (4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그 후에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 지금이 바로 그때 ” 요 다윗의 때 (“ 당신의 때 ”) 였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   그들이 말한 “ 그때 ” 또는 다윗의 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는 때요 원수인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때였을 것입니다 .   한 마디로 , 그때라 사울이 죽임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   다시 말하면 ,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둬야 합니다 .   또 한가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즘에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해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혹여나 마음 속으로라도 주님의 종에게 “ 라가 ”( 뜻 : 머리가 빈 , 헛된 , 무가치한 ) 라고 생각하든지 “ 미련한 놈 ” 이라고 생각한 것 ( 마 5:22) 을 깨닫고 양심이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의...

이웃을 속인 죄의 결과?

이웃을 속인 죄의 결과? 이웃을 속인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양심이 마비되어 있고 거짓말에 능숙한 교인들은 그 속인 죄로 저주 ( 속인 죄의 결과 ) 를 받을 때에서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자신의 속인 죄를 깨닫고 그 속인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참고 : 여호수아 9:23, 현대인의 성경 ).

유익한 양심의 고통과 수치심?

유익한 양심의 고통과 수치심?   미리암은 문둥병이 걸려 육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부끄러워했을 것입니다 .   회개에 이르는 양심의 고통과 수치심은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 : 민수기 12:10-14).

육신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양심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 문둥병이라 생각합니다.

육신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양심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 문둥병이라 생각합니다 . 미리암과 아론이 동생이지만 겸손하며 하나님의 집에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께서 직접 대면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모세를 비난했는데 왜 미리암만 갑자기 문둥병에 걸렸을까요 ?   왜 아론은 문둥병에 걸리지 않을 것일까요 ?   아론은 자기 누이 미리암이 갑자기 문둥병에 걸려 온 몸이 하얗게 된 것을 보고서야 모세에게 " 우리가 어리석었네 .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게 .   제발 누님이 모태에서 살이 반이나 썩어 죽어서 나온 아기처럼 되지 않게 해 다오 " 라고 말했습니다 .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 하나님이시여 , 누님을 고쳐 주소서 "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 민수기 12:1-13,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흥미로운 점은 미리암은 문둥병이 걸려 육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텐데 아론은 자신의 누님인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려 온 몸이 하얗게 된 것을 보고 양심에 고통을 느껴서 자신과 누님이 어리석은 일 ( 모세를 비난한 일 ) 을 한 것을 깨닫고 잘못을 용서해 주길 모세에게 구했다는 것입니다 .   육신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양심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 문둥병이라 생각합니다 .   이것이 저의 모습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

하루를 뒤돌아 보면서 생각하게 된 점들

  오늘 어느 모임을 참석한 후 생각하게된 점들: 나의 무지함과 무식함이 들어나서 부끄럽지만 배움의 기회가 되어 감사하다.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바른 지식을 진리이신 주님의 사랑으로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절제되지 않을 정도로 지니친 사랑은 사람을 세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덕도 세우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들춰내므로 나 자신의 의를 들어내기보다 나의 허물을 인정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격려하는게 낫습니다. 남을 세우는 척 말은 하지만 결국은 남을 허무는 말을 하는 것은 이웃 사랑이 아닙니다. 지나친 자부심은 자만하게 만듭니다. 나의 나눔의 글들이 비수가 되어 나에게 돌아와 내 양심을 찌르므로 부끄러움과 거리낌과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다.

흠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

흠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해 흠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 히브리서 9:14, 현대인의 성경 ).

그들을 사정없이 책망하여 올바른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들을 사정없이 책망하여 올바른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져서 행동으로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교인들은 가증한 자들이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이요 선한 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   그러므로 그들을 사정없이 책망하여 올바른 믿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 디도서 1:13-16, 현대인의 성경 ).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다 좋은 것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데 양심이 마비된 거짓말하는 위선자들은 어떤 음식은 먹지도 못하게 합니다 .   그러나 음식은 믿는 사람들과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 디모데전서 4:2-4, 현대인의 성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