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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5: Vaciar la “codicia”

  Capítulo 5: Vaciar la “codicia”         En el capítulo anterior examinamos, mediante el vaciamiento del “orgullo”, el corazón que intenta exaltarse por encima de Dios y anteponer su propia voluntad.   Ahora, en el capítulo 5, examinaremos la “codicia”, que junto con el orgullo se apodera profundamente de nuestra alma, nos impide estar satisfechos con Dios y nos lleva a aferrarnos continuamente a las cosas del mundo.   Debemos presentarnos honestamente delante de la Palabra de Dios, enfrentar la verdadera naturaleza de la codicia que habita en nosotros y aprender cómo vaciarla.   El Dr. Hee-dae Lee, quien fue director del centro oncológico de un gran hospital general, explicó en cierta ocasión las características fisiológicas de las células cancerosas comparándolas con un principio espiritual.   Según los principios médicos, las células normales del cuerpo deben crecer y morir repetidamente siguiendo un orden determinado. ...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   악을 행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수모를 당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   우리가 주님께 이렇게 간구하는 것은 우리가 옳은 일을 행해서가 아니라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주님께서 주님을 위해 지체하지 마시길 기원합니다 .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 참고 : 다니엘 9:15-19,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을 겪을 때에 ...

우리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을 겪을 때에 ... 우리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을 겪을 때에 “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 ?” 하고 말하겠지만 우리가 그러한 고통과 수모를 당하며 상처를 입는 것은 우리 죄악이 크기 때문입니다 ( 참고 : 예레미야 13:21-22, 현대인의 성경 ).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 네가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   네가 수모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 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젊었을 때 수치를 잊을 것이며 슬픔을 기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참고 : 이사야 54:4, 현대인의 성경 ).

주님, 우리를 속히 도우셔서 ...

주님, 우리를 속히 도우셔서 ...  주님 , 우리를 속히 도우셔서 우리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로 하여금 수모를 당하게 하셔서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   그러나 주님을 찾고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항상 “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 라고 말하게 하소서 ( 참고 : 시편 70:1-4).

아름다운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습니까?

아름다운 아내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습니까?  왕후 와스디도 황실에 있는 여자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잔치 마지막 날에 크셀크세스 황제 ( 아하수에로 왕 ) 는 얼큰하게 취하자 기분이 좋아 그를 시중드는 일곱 내시를 불러 왕후 와스디에게 면류관을 씌워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   그 이유는 그는 와스디 왕후가 아름다우므로 잔치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그녀의 미모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에스더 1:9-11, 현대인의 성경 ).   저는 크셀크세스 황제 ( 아하수에로 왕 ) 는 “ 부강한 자기 제국의 화려함과 위엄을 과시 ”(4 절 , 현대인의 성경 ) 한 후에 “ 잔치 마지막 날에 ” “ 얼큰하게 취하자 기분이 좋아 ” 미모가 아름다운 자기 아내인 황후 와스디를 잔치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묵상할 때 그의 과시욕의 문제는 그는 먼저 자기 아내를 과시하고 그 다음에 자기 제국의 화려함과 위험을 과시했어야 했는데 그리 하지 않았다는 것 ( 우선순위가 뒤바꼈음 ) 과 술에 취해서 자기 기분이 좋다고 자기 아내의 미모를 잔치에 모인 사람들 ( 그들도 술에 취해 있었을 텐데 ) 에게 자랑하고 싶어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인지 황후 와스디는 내시들의 말을 듣고 오기를 거절했습니다 (12 절 , 현대인의 성경 ).   남편이 아내에게 거절을 당할 때 크셀크세스 황제 ( 아하수에로 왕 ) 처럼 화가 나서 견딜 수 없기 보다 (12 절 , 현대인의 성경 ) 왜 아내가 남편의 요청을 거절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   어쩌면 그녀는 남편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견딜 수 없는 수모이든지 무엇인가가 그녀의 마음에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바벨론에 도착한 몇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아직도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   그러자 그들은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은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   그 말은 들은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다가 며칠 동안 슬퍼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 느헤미야 1:2-4,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   만일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나 아니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으로 피신해 온 사람들이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통해 지금 남한으로 넘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에 살면서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파 슬피 울면서 하나님께 간구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에스라의 회개 기도 내용을 보면 (1) 그는 너무 부끄러워 주님 앞에서 머리를 들 수가 없었고 , (2) “ 우리 죄가 우리 머리보다 높이 쌓여 하늘에 닿았 ” 다고 고백했고 , (3) “ 우리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줄곧 죄만 지어 왔 ” 다고 고백했으며 , (4) “ 우리의 죄 때문에 ” 외국 왕들의 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 포로로 잡혀가 오늘날까지 수모를 당하고 있 ” 다고 말했고 , (5) “ 이제 잠시 동안이나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소수의 사람들을 종살이하던 곳 ( 바벨론 ) 에서 ( 예루살렘으로 ) 돌아오게 하여 이 거룩한 곳에 안전하게 살도록 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다 ” 라고 말했으며 , (6) “ 우리는 종이었으나 주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페르시아 황제의 은혜를 입게 하시며 우리가 다시 힘을 얻어 폐허가 된 주의 성전을 재건하게 하시고 이 곳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 라고 말했으며 , (7) “ 그러나 하나님이시여 , 주께서 이런 은혜를 베푸신 후에도 우리가 주를 저버리고 주의 법을 어겼으니 이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 라고 기도했습니다 ( 에스라 9:6-10,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여기까지의 에스라의 회개 기도 내용을 묵상할 때 이렇게 고백합니다 : (1) 나는 나의 머리털보다 많은 죄로 인하여 부끄러우며 , (2) 나의 죄의 결과로 인생의 쓴 맛을 보았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죄를 미워해야 하고 , (3) 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음을 겸손히 고백하며 , (4)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힘을 얻어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 (5)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면서도 또 다시 주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으니 저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우리가 수모를 당하고 상처를 입은 것은 죄를 범하는데 익숙한 우리의 죄악이 크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된 신들을 의지하는 영적 매춘 행위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수치를 들러낼 것입니다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  "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 ( 예레미야 13:22, 23, 25, 27 현대인의 성경 ).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 고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물었습니다 .   느헤미야가 " 병이 없 " 는데 그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 라고 말했습니다 .   느헤미야의 마음에 근심이 있음으로 얼굴에 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   그 이유는 느헤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   즉 , 그는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을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 느헤미야 1:2-3; 2:2).   우리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므로 우리 마음에 근심과 얼굴에 수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그 때에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모해야 할 것은 "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 " 는 은혜입니다 (2:8:18).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실 때 "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 " 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