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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홀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홀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군중을 다 보내신 후에 기도하시려고 혼자 산에 올라가셔서 날이 저문데도 그곳에 홀로 계셨던 예수님을 생각할 때 ( 마태복음 14:23,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사람들과 분리하여 홀로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받습니다 .   저의 사역의 중추 (backbone) 는 주님과 홀로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여야 합니다 .

못마땅한 일들이 목회에는 비일비재할 수 있습니다.

못마땅한 일들이 목회에는 비일비재할 수 있습니다.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 26:11; 38:4, 현대인의 성경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유다 백성에게 예레미야 선지자를 가리켜 “ 이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26:11, 현대인의 성경 ) 라고 말했고 , 고관들은 시드기야왕에게 “ 이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38:4, 현대인의 성경 ) 라고 말했습니다 .   그 이유를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 여러분들도 다 들었겠지만 이 사람은 우리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자입니다 …”(26:11, 현대인의 성경 ), “…   그가 이 성에 남아 있는 병사들과 모든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습니다 .   그는 이 백성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백성을 해치려고 합니다 ”(38:4, 현대인의 성경 ).   그러나 실제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 “…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   이 성에 머무는 자는 누구든지 전쟁과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을 것이다 .   그러나 바빌로니아 사람에게 항복하는 자는 누구든지 살 것이며 적어도 목숨만은 건지게 될 것이다 ”(1 절 , 현대인의 성경 ).   도우려는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여 그 사람을 죽어야 마땅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못마땅한 일이 목회에는 비일비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 ...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가서 그 곳에 3 일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예루살렘을 위해 하게 하신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예루살렘 성의 지도자들도 느헤미야가 어디 가서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   이것은 느헤미야가 그때까지도 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귀족들과 그 밖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느헤미야 2:11-16,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하게 하신 주님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다시 말하면 ,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저로 하여금 하게하신 주님의 일을 말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

가정 사역을 실패한 성공한 목회자?

가정 사역을 실패한 성공한 목회자?  나이 많아 늙은 노인이 된 엘리 제사장은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자기 아들들이 성막 입구에서 일을 돕고 있는 젊은 여자들을 유혹하여 그들과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 사무엘상 2:22, 현대인의 성경 ).   나이 많아 늙은 목사님이 자신의 자녀가 하나님께 범죄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요 ?   사람들 보기에 목회 ( 교회 사역 ) 는 성공해서 칭찬을 받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정 사역은 ...?

교인수를 늘리려고 목회를 하기보다 ...

교인수를 늘리려고 목회를 하기보다 ...  교인수를 늘리려고 목회를 하기보다 어쩌면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 마태복음 16:18) 교인수를 줄이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참고 : 사사기 7:2-7, 현대인의 성경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 라고 반응했습니다 .   그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출애굽기 3:9-12).   제가 승리장로교회 부목사 시절에 딱 1 년 사역한 후 너무나 실망해서 하나님께 ' 저는 더 이상 승리장로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 라고 말씀을 드린 후 요나처럼 한국으로 도망갔었습니다 .   그런데 약 2 년 6 개월 후엔가 교회갱신 목회자협의회 ( 교갱협 ) 수련회 때 강사 목사님을 통해 마태복음 16 장 18 절인 "... 내가 ... 내교회를 세우리니 ..."(I will build My church)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 승리장로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비록 나는 절대 세울 수 없지만 주님께서 친히 세우신다 ' 는 약속의 말씀을 믿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붙들린 바 되게 하시사 2003 년 12 월 21 일 다시 미국에 있는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오게 하시사 담임 목사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   저는 모세처럼 ' 제가 누구이기에 승리장로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까 ?' ' 저는 결코 세울 수 없습니다 ' 하고 도망 나갔던 자를 ' 그래 , 제임스야 너는 결코 내 교회를 세울 수 없다 .   내 교회를 내가 세울 것이다 ' 라고 약속하신 주님께서는 지난 약 19 년 동안 저와 함께하셨고 승리장로교회와 함께하시사 여기까지 오게하셨습니다 .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 by 김선일  /   2022-03-26 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  코로나 이후의 교회는 기독교적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를 깊이 탐색해야 한다  ” Share this story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가입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발표하는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는 11개 항목을 기준으로 삶의 질과 만족도를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시민참여·안전·주택·교육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은데 반해, 환경·건강·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워라밸”)·수입에서는 평균을 훨씬 밑도는 점수를 얻었다. 이중 우리나라가 수년째 최하위권에 속하는 항목은 놀랍게도 공동체 지표다.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조사 대상 국가들 중에서 그야말로 꼴찌를 차지하다가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는 세 나라를 제치고 부상(?)했으나 여전히 최하위권이다(41개국 중 38위).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8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OECD 평균인 91퍼센트보다 낮은  수치 다. 사회적 연대의 약화는 경제적 위기와 관계적 고립을 불러일으켜 삶의 만족도를 저하시킨다고 이 조사는 말한다. 전통적으로 두레, 향약, 품앗이 같은 이웃 공동체가 강했던 이 나라에서 사회적 관계의 급속한 와해는 큰 숙제가 된 것이다.    이제 정점을 지나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고립된 생활은 기본값이 되었고, 온라인 공간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메타버스는 현실적인 가상공간에 나와 또 다른 이들이 아바타라는 유사한 수평적 관계로 참여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같은 신념과 취향을 공유하는 연대감이 집단에 대한 의무적 소속감을 빠르게 대체해 간다. 연대감을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모여서 친소관계를 쌓을 필요도 없다. 서...

"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by Larry Osborne  /   2019-11-12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당회 모임 하나를 기억한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한 대형 교회 목회자의 강연을 들은 후에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그 목회자는 목회 사역에 동반되는 고유한 도전과 어려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었다. 그 강연을 요약하자면, 목회 사역은 가장 힘든 일이며, 위태로운 일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의 적은 악의 전형이며, 음흉하고, 사나우며, 궁극적으로 속이는 자이다. 우리는 오해받기 쉽고, 우리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다. 우리의 보상은 대부분 나중에 온다. 그리고 우리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기를 요구받는다. 그때 나는 목회의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의 말은 내 관심을 끌었다. 시편 73편의 아삽처럼, 목회 사역 자체가 가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당회에서, 나는 그 강연자가 한 말을 당회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기도를 요청하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실제로 나는 그저 약간의 공감과 이해를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연민을 구하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당회원들 중의 한 명이 내게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장로는 베트남 전쟁이 있을 때 세 번이나 복무하고 은퇴한 해병이었다. 그는 용맹스럽게 싸웠고 전쟁의 공포와 대학살을 직접 경험했다. 더군다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다. 영웅에 대한 환영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내 말은 연민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내 말을 멈추게 한 것은 옳았다. 나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회의 난관과 중압감에 대하여 불평할 권리도 없었다. 물론 목회 사역에 나름의 도전과 어려...

'나는 이것이 싫어요'

'나는 이것이 싫어요' " 이 땅에서의  목회자들이 받는  불필요한 인정,  불필요한 교회의 규모,  불필요한 인기,  불필요한 칭찬,  불필요한 대정 등  그 모든 것들이 하늘에서 받는 상을 놓치게 만든다는 두려움 ...   그래서 다시 십자가에서  한 영혼에서 목회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여 ~" ( 선배 목사님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