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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시민이요 미국 시민인 "동전 목사님"의 책임?

천국 시민이요 미국 시민인 "동전 목사님"의 책임?       악한 포도원 농부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한 말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잡지 못하고 그냥 가 버렸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 서기관들 ) 과 장로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실을 붙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중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 “선생님 ,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진실하셔서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대로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시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으십니다 .   그런데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 옳지 않습니까 ?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 ”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왜 나를 시험하느냐 ?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은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 ”하고 물으셨습니다 .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 마가복음 12:12-1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마태복음 22 장 15-22 절과 누가복음 20 장 19-26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오늘은 예수님께서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내게 보여라” [“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내게 보여라 ”( 마태복음 22:19, 현대인의 성경 )] 하고 말씀하시자 바리새파 사...

우리가 고생과 시련의 담으로 둘러 쌓여 있으므로 말미암아 무거운 쇠사슬과 같은 마음의 짐들까지도 지고 어디로도 도망갈 수가 없을 때 ...

우리가 고생과 시련의 담으로 둘러 쌓여 있으므로 말미암아 무거운 쇠사슬과 같은 마음의 짐들까지도 지고 어디로도 도망갈 수가 없을 때 ... 우리가 고생과 시련의 담으로 둘러 쌓여 있으므로 말미암아 무거운 쇠사슬과 같은 마음의 짐들까지도 지고 어디로도 도망갈 수가 없을 때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고 도움을 간구하여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충분히 있습니다 ( 참고 : 예레미야 애가 3:5, 7, 8, 현대인의 성경 ).   과연 그 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신 것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까요 ? ( 참고 : 복음성가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 의 가사 : “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   과연 그 때 우리는 이사야 59 장 1-2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겸손히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 여호와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귀가 둔하여 너희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   너희 죄가 너희를 하나님과 분리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가 너희를 외면하고 너희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 것이다 .”

자녀들을 어려움과 시련을 헤쳐 나가는 목자의 역할

'자녀들을 어려움과 시련을 헤쳐 나가는 목자의 역할         우리 자녀가 시련을 겪는 것을 보는 것은 극도로 어렵습니다 .   자신의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충분한 부모라도 자녀가 고통받을 때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   어떻게 하면 우리는 우리 자녀를 건강하게 , 하나님을 존경하는 방식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   자녀에게 어려움이 찾아올 때 , 여기 세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     충실한 존재 제공   부모나 보호자로서 우리는 자녀가 고통받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 모드로 뛰어들기 쉽습니다 .   때로는 긴급한 개입이 옳고 필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종종 시련에 직면한 아이들은 문제 해결 능력보다는 충실한 존재가 필요합니다 .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서 알고 있듯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가끔은 간단히 사랑하는 이의 존재에 안심받고 싶어합니다 .   누군가가 우리를 고치려는 대신 차분히 곁에 앉아 주는 사람 , 우리가 안전하게 느끼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 우리 자녀들도 그런 안식처를 갈망합니다 .   부모로서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우리가 집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만약 양육이 목자의 일과 비교된다면 , 우리 역할의 이 부분은 목자가 양들을 그토록 잘 알아서 그의 존재만으로도 무리에게 안심을 주는 부분입니다 .   마찬가지로 , 하나님의 평안을 구현하면서 우리 자녀들을 우리 궁극적인 바위이자 안식처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 시편 18:2).   자녀들의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안정적인 안위감을 전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   손을 움켜쥐어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전에도 이미 우리의 존재와 태도로 ...

그 모든 것을 덮어주시며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덮어주시며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 나는 이 고통스러운 시련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   그 후에는 주께서 나를 부르실 것이요 나는 대답할 것이며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만드신 나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   그때는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셔도 내 죄는 들추어 내지 않으시고 그 모든 것을 덮어주시며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 욥기 14:14-17,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일라로 갔었을 때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이 자기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사무엘상 23:9,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 사울이 나 때문에 그일라로 내려와서 이 성을 쑥밭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을 주의 종이 들었습니다 .   그일라 주민들이 나를 사울에게 넘겨주겠습니까 ?   아니면 내가 들은 대로 사울이 정말 내려옵니까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 주의 종에게 일러 주소서 ”(10-11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 사울이 내려올 것이다 ” 하고 대답하셨고 (11 절 , 현대인의 성경 ) 다윗은 “ 그러면 그일라 주민들이 나와 내 부하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준다는 말입니까 ?” 하고 다시 묻자 하나님께서는 “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12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분명히 그는 그일라 사람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출해줬는데 어떻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과 다윗의 부하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 수 있는지 충분히 분노하고 원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 이유는 다윗은 사울 왕에게 잡혀서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하들도 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릎 쓰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어떻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사울 왕에게 넘겨줄 수 있단 말입니까 .   다윗이 그들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러나 그일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정도로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 죽이고 싶어했기에 다...

계산적으로 생각하면 얻은 사람보다 잃은 사람들이 더 많고 더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계산적으로 생각하면 얻은 사람보다 잃은 사람들이 더 많고 더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나오미 ( 뜻 : " 나의 즐거움 ") 가 며느리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그 곳 여자들에게 "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 마라 '( 뜻 : " 쓰다 ") 라고 불러 주시오 " 라고 말했습니다 .   그 이유는 "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괴로운 시련을 많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   내가 이 곳을 떠날 때는 가진 것이 많았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고 나에게 괴로움을 주셨으니 어떻게 당신들이 나를 나오미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 였습니다 ( 룻기 1:19-21, 현대인의 성경 ).   유다 땅에 " 흉년 " 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모압 땅에 가서 살기로 한 결정 (1-2 절 ) 의 결과가 결국 떠날 때 가지고 있었던 많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빈손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   그 결과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시고 자기에게 괴로움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나오미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 심지어 자신의 남편과 두 아들도 ) 이방 여인 룻이라는 며느리 한 사람을 얻었습니다 .   계산적으로 생각하면 얻은 사람보다 잃은 사람들이 더 많고 더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룻이란 한 여인이 보아스와 재혼해서 다윗왕을 낳은 이새의 아버지 오벳을 낳습니다 (4:17, 현대인의 성경 ).   그리고 다윗왕을 통해 메시야 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 마태복음 1:1-16, 특히 5-6 절 ).

고통과 시련

 고통과 시련 고통과 시련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회요 또한 기도 응답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놀라운 기적으로 인도함을 받는 기회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는 고통과 시련이 따를 수 있습니다 ( 참고 : 신명기 26:6-9).

시련 가운데 홀로 있지 말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고통과 괴로움은, 설령 우리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복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련 가운데 홀로 잊지 말고, 당신께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부르심입니다." (김남준, "거기 계시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없이 사는 것?

"인생의 모든 날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날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쉽게 하나님을 떠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보이는 세상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에게 시련과 어려움을 만나게 하십니다.  곤고한 영혼으로 살아가게도 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몸소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김남준, "거기 계시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은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 ...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은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  ...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은 "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 라고 말씀을 하고 계시니까 나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충돌 속에서 시련을 겪습니다 . 이 믿음의 시련의 과정에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해주시길 간구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의 시련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기 전에 나의 믿음을 전적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하시사 그 하나님만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게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 창세기 17:1, 18:14; 잠언 3:5, 현대인의 성경 ).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빈손으로 떠나겠지만 ( 전도서 5:15, 공동번역 ) 그러나 적어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사람들이 ( 심지어 사랑하는 식구가 )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을 당하며 수고하는 것을 보시고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넘치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 참고 : 창세기 31:42-43, 현대인의 성경 ).

"내적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

내적 시련, 그리고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 J. I. 패커를 기리며 by J. I. Packer 2022-07-24 Photo by Sebastian Bill on Unsplash “  무시무시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괴로워하는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은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Share this story   제임스 이넬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6년 7월 22일 - 2020년 7월 17일)   은혜란 무엇인가? 신약에서 은혜는 사랑과는 정반대되는 것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행동으로 베푸시는 사랑을 의미한다. 은혜란 자신을 구원하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죄인들을 향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움직이시는 것을 의미한다. 은혜란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하늘 나라에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로 보내셔서 지옥에까지 내려가도록 하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 신약은 은혜의 뜻과 은혜의 역사 둘 다에 대해 말한다. 은혜의 뜻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은혜의 역사는 하나님이 시작하신 “너희 안에서 [행하신] 착한 일”( 빌 1:6 )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교제로 부르시며( 고전 1:9 ),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리시고( 엡 2:1-6 ), 하나님의 영을 선물로 주사 당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치시며( 엡 1:13-14 ), 당신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시며( 고후 3:18 ), 마침내 영광중에 서 당신의 몸을 살리실 것이다( 롬 8:30 ;  고전 15:47-54 ). 수년 전 개신교 학자들 사이에서는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와는 별개로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