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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나귀 (막11:1-10)

  https://youtu.be/RX4eRw9LbYo?si=5UPZZHxIVe0qVcMN

나의 사랑하는 딸 예은(Karis)이의 “헨리 나우웬의 ‘Beloved’(사랑의 존재)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라는 글을 읽은 후

나의 사랑하는 딸 예은 (Karis) 이의 “ 헨리 나우웬의 ‘Beloved’( 사랑의 존재 ) 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 ” 라는 글을 읽은 후                 저는 지난 주 토요일 새벽 3 시 20 분 즘에 예은이가 쓴 “ 헨리 나우웬의 ‘Beloved’ 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 ” 라는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놀랄 정도여서 마음의 뭉클했고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었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정도로 저의 부족한 기도도 응답해주시사 예은이의 마음과 삶 속에서 역사 ( 일 ) 하고 계신 것을 믿음의 눈으로 엿보았기 때문입니다 .   특히 저는 예은이가 헨리 나우웬의 “Beloved” 책을 읽고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며 ( 성찰하며 ) 투명하게 글을 쓰되 자신의 취약점까지도 나눈 것이 좀 놀랬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약 20 여년전인 2001-2003 년도에 탈진하여 한국으로 도망가서 살고 있었을 때 헨리 나우웬의 책들로 제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또한 제 영혼을 어루만져주시사 도전해 주시고 세워주셨는데 이렇게 세 자녀들 중에 예은이로 하여금 저처럼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기 시작케 하시고 또한 이렇게 반영의 글 (reflection writing) 까지 쓰게 하시사 그녀의 마음과 삶 속에 귀한 영향을 끼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   안 그래도 금년 초에 사랑하는 아내가 성경공부를 한 후 집에 와서 자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beloved) 딸이라는 사실에 은혜를 받은 것을 저에게 나누면서 울었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은이로 하여금 나우웬의 “Beloved” 이란 책을 읽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니 참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

긍휼

“긍휼”이란 무엇입니까 ?  긍휼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mpassion) 는 라틴어 ‘파티’ (pati) 와 ‘쿰’ (cum) 에서 파생될 말로서  이 두 단어를 합치면 ‘함께 고통받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 나우웬 ).   그래서 헨리 나우웬은 긍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긍휼은 우리에게 상처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 고통이 있는 장소로 들어가라고 , 깨어진 아픔과 두려움 , 혼돈과 고뇌를 함께 나누라고 촉구한다 .  긍휼은 우리에게 비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울부짖고 ,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며 , 눈물 흘리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도전한다 .  긍휼은 우리에게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연약해지고 , 상처입기 쉬운 자들과 함께 상처 입기 쉬운 자가 되며 , 힘없는 자들과 함께 힘없는 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 “긍휼” , p.18). 힘없고 , 상처 잆기 쉬우며 ,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받는 긍휼의 자리로 우리는 초청을 받았지만 우리의 본능은 그러한 사람들과도 함께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  우리의 본능은 힘있고 강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  그 이유는 우리의 본능은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피하길 원하며 , 고통을 계속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  

침묵 속에서 맺는 말씀의 열매

  침묵 속에서 맺는 말씀의 열매     “하나님의 말씀은 침묵이 없이는 열매 맺을 수 없다    …     마음속과 머릿속이 우리가 지어내는 말들로 가득 차 있는 한 ,  말씀이 우리 마음 깊이 들어와 열매 맺을 공간은 없다”  [ 헨리 나우웬 ,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                  하나님의 말씀을 밤에 묵상하고 그 다음 날 새벽에 다시 묵상한 후 새벽기도회 때 그 묵상한 말씀을 전파합니다 .   그리고 전파한 말씀을 목양실로 돌아와서 다시금 컴퓨터 앞에 안아 글로 적어 내려가면서 묵상을 합니다 .   그런데 그러한 묵상 과정에서 저로 하여금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도 아니요 말씀과의 씨름에서 오는 죄책감과 자괴감과 낙심도 아닙니다 .   저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잠잠하지 못한 제 생각과 제 마음 ( 영혼 ) 입니다 .   제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지 못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이미 저는 마음의 평정을 잃었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해도 그 음성은 제 머리에서만 빙빙돌고 제 심비에는 적히고 있지 않습니다 .   그러한 가운데서 말씀 묵상 (QT  나눔 ) 을 나눌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   그러한 가운데서 저의 말씀 묵상에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생각과 마음을 잠잠케 해 주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   묵상하고 또 묵상한 말씀을 새벽기도회 때 전파한 후 홀로 예배당 강대상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쳐다 보면서 말씀 선포하는 과정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기도할 때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 ,...

크리스찬 직업인의 소명

크리스찬 직업인의 소명     “성공을 너무도 강조하는 세상에서는 직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소명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 …   소명과 연결되지 않은 직업은 서로를 분리시킨다 .   반면에 소명에 대한 순종을 표현하는 직업은 , 공동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재능을 내어놓는 구체적인 방식이 된다 .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소명이어야 한다 ."             [ 헨리 나우웬 , “긍휼” ]    ------------------               성공을 너무도 강조하는 이 세상 직업 세계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 보입니다 .   오직 승진 또는 더 많은 돈을 외치는 세상 직업 세계에서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는 있지만 크리스찬으로서 왜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지 소명의식을 잊어버리고 하루 하루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러한 소명의식이 결핍된 가운데서 일을 하는 직업인들은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일뿐 결코 크리스챤 직업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크리스챤 직업인이라면 분명히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일 뿐입니다 .   그리고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은 세상적 흐름 속에서 승진과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가운데 직장 동료들을 경쟁자로 보기에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쟁자들을 밀어내는 배타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결국은 서로를 연합하기보다 서로를 분리시키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러기에 이러한 직업인은 ...

겸손한 섬김이란?

  "... 진정으로 겸손한 섬김이란 , 그 모엇보다도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아주 훌륭하지만 종종 감추어져 있는 재능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보다 그들이 그 재능들을 통해 우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 헨리 나우웬 , " 긍휼 "]    -------------------------            새해 2007 년도 교회 표어가 " 섬기는 교회 " 입니다 - " 겸손히 교회를 , 즐거운 마음으로 가정을 , 자발적으로 이웃을 ".  그런데 왠지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만남들 속에서 저는 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는 섬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더욱더 인정하게 됩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지극히 작은 일로도 섬김 수가 없다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괴롭고 낙심도 되곤 하지만 그러기에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며 나아가게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          그래서 새해 들어와서 헨리 나우웬의 " 긍휼 " 이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  그러한 가운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섬기는 자로 세움을 받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 겸손한 섬김이란 ' 무엇인지 적혀 있는 윗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이렇게 묵상하는 것입니다 .          첫째로 중요히 생각되는 것은 겸손한 섬김이란 상대방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재능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  그리고 알아가기 위해서는 그 상대방의...

예수님의 치유

” 예수님의   치유는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는   그분이   우리의   고통을   없애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  그분이   무엇보다도   우리와   함께   고통을   나누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   ( 헨리 나우웬 ,  “긍휼” )   --------------------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할 때가 너무나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   “어자피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예요 .   할 말도 없다고요 .   도대체 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 ” ( 나우웬 ).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고통 당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솔직히 자신에게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무기력함 뿐만 아니라 무익함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뒤에서 숨어서 기도할 때가 많치 않나 생각합니다 .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는 진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그 진리는 로마서  12 장 15 절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    우리는 고통 중에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신앙의 미를 잃...

경쟁과 대립 (Competition and Rivalry)

  “We become increasingly aware that we are living in a world where even the most intimate relationships have become part of competition and rivalry.” (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아무리 제일 친한 관계라고 할찌라도 경쟁과 대립의 관계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을 더욱더 감지하게 됩니다 .)  [ 헨리 나우웬 ,  “Reaching Out” ]  ----------------------              우리는 외로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 외로움을 달래고자 우리는 여러 종류의 만남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추구하여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외로움은 더욱더 우리를 홀로 있게 만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    그러므로 결국은 사람보다 컴퓨터나 다른 것들에 집착하여 외로움을 달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 원인 중에 하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가운데 진정한 영혼의 만족보다 경쟁과 대립의 관계로 인하여 상처와 실망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보이지 않는 경쟁심으로 인하여 만남 속에서 마음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기보다 인간의 죄악된 쓴 뿌리에서 맺는 경쟁과 대립이라는 쓴 열매를 보면서 너무나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관계에 역겨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   마음을 열고 자기 자신의 그 모습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이지 못하게 하는   ‘경쟁과 대립’이라는 쓴 뿌리는 결국 우리의 욕심과 시기를 불태우는 가운데 서로를 망하게 ...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환영하라!

  고 헨리 나우웬이란 신부님은 그의 삶 속에 환영한 사람을 한 사람 말하라고 한다면   아담 아네트  ( Adam Arnett ) 라는 한 중증 장애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나우웬 신부님은  70 년에는 예일대에서 신학적 심리학을 가르쳤던 , 80 년대에는 하버드에서의 파트타임 강의와 남미 선교를 병행하였다가 , 90 년에 들어서서 그의 마지막 인생 한  10 년간은 캐나다의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서 장애인들을 돌보면 살았었는데 그 장애인들 중에 아담이란 장애인을 나우웬의 그의 삶과 마음에 특별히 환영했습니다 .   그래서인지 아담이  1996 년  2 월에  34  년의 생을 마감한 후 ,  헨리 나우웬도   “아담 :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라는 책을 쓰고 난 직후인 같은 해  9  월 ,  마치 자신도 할 일을 다 하였다는 듯 아담의 뒤를 따라간 것입니다 .   헨리 나우웬 신부님을 아끼던 많은 친구들은 나우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                                  “헨리 ,  자네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데 가 여기인가 ? ” ,  “아담에게 자네의 시간 과   에너지를 투자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던 대학을 떠났단  말인가 ? ” ... ”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도움 ,  더 체계적인 인도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