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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주님이 오시고 세상이 끝날 때의 징조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오시고   세상이   끝날   때의   징조는   무엇입니까 ?   주님이 오시고 세상이 끝날 때의 징조는 무엇입니까 ?   많은 사람들이 와서 “ 내가 그리스도이다 ” 하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속일 것입니다 .   또 난리와 전쟁이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고통의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   그 때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잡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 것이며 예수님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   또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서로 배반하고 서로 미워할 것입니다 .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일 것입니다 .   그리고 악이 점점 더하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   이 하늘 나라의 기쁜 소식 ( 천국 복음 ) 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   그제서야 세상이 끝날 것입니다 ( 마태복음 24:3-14, 현대인의 성경 ).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 덕분에 )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 사람들이 우리를 법정에 넘길 것입니다 .   심지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우리 식구가 우리를 대적하고 고발할 것입니다 .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그 이유는 우리 속에서 말씀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성령님이 우리가 할 말을 일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법정에서도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 참고 : 마태복음 10:17-22, 현대인의 성경 ).

우리는 가서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가서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셔야   합니다 .   죽은 사람들의 사랑과 미움과 질투는 그들의 죽음과 함께 다 사라지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에도 참여하지 못합니다 .   그러므로 살아 있는 우리는 가서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셔야 합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 참고 : 전도서 9:6-7, 현대인의 성경 ).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나보다 강한 나의 대적과 나를 미워하는 원수들로 인해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쁘게 여겨 구원해 주셨습니다 ( 참고 : 시편 18:17-19, 현대인의 성경 ).

우리의 대적?

 우리의 대적? 하나님께서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심에 있어서 사람을 일으켜 우리의 대적이 되게 하시사 우리를 평생에 미워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 참고 : 열왕기상 11:14, 25, 현대인의 성경 ).

우리 가정을 공격하는 사탄 (1) (삼하 13:1-3)

https://youtu.be/qNP3fU0SPh0 그러나 사탄은 우리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길 원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계명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불순종하게 만들고 있으며 ( 엡 2:2; 5:6)  도리어 지옥의 계명인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창 37:5;  신 22:13;  마 24:10;  요일 2:9).   또한 거짓의 영과 더불어 사탄은 미움을 우리에게 자꾸만 심어서 ( 신 21:17;  삼하 13:15;  잠 10:12)  어두움의 일을 하게 만들므로 (사 29:15;  겔  8:12;  엡  5:11)  가정의 쓴 열매를 맺게 하고 있습니다 ( 롬 7:5).   그러므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지옥 같은 집에 가고 싶지 않게 만들고 있으며 도리어 집 밖에서 맴돌게 만들던지 더 나아가서 집에서 멀리 멀리 떠나고 싶게 만들고 있습니다 .   또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식구들을 보고 싶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   그리고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배우자를 더욱더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그러한 배우자를 향한 커지는 미움 속에서 그 부부 관계의 균열의 틈을 노려 ( 참고 :  느 4:3,  히브리어로  " 틈 "; 6:1) 사탄은 다른 여자 / 남자를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고 ,  안목의 정욕과 더불어 육신의 정욕으로 ( 요일 2:16)  그 다른 이성을 탐하게 만들므로 결국에는 외도하게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   그 목적은 사탄은 우리 가정을 무너트리고 파괴하므로 가정 천국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며 도리어 우리 가정을 지옥과 같은 가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   가정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2 년 동안 있으면서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 다윗왕을 뵈려고 요압 장군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중재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요압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 사무엘하 14:29,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하는 수없이 압살롬은 자기 하인들을 시켜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해서 결국 요압을 만났습니다 (30-31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때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내가 당신을 부른 것은 당신을 왕에게 보내 왕이 나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때문에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는지 한번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이오 .   내가 차라리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   이제 나를 왕과 좀 만나게 해 주시오 .   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왕이 나를 죽여도 좋소 ”(32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 압살롬의 행동과 말을 생각할 때 저는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그리워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   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자기를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놓고서도 2 년 동안이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니까 자기가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요압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그 사람 사이에 거리를 멀리 두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미워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지만 , 용서하는 마음은 서로의 거리를 좁힙니다 .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

우리를 미워하여 쫓아내 사람들이 ...

우리를 미워하여 쫓아낸 사람들이  ...  우리를 미워하여 쫓아낸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한다고 우리를 찾아와서 " 우리가 당신을 찾아오게 된 것은 당신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오 " 라고 말한다면 ...? ( 참고 : 사사기 11:7-8, 현대인의 성경 )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으로 형제 , 자매를 미워하므로 살인하는 교인이 있으면 그 공동체는 하나님께 모든 일에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 참고 : 신명기 19:13; 요한일서 3:15, 현대인의 성경 ).

마음으로라도 계속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음으로라도 계속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 성경은 " 너희는 마음으로 너희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죄를 짓지 않도록 그와 맺힌 것이 있으면 풀어라 "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레위기 19:17,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우리는 미워하는 형제와 맺힌 것을 풀지 않고 있으니 마음으로라도 계속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요?  요셉의 10 명의 형들은 자기들 앞에 있는 애굽 총리가 자기들의 동생인 요셉 인줄 모르고 " 우리는 모두 열 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막내 아들은 지금 아버지와 함께 있고 하나는 없어졌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 창세기 42:8, 13, 현대인의 성경 ).   진정 그 " 하나 " 인 요셉은 없어진 것입니까 ?   그 형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판 것이 아닌가요 ?   그러면 요셉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요 ? " 가나안 땅에 사는 한 사람 " 인 야곱의 아들들로서 " 모두 열 두 형제 " 인데 어떻게 그들은 자신들의 형제 중 한 사람인 요셉을 없애 버린 건가요 ?   혹시 그 이유가 요셉이 17 살 때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일이 일러바쳤기 때문이었을까요 ? (37:2, 현대인의 성경 )   아버지 야곱이 자기들보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을까요 ? (3 절 , 현대인의 성경 )   혹시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듣고 " 네가 우리의 왕이 될 작정이냐 ? 네가 정말 우리를 지배하겠느냐 ?" 하고 조소하며 그 꿈 이야기 때문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혹시 그들이 요셉을 시기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 (11 절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으로 인해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으로 인해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으로 인해 우리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들은 심지어 식구라할지라도 꿈꾸는 우리를 속이고 해하려고 음모를 꾸미기까지 하여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 참고 : 창세기 37:18-20, 현대인의 성경 ).

우리 형제가 하는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형제가 하는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안그래도 아버지 야곱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고 있었던 요셉인데 꿈을 두 번이나 꿔서 형들에게 그 꿈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시기도 하였습니다 .   그러나 요셉을 꾸짖었던 야곱은 요셉의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 창세기 37:3-11).   우리 형제가 우리보다 더 사랑을 받고 더 높임을 받을 때에 우리는 우리 형제를 충분히 미워하고 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우리 형제가 우리에게 하는 말을 간직해 둘 필요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특별히 사랑을 받을 때에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을 받을 때에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특별히 사랑을 받은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신 결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 창세기 37:3-5, 8,  현대인의 성경 ).   육신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특별히 사랑을 받는 우리는 심지어 형제들에게도 충분히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분이 풀릴 때까지 참고 참아야 합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참고 참아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에 살인적인 질투나 미움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므로 분풀이해서는 아니 됩니다 .  분이 풀릴 때까지 참고 참아야 합니다 ( 참고 : 창세기 27:41-42, 44, 현대인의 성경 ).  "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 잠언 15:18).  "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다 .  그러나 성미가 급한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이다 "(14:29, 현대인의 성경 ).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16:32).  "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9:11).  “ 여러분은 죄인들의 이런 증오를 몸소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낙심하지 말고 용기를 내십시오 ”( 히브리서 12:3, 현대인의 성경 ).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살인적인 미움으로 동생 아벨을 죽인 형 가인 ( 창세기 4:8; 요한일서 3:12) 과 살인적인 미움으로 동생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결심한 형 에서 ( 창세기 27:41) 를 생각할 때 살인적인 질투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 ( 사무엘상 18:9) 이 생각납니다 .   이렇게 질투와 미움은 이미 마음으로 상대방을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참고 : 마태복음 5:28, 15:19; 갈라디아서 5:19-21; 요한일서 3:15).

거리낌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요한일서 2장 9-11절).

거리낌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       “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 요한일서 2 장 9-11 절 ).               거리낌이 없이 주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   거리낌이 없이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싶습니다 .   양심이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   성도님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예배를 인도하고 싶습니다 .   제 자신이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마음 것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             오늘 본문 요한일서 2 장 9-11 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먼저 2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그 두 가지란 첫째로 사도 요한은 대조 (comparison) 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 대조란 (1) 빛 (9, 10 절 ) 과 어두움 (9, 11 절 ), 그리고 (2) 사랑 (10 절 ) 과 미움 (9, 11 절 ) 입니다 .   둘째로 , 오늘 본문 2 장 9-11 절에서 교차대구법 (chiasm) 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저는 쉽게 이것을 ‘ 샌드위치 법 ’ 이라고 부릅니다 :   A    (9 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