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아빠인 게시물 표시

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아빠와의 성경나눔 2일차"

  암 투병중이신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상 형제의 "아빠와의 성경나눔" 글입니다: "(아빠와의 성경나눔 2일차)"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로마서5:2)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고 말해.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시길래.. 성경은 예수님을 다양하게 설명하지만,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부터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과 그로 인한 인간의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서는 우리를 대신해 죄값을 치르실 분이 필요했고, 죄인이 죄인의 죄값을 대신 치를 수는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기꺼이 십자가 위에서 산 제물이 되어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실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인간이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 즉 하나님이 고안해내신 구원의 방법은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내 죄값을 치르시는 것이었어. 이것을 믿는 믿음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통렬한 고백과 구원을 향한 갈구를 동반하고, 장차 얻게 될 천국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예수님의 영을 통해 내가 주님 안에 살고 주님이 내 안에 살도록 해..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오직 '믿음'이라는 방법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은혜'라고 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의미를 믿는다면 오늘의 성경 말씀처럼 병상의 자리도 은혜의 자리가 될 수 있고 영광의 자리가 될 수도 있어.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요한계시록3:20) 하나...

"아빠와의 성경나눔 1일차"

  암 투병중이신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상 형제의 "아빠와의 성경나눔" 글입니다: "아빠와의 성경나눔 1일차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 ‭) 아빠.. 암이나 전쟁이나 가난이나 이별이나 세상의 많은 어려움 앞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리고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을거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환자들의 암세포가 없어지는 것고 아니고, 영원히 사는 사람을 우리는 본 적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요한복음11:25~26)고 해. 참 믿기 어렵지? 원래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있었거든. 우리는 모두가 언젠가 죽게될 뿐만 아니라, 태어나면 늙어가고, 새 것은 낡아지고, 즐거움은 싫증이 되고, 살만하면 다시금 아프고, 다시 또 싸우고, 무엇인가가 늘 결핍된 채 살아왔어. ‘사랑’과 ‘새 것’과 ‘충만’과 같은 것들이 ‘생명’에 속해있다면, ‘낡아짐’이나 ‘아픔’이나 ‘미움’이나 ‘폭력’과 ‘가난’, ‘결핍’과 같은 것들은 ‘죽음’에 속해 있을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태어나면서 단 한 번도 ‘죽음의 권세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다만 더 아프고 절망스러울 때에야 비로소 죽음이 더 가깝게 느껴질 뿐이지.. 결국 우리는 모두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야할 존재야.. 그런데 오늘 성경의 말씀은 ‘구원’을 하나님과의 ‘화평’을 회복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어. 젊어서는 먹고 살기에도 지치고, 언젠가는 병들거나 사고로 죽게 되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이 구원이라니.. 동의할 수도 없고 도저히 믿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는 그 누구도 자기 스스로는 살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과 ...

나의 사랑하는 딸 예은(Karis)이의 “헨리 나우웬의 ‘Beloved’(사랑의 존재)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라는 글을 읽은 후

나의 사랑하는 딸 예은 (Karis) 이의 “ 헨리 나우웬의 ‘Beloved’( 사랑의 존재 ) 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 ” 라는 글을 읽은 후                 저는 지난 주 토요일 새벽 3 시 20 분 즘에 예은이가 쓴 “ 헨리 나우웬의 ‘Beloved’ 과 함께 한 해를 되돌아 보며 ” 라는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놀랄 정도여서 마음의 뭉클했고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었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정도로 저의 부족한 기도도 응답해주시사 예은이의 마음과 삶 속에서 역사 ( 일 ) 하고 계신 것을 믿음의 눈으로 엿보았기 때문입니다 .   특히 저는 예은이가 헨리 나우웬의 “Beloved” 책을 읽고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며 ( 성찰하며 ) 투명하게 글을 쓰되 자신의 취약점까지도 나눈 것이 좀 놀랬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약 20 여년전인 2001-2003 년도에 탈진하여 한국으로 도망가서 살고 있었을 때 헨리 나우웬의 책들로 제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또한 제 영혼을 어루만져주시사 도전해 주시고 세워주셨는데 이렇게 세 자녀들 중에 예은이로 하여금 저처럼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기 시작케 하시고 또한 이렇게 반영의 글 (reflection writing) 까지 쓰게 하시사 그녀의 마음과 삶 속에 귀한 영향을 끼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   안 그래도 금년 초에 사랑하는 아내가 성경공부를 한 후 집에 와서 자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beloved) 딸이라는 사실에 은혜를 받은 것을 저에게 나누면서 울었는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은이로 하여금 나우웬의 “Beloved” 이란 책을 읽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니 참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를 때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를 때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빠의 자격이 없는 저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딜런 , 예리 , 예은이를 생각하면 그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를 때가 수 없이 많았었다고 고백합니다 ( 참고 : 사사기 12:8, 12, 현대인의 성경 ).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사랑하는 세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모를 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저보다 딜런 , 예리 , 예은이를 더욱 사랑하시돼 어느 누구보다 제일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    그러므로 저는 세 자녀들을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자녀를 계속해서 돕고자 합니다 .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는다는 것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는다는 것은 by John Piper  /   2022-03-27 Photo by Liane Metzler on Unsplash “  우리가 합법적인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의 경험을 주십니다  ” Share this story   존 파이퍼 목사의 팟캐스트  Ask Pastor John 의  에피소드 1743  “What Does It Mean to Cry, ‘Abba, Father’?”를 녹취한 글입니다. 바울의 응용신학에 대한 가장 심오한 가르침 중 하나이면서도 자주 간과되었던 질문을 제가 목사님께 드리면서 한 주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설명해 주셨던 내용이 아직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Desiring God의 리더십 팀 모임에서 항상 시작할 때 하시던 대로 우리를 인도하셨었지요. 우리는 모여서 계획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 헌신과 함께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우리 리더십 팀 모임에서 목사님은 갈라디아서 4:6-7로 성경공부를 이끄셨습니다. 굉장히 경건한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하셨을 때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끝내시자마자, 저는 이랬지요. “와, 이건 녹음해서 APJ(Ask Pastor John; 파이퍼 목사님께 물어보세요)의 청취자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아빠! 아버지!” 이것은 정확하게 어떤 경험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요? 이 “아빠! 아버지!”라는 외침은 나 자신의 외침인가요? 아니면 성령께서 내 안에서 나를 통해 부르짖으시는 건가요?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이 본문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건가요? 어떻게요? 저희를 ...

[가정 이야기] '아빠, 아빠가 죽은면 제가 기억할께요' (Dad, when you die, I will remember you")

  “ Dad, when you die, I will remember you. ” ( 아빠 ,  아빠가 죽은면 제가 기억할께요 )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은 참으로 근심된 일과 곤고한 일이 많고 죄악된 일과 죽을 일이 쌓인 세상임을 더욱더 피부로 느낍니다 .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   그런데 왠지 마음에 무거움과 아픔이 좋습니다 .   좀 더 무겁고 좀 더 아프고 싶습니다 .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   그리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우리의 만남 속에서 주신 추억들을 되새기며 마음에 더욱더 귀히 간직하길 원합니다 .   저는   ‘인생은 추억 만들기’라 생각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허락하시는 만남들을 통하여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그 만남들 가운데 부모님과의 만남이 있고 또한 형제 ,  친척 ,  친구 ,  선생님 등등 잊지 않나 생각합니다 .   어떠한 만남은 오랫 기간 동안 이 땅에서 함께 하는 가운데 평생 잊지 못할 귀한 추억을 심어주는 만남이 있습니다 .   부모님과의 만남이 그렇고 또한 부부의 만남도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  또한 어떠한 만남은 잠깐 스쳐가는 짧은 만남같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마음 판 한 구석에 깊이 심겨지는 추억들도 있습니다 .   특히 요즘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의 만남의 폭이 넓어진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짧은 만남들을 통하여 잊지 못할 추억들도 주시는 것이빈다 .   특히 서로가...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쨰 아기 주영이를 추모하면서 ...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쨰 아기 주영(Charis)이를 추모하면서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1998년 4월 26일, 주일 오후에 교회 사역을 다 마치고 주영이가 누워있었던 엘에이 어린이 병원 중환자실로 갔었을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만 할말이 있다고 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주영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두 가지 선택을 주셨다:  (1) 아기를 빨리 죽게 할 것인지 아니면 (2) 천천히 죽게 할 것인지.  그 때 나는 두 선택다 결론은 아이가 죽는다는 생각에 충격에 휩싸인체 의사 선생님에게 아기를 천천히 죽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나서 손을 씻고 까운을 입고 병실로 들어갔더니 아내가 아기를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아내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 그 이유는 아기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인 내 아내를 붙들어 주고 계셨음을 엿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날 아내와 함께 주영이를 보고 55일동안 매일 그랬던 것처럼 "예수 사랑하심을" 찬양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나중에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 다음 날인 1998년 4월 27일 월요일 아침에 나는 성경책을 펴서 읽다가 시편 63편 3절에 은혜를 받았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을 주를 찬양할 것이라."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주님의 영원한 사랑이 주영이의 55일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받은 은혜를 아내하고 나눴고 아내와 함께 주영이를 빨리 죽도록 하자고 결정하였다. 그 의미는 55일 동안 우리 부모의 욕심(?) 속에서  아기가 겪고 있었던 고통을 잘 헤아리지 못했기에 우리는 주영이가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