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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 현대인의 성경 ) “ 백성들은 메시야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혹시 요한이 그가 아닌가 하고 모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누가복음 3:15) 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 ” 고 있었던 분은 “ 메시야 ” 요 ( 눅 3:15, 현대인의 성경 ), 그들이 얼마나 메시야를 바라고 기다렸으면 세례 요한이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까지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a)     이러한 생각 속에서 든 생각은 제가 풀러 신학교를 다녔을 때 김세윤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유대인들의 메시아적 기대 (Messianic expectation) 3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 (1) 정치적 해방 (Political freedom), (2) 경제적 풍부 (Economic prosperity), (3) 사회적 공의 (Social justice)( 김세윤 ).   (i)                       세례 요한이 요단강 부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을 당시 (3 절 , 현대인의 성경 )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었던 로마 ...

분쟁은 기회입니다. (5) (고전 1:10)

  교회에 분쟁이 없이 교회의 하나됨(연합성/통일성)을 잘 지켜나아가기 위해선 이 3가지 화목의 원리를 배워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1) "같은 말" (2) "같은 마음" (3) "같은 뜻". https://youtu.be/NBjhNijrnN8?si=trbVYKjgwox4pKFb

주님은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주님은 오래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주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후서 3:9, 15, 현대인의 성경 ).

교회 안에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파벌 싸움?

교회 안에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파벌 싸움? 담임 목사님파가 생길정도로 목사님을 사랑해서는 아니 됩니다 .   장로님파가 생길정도로 장로님들을 사랑해서는 아니 됩니다 .   그래야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하므로 다툼이 있을 때 ' 나는 담임 목사님파다 ' 또는 ' 나는 장로님파다 ' 라고 말하면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   그래야 더 이상 교인들이 상처입지 않습니다 .   그래야 더 이상 교회가 깨지고 ,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래야 더 이상 주님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 참고 : 고린도전서 3:1-4).

기도 후 범죄

기도 후 범죄 솔로몬 왕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한 후 ( 왕상 3:10)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   분명히 주님께서는 왕은  (1) "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 라 , (2) "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 라 , (3) "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 라고 말씀하셨는데 ( 신 17:16-17),  솔로몬 왕은  (1) " 병거와 마병을 모으 " 되 " 말들은 애굽과 구에에서 사들였 " 고 , (2) "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 같이 흔하게 하 " 였고 ( 대하 1:14-17), (3) "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 " 여 ' 후궁이 700 명이요 첩이 300 명이 ' 었습니다 ( 왕상 11:1-3).

주님의 마음을 품지 못한 목사

주님의 마음을 품지 못한 목사  주님의 종인 목사인 내가  주님께서 나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실 때에는  크게 기뻐하면서  한 영혼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때에는  매우 싫어하고 성낸다면  과연 나는 선한 목자되신 주님의 마음을 품은  목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 ( 요나 4:1, 6; 요한복음 10:11, 15)

버리시는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버리시는 사랑을 배우고 싶습니다.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 십자가 상에서  ' 하나님이여 ,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라고 부르짖으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리심을 받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저 ( 우리 ) 로 하여금  성부 하나님의 마음과 성자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알게 하시사  주님의 마음을 본받게 해주시길 기원합니다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   [ 로마서  11 장  25-36 절 말씀 묵상 ]   지난 주 화요 새벽기도회 때 고린도전서  1 장  10 절 말씀 중심으로  ‘ 교회의 분쟁 ’ 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    그 하나님의 교훈이란 교회의 분쟁의 원인이 세 가지라는 것임 .    그 세 가지 원인은 온 교회 식구들이  (1)  첫째로 , “ 같은 마음 ”( the same mind ) 을 품지 못한 것 , (2)  둘째로 , “ 같은 뜻 ”( the same judgment ) 을 추구하지 않은 것 , (3)  그리고 셋째로 ,  다  “ 같은 말 ”( you all agree ) 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    여기서 고린도 교회 온 성도가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한 그 이유는 바로 성도들이  “ 교만한 마음 ” 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4:6).    그리고 그들이 교만한 마음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그들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밖에 넘어가서 (4:6)  주님을 자랑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였습니다 (1:31.)    그 결과 고린도 교회 안에는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3:3).    이 분쟁의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1:11)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고린도전서  1 장 13 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 “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 Has Christ been divided? ).    우리가 교회의 하나됨 ,  교회의 통일성 ( 연합성 ) 을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 모두는 다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    즉 ,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 ...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3)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3)     “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 잠언  27 장  14 절 ).     여러분 ,  여러분은 주일 지나 월요일 이른 아침에 전화 소리가 좀 크게 울리던지 카카오톡 소리가 크게 울리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   누구에게 들은 말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제가 들은 말은 목사님들은 월요일 이른 아침에 성도님들에게 전화하지 말고 한 목요일이나 금요일 즘에 전화를 하는게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   제가 그 때 이 말을 듣고 지금까지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제가 그 말에 공감하고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   아마 월요일 이른 아침에 전화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피곤한데 일은 나가야 하고 ,  좀더 잠을 자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려서 잠에서 깬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아마 월요일 날 이른 아침에는 어머님의 전화도 받기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   그런데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님이든 회사 상관이든 친구던 간데 큰 목소리로 이렇쿵 저렁쿵 말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   아무리 그 말이 우리를 칭찬하는 말이라 할찌라도 그리 이른 월요일 아침에 큰 목소리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   결국 상대방 칭찬도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적절한 때에 상대방을 칭찬할 때에 그것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   성경 잠언  25 장  11 절을 보십시오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 현대인의 성경 )...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2)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2)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잠언  27 장  13 절).             우리는 잠언을 묵상해 오면서 이미 잠언 기자가 보증에 대하여 말한 내용을 묵상하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   예를 들어 ,  우리는 이미 잠언  6 장  1-5 절 말씀 중심으로 잠언 기자가 우리에게 이웃을 위하여 담보나 보증을 섰다가 우리가 그 이웃에 손에 빠졌을 때 스스로 구원하라 (deliver yourself) 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   다시 말하면 ,  우리가 우리 이웃의 채무 이행 책임을 떠 맡게 되었을 때 성경은 우리에게 스스로 구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   그 어리석은 행동이란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진 상태을 알면서도 채무 불이행 (defaults) 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우리 자신 스스로 그 빚을 갚는 책임을 약속하는 것 ,  즉 보증을 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MacArthur).   물론 예수님의 계명대로 이웃 사랑함에 있어서 이웃을 위하여 보증을 서는 것을 아예 금하고 있는 말씀은 아니지만 ( 박윤선 )  잠언 기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혹여나 보증을 섰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보증을 선 여러분이 실제로 책임질 각오를 하지 못하였던지 또는 상대방 이웃에게 속아서 보증인이 되던지 ,  보증을 선 후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이행할 경제력 실력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   물론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 이웃의 빚을 갚을 경제적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