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3)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언 27장 14절).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 지나 월요일 이른 아침에 전화 소리가 좀 크게 울리던지 카카오톡 소리가 크게 울리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누구에게 들은 말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제가 들은 말은 목사님들은 월요일 이른 아침에 성도님들에게 전화하지 말고 한 목요일이나 금요일 즘에 전화를 하는게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그 때 이 말을 듣고 지금까지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제가 그 말에 공감하고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월요일 이른 아침에 전화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곤한데 일은 나가야 하고, 좀더 잠을 자려고 하는데 전화가 울려서 잠에서 깬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월요일 날 이른 아침에는 어머님의 전화도 받기 좋아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어머님이든 회사 상관이든 친구던 간데 큰 목소리로 이렇쿵 저렁쿵 말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 말이 우리를 칭찬하는 말이라 할찌라도 그리 이른 월요일 아침에 큰 목소리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결국 상대방 칭찬도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적절한 때에 상대방을 칭찬할 때에 그것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 잠언 25장 11절을 보십시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현대인의 성경) “경우에 적합한 말은 은쟁반에 올려 놓은 금사과 같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 때 형편과 경우에 잘 조절하여 한 적합한 말은 은쟁반에 올려 놓은 금사과와 같이 그만큼 큰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잠언 25장 12절을 보면 성경은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바로 윗절인 11절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경우에 적절한(합당한) 책망은 그 책망을 청종하는 사람에게 “그 고리와 정금 장식”같이 큰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혜롭지 못하게 경우에 적절하지 못한 책망을 했다가는 서로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 만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말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을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적절한 타이밍에 이웃을 올바르게 칭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4절을 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현대인의 성경) “이른 아침부터 자기 이웃을 큰 소리로 축복하면 오히려 그것을 저주로 여길 것이다”]. 여기서 잠언 기자는 “이른 아침부터 자기 이웃을 큰 소리로 축복하면 오히려 그것을 저주로 여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른 아침부터”라는 단어가 눈에 잘 들어옵니다. 아마도 제 개인적으로 이른 아침에는 전화를 받기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햠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이름 아침에 전화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잠을 더 자고 싶고 피곤해서라기 보다 새벽기도회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제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바로 “큰 소리로”임. 아무리 상대방을 축복한다 할지라도 큰 소리로 하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것도 이른 아침에 말입니다. ㅎ 박윤선 박사님의 주석을 보면 그는 여기서 이른 아침에 큰 소리를 상대방을 축복, 즉 칭송(adulation)하는 것은 “지나친 성의를 가지고 아첨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른 아침에 여러분이 아는 사람이 전화와서 큰 소리로 여러분을 지나치게 칭찬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시겠습니까? 특히 여러분이 듣기에도 상대방이 너무 지나치게 여러분을 칭찬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이 아부성이 있는 말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을 이른 아침에 듣는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축복으로 여겨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저주로 여기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4절).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이웃을 올바르게 칭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적합한 때(타이밍)에 적합한 말로 우리 이웃을 칭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 이웃이 피곤하여 잠을 자고 있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우리 이웃을 칭찬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 이웃이게 칭찬의 말을 하게 만드실 때 순종하면 됩니다. 칭찬하되 특히 우리는 오늘 본문 잠언 27장 11-13절에 근거해서 한 3가지 일에 대하여 우리 이웃을 칭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우리 이웃의 지혜를 칭찬해야 합니다(11절).
특히, 우리 이웃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육신의 부모님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할 때에 우리는 우리 이웃을 적절한 타이밍에 칭찬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는 우리 이웃이 슬기롭게 위험(재앙)을 보면 피하는 것을 칭찬해야 합니다(12절).
만일 우리 이웃이 어리석은 자처럼 위험을 보고도 나아가는 것을 보면 해(어려움)를 당할 것을 알고 사랑으로 책망을 해야겠지만 그렇게 하지않고 오히려 지혜롭게 그 위험을 피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우리 이웃을 칭찬해야 합니다.
(3) 셋째로, 우리는 우리 이웃이 낯선 사람의 보증을 서지 않는 것을 칭찬해야 합니다(13절).
결국 우리가 우리 이웃을 적절한 타이밍에 칭찬해야 할 것은 그들의 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 이웃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지혜롭게 행할 때 우리는 그들을 칭찬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제가 얼마 전에 성경 누가복음 6장을 읽다가 32-35절 말씀 중심으로 짧게 묵상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말씀 묵상 제목은 “우리의 칭찬 기준은 매우 낮은 것 같습니다”입니다.
“우리의 칭찬 기준은 매우 낮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는 사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죄인들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 주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은혜도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누가복음 6:32-35).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칭찬하시는 사람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적절한 타이밍에 적합한 축복 및 칭찬을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되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6년 11월 9일,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하실 때에 겸손히 듣고 더 지혜로워 지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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