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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무엇입니까 ?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고 우리 형제 , 자매들에게만 인사한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무엇입니까 ?   ( 참고 : 마태복음 5:46-47, 현대인의 성경 )

실제로 우리는 마치 요나가 큰 물고기보다 못했던 것처럼 벌레보다 못한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마치   요나가   큰   물고기보다   못했던   것처럼   벌레보다   못한   사람들입니다 .     불신자 선원들을 도구로 사용하시사 요나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신 주님께서는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 요나 1:13-15, 17; 2:3, 현대인의 성경 ).   그리고 주님께서는 요나로 하여금 그 큰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3 일 동안 있으면서 (1:17) 주님께 부르짖게 하셔서 (2:2) 결국에는 그로 하여금 “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 라고 고백케 하셨습니다 (9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리고 나서야 주님은 그 큰 물고기에게 명령하시사 그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 ( 해변 ) 에 토해 내게 만드셨습니다 (10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큰 물고기를 창주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잘하였는데 미련한 요나 선지자는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   새 찬송가 143 장 “ 웬 말인가 날 위하여 ” 1 절 가사입니다 : “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마치 요나가 큰 물고기보다 못했던 것처럼 벌레보다 못한 사람들입니다 .   그러한 우리를 주님은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   “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2 절 가사 ).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혼합되어 있지 않나요?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혼합되어 있지 않나요?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혼합되어 있지 않나요 ?   그래서 주님 보시기에 설익은 빵처럼 쓸모가 없지 않나요 ?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서서히 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 ( 참고 : 호세아 7:8-9, 현대인의 성경 )

내 두려움을 아시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 (2) (사사기 7:10-11상반절)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면 삶을 정확하게 보거나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왜곡된 관점으로 그릇된 결론을 내리고 좋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 쉽다. 두려움으로 인해 관점이 뒤틀리면 자신의 어려움이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폴 트립). 두려움은 하나님의 크기 보다 문제의 크기를 확대시킨다(토미 테니). 우리가 제일 두려워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익명).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서도(삿7:7, 9) 두려워했던 기드온에게(10절)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미디안과 연합 적군 진영으로 내려가게하시사 그곳에서 두 사람의 꿈과 해몽의 이야기를 듣게 하시므로 그 적군을 공격한 용기를 주셨습니다(13-15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만도 충족(sufficiency)한데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불신자들을 통해서도 그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신다는 확신(conviction)과 용기(courage)를 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경배한 후 일어나(15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결국 승리케 하십니다! https://youtu.be/KWuCJlkOiPk?si=6_HQO0JqtjupclGd

주님께서는 우리를 순종의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으셨는데 ...

주님께서는 우리를 순종의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으셨는데  ... 주님께서는 우리를 순종의 제일 좋은 포도나무로 심으셨는데 어째서 지금 우리는 주님을 대적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포도나무의 형편없는 가지가 되었나요 ? ( 참고 : 예레미야 2:21, 현대인의 성경 )

나는 요나 선지자와 같은 주님의 종입니다.

나는 요나 선지자와 같은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종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던 불신자 선장과 사공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반면에(요나 1:1-10), 주님의 종 바울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로마 황제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자(사도행전 25:10-21)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다가 배만 아니라 그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276명)의 생명까지도 위험하여 살아날 가망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그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결국에 가서는 모두 다 건짐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27장). 과연 나는 바울 사도와 같은 주님의 종인지 아니면 요나 선지자와 같은 주님의 종인지 자아반영 및 자아성찰합니다.

실제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실제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 온갖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몹시 노하게 하였던 므나셋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꾀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멸망시킨 이방 민족들보다 그들이 더 많은 악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 역대하 33:6, 9-10, 현대인의 성경 ).   므낫세와 같은 목사 한 명이 온 교인들을 꾀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도록 하고 있는 교회가 있지 않나요 ?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목사와 그의 교인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실 텐데 그들이 들을까요 ?   거짓 목사의 거짓 복음과 거짓된 가르침은 충분히 교인들을 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악을 행하고 있지 않나요 ?

신자들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   우리 신자들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   그러면 우리가 악을 행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회개하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2:12, 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은 불신자들에게는 쓸모 없는 돌입니다.

예수님은 불신자들에게는 쓸모 없는 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이 가장 귀중하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쓸모없는 돌이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에 불과합니다 .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 베드로전서 2:6-8, 현대인의 성경 ).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고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이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좋지 않은 평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조차도 좋지 않은 평을 받고 있다면 ... ( 참고 : 디모데전서 3:7, 현대인의 성경 )

목사님과 장로님은 ... (2)

목사님과 장로님은 ... (2) 목사님과 장로님은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리고 목사님과 장로님은 남을 잘 대접하고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   목사님과 장로님은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아야 합니다 .   그래야 남에게 비난을 받지 않고 마귀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 참고 : 디모데전서 3:1-3, 7, 현대인의 성경 ).

우리는 불신자들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잠든 성도들에 대해서 불신자들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 이유는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고 또한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4:13-14, 현대인의 성경 ).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요 란한 생 활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을 하며 손수 일하기보다 일하기 싫어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공밥을 얻어 먹으면서 그에게 짐이 되는 자는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4:11-12, 데살로니가후서 3:8, 10, 현대인의 성경 ).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배워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조용한 생활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며 손수 일하므로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4:11-12, 현대인의 성경 ).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은 불신자들과 연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은 불신자들과 연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은 불신자들과 연합하지 않습니다 .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것을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   어떻게 빛과 어두움이 어울릴 수 있겠습니까 ? ( 고린도후서 6:14-15; 갈라디아서 3:27, 현대인의 성경 ).

여러분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방언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이 방언을 하는 여러분을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지껄여댄다고 하면서 여러분을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 ( 고린도전서 14:21, 23, 현대인의 성경 )

올바른 길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

올바른 길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 주님의 종을 통해 올바른 길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길을 주님의 종을 통해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믿는 " 세리와 창녀 " 보다 못합니다 ( 마태복음 3:3; 20:32, 현대인의 성경 ).

예배-증인들

예배-증인들 우리는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찬양하므로  불신자들에게까지도 "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  '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 함을 전파하는  ' 예배 - 증인들 ' 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 고린도전서 14:25).

불순종하고 있는 목사님 보다 오히려 불신자들이 더 두려워하고 있다?

불순종하고 있는 목사님 보다 오히려 불신자들이 더 두려워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 요나 선지자는  "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사공들은  요나가 "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 " 을 알고  " 심히 두려워 " 했습니다 ( 요나 1: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