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 ” (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 현대인의 성경 )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 ]( 사무엘하 16 장 12 절 ). 둘째로 ,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 때문에 선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십니다 . 달리 말한다면 , 우리 하나님은 저주를 돌이켜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 잠언 26 장 2 절을 보면 성경은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까닭 없이 저주”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요 그 저주는 공의롭지 않은 저주 (an unjust curse ) 일 수밖에 없습니다 . 성경은 이 미련한 사람의 공의롭지 않는 저주는 마치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잠 26:2). 무슨 뜻입니까 ? 여기서 참새가 “떠도는 것”은 ‘목적이 없기’ (aimless) 때문입니다 . 그러기 때문에 목적 없이 하늘에서 떠도는 참새는 어디에 착륙 (landing) 해야 할지 몰라 그냥 허공에서 맴돕니다 . 바로 까닭 없는 저주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 즉 , 목적이 없다는 것은 저주의 실패를 상징합니다 . 그래서 성경은 “까닭 없는 저주는 …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다시 말하면 , 공의롭지 않은 저주는 그대로 성취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 예를 들어 , 골리앗이 블레셋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지만 ( 삼상 17:43-44), 다윗은 도리어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