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마가복음15:46-47)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마태복음
27장 59-61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누가복음
23장 53-56절 말씀입니다: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요한복음
19장 39-42절 말씀입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a)
이 말씀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먼저 마가는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막15:46상)라고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마27:59)라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눅23:53상)라고 기록하였으며,
요한은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19:39-40)라고 기록하였습니다.
(i)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로마 총독 빌라도가 백부장을 통하여 예수님이 죽었는지 확인한 후(막15:44-45)
“아리마대 사람 요셉”(43절)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내어주었을 때(45절)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내렸는데(46절) 이것은 요셉 혼자서 할 수 있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 생각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가기 위해서는 우선 땅에 박힌 십자가를 뽑아 뉘운 다음 손과 발에 박힌 못을 빼어야 했고 예수님의 시체를 옮기는 채비를 갖춰야 했으며 이와 함께 예수님의 시체를 요셉 혼자서 옮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참고: 호크마).
(ii)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막15:46)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옮기기 전이 이미 예수님의 시체를 싸려고 “깨끗한 세마포”[“깨끗한 모시 천”(현대인의 성경)(마27:59)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세마포”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베, 고운 베옷, 가는 베, 아마포”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가는 베인 세마포는 애굽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로서(겔27:7) 제사장들의 의복을 만드는 주요 재료였습니다(출39:270-29; 삼상2:18; 22:18; 단10:5). 가는 베로는 제사장들의 속옷을 만들고 세마포로 제사장들의 두건과 빛난 관을 만들고 고의를 만들었습니다(촐39:27-29). 사무엘은 이 세마포로 만든 에봇을 어릴 때부터 입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삼상2:18). 또 세마포는 부자들이나 귀족들의 옷을 만드는 재료였는데 애굽 총리가 된 요셉이 세마포를 입었습니다(창41:42). 성막의 울타리 휘장 재료로도 쓰였습니다(출27:9). 헬라어 “신돈”(sindon)이 세마포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시체를 쌌던 천이었습니다(마27:59). 이 세마포는 요한계시록을 보면 성도들이 입는 거룩한 곳을 세마포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성도들의 거룩한 행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계19:8). 또한 하늘의 군대들이 입는 옷을 세마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14절)(인터넷).
· 유대 장례법은 시체에 세마포를 사용하도록 규정했는데 그 목적은 죽은 자를 기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식상 부정해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인터넷).
(iii)
요한복음은 아미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내렸고 그리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일이 있었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33킬로그램 정도 가지고 와서 그 두 사람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료를 바르고 세마포(모시 천)으로 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9:38하-40, 현대인의 성경).
·
니고데모의 십자가에서의 용기
(요19:38-4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 약
30킬로그램”(39절)을 가져왔습니다.
이 양은 일반적인 장례 관습을 뛰어넘는 것으로,
왕족의 예우에 버금가는 것이었으며,
니고데모의 전적인 충성을 상징했습니다.
처형된 “신성모독자”와 공개적으로 교제하는 것은 회당에서 추방당하고 정치적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었지만,
니고데모의 믿음은 이제 값비싼 헌신으로 표현됩니다(인터넷).
-
예언의 성취:
그의 호화로운 장례 향신료는 이사야가 묘사한
"죽음에 부자와 함께 있을"
고난받는 종에 대한 묘사(사 53:9)를 우연히 실현시켰습니다(인터넷).
(b)
이 말씀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마가는 세마포에 싼 예수님의 시체를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은매”(막15:46)라고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갔다(마27:60)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눅23:53)라고 기록하였으며,
요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요19:41)하고 기록하였습니다.
(i)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예수님의 시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있는 동산 안에 바위 속에 판 요셉의 새 무덤(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그 무덤 문에 놓았습니다.
·
요한복음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무덤”(μνημεῖον)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죽음의 포위와 부활의 삶을 의도적으로 대조합니다(인터넷):
1. 나사로:
"예수께서 무덤에 이르시니 무덤은 굴이요 입구는 돌로 막혀 있더라"(요 11:38). 나사로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의 승리를 예고합니다.
2. 동산 무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었고 동산 안에는 새 무덤이 있더라"(요 19:41). 이 배경은 에덴을 떠올리게 하며 새 창조 신학을 암시합니다.
3. 목격자 순서: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나아가… 몸을 굽혀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여 있더라"(요 20:3-6).
반복적인 언급은 역사적 신뢰성을 강조합니다.
(c)
이 말씀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마가는 “이때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넣어 둔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막15:47, 현대인의 성경)하고 기록하였고,
마태는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마27:61)하고 기록하였는데,
누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은 거기까지 와서 무덤과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모셔 두었는가를 봐 두고 집으로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쉬었다”(눅23:55-56,
현대인의 성경)라고 기록하였습니다.
(i)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예수님의 무덤 맞은편에서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마27:56)(호크마)] 마리아는 앉아서 예수님의 시체를 넣어둔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가 집으로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한 후 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쉬었습니다.
·
로마법에 의하면 처형된 자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하여 여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과 절망을 억지로 참으며,
예수님의 장사를 조용히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의 처형과 매장의 증인은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인들의 권위가 무시당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 여인들의 증거는 참으로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매장 장소에 두여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또다른 의미에서 중요성을 갖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
이상의 증언이 법적인 효력을 지녔던 당시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죽으심 내지는 부활의 역사성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고후 3:1; 히 10:28) (호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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