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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https://youtu.be/acEErnKv54s?si=116LU792C82JifSe

"깊은 상처, 더 깊은 능력"

 https://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128397/20250827/%EA%B0%95%EC%A4%80%EB%AF%BC-%EB%AA%A9%EC%82%AC-%EB%AA%A9%ED%9A%8C%EC%84%9C%EC%8B%A0-%EA%B9%8A%EC%9D%80-%EC%83%81%EC%B2%98-%EB%8D%94-%EB%8A%A5%EB%A0%A5.htm?r=la


"깊은 상처, 더 깊은 능력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아픕니다. 상처는 흔적을 남깁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상처를 받으면 더 아픕니다. 실패와 상실의 때에 상처를 받으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피곤할 때는 작은 상처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무엇보다 상처는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게 됩니다. 칼로 찌르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듯, 관계의 가까움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물을 씻어주고 닦아줄 수 있는 것도 가까운 이들입니다. 멀리서는 눈물을 씻어 줄 수도 없고,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받는 일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아픈 사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만 받는 것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가 없는 곳은 무덤뿐입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상처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배신, 상처, 상실, 실패의 상처가 있습니다. 학대와 언어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죄책감과 후회의 상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저 역시 상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한 상처를 덜 받고 덜 주며 목회하려고 애쓰지만, 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날마다 무릎을 꿇습니다. 마음의 정원을 가꾸듯 기도의 자리에서 제 영혼을 돌보고 있습니다.

상처의 신비는, 상처가 오히려 더 아름다운 생애를 가능케 한다는 데 있습니다. 상처를 바르게 치유하고 다루면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깊은 상처가 깊은 성숙을 만들어냅니다. 상처의 경험은 공감 능력을 길러주고,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을 열어 줍니다. 상처를 통해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람을 더 넓게 품을 수 있습니다.

가장 깊은 상처가 가장 깊은 힘이 될 수 이유는, 깊은 상처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라는 고통을 안고 살았으나, 그 연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렀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10).

상처는 열림입니다. 열린 상처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치유의 빛이 임합니다. 마음과 낙하산은 열리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상처를 받은 경험 때문에 마음을 닫고 살면 안 됩니다. 상처를 두려워하여 마음을 닫으면, 좋은 것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닫힌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상처는 또한 깨어짐입니다. 곡식이 으깨져 고운 가루가 될 때 소제가 드려지고, 장미가 새벽 이슬 속에서 으깨질 때 가장 귀한 향유가 만들어집니다. 상처가 가꾸어지면 향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완고한 자가 아니라, 상처로 부드러워진 사람, 깨어진 사람을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들 모두는 상처 입은 자들이었고, 깨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상처를 잘 가꾸면 상처는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상처는 공감과 연민을 키우고, 삶의 목적과 사명을 발견하게 합니다. 상처는 믿음을 키우며 영성을 깊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깊은 상처를 깊은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첫째, 상처를 인정하십시오. 상처를 인식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됩니다. 억누르거나 부정하면 더 깊은 상처가 남습니다. 환대할 때 상처는 더 이상 적이 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됩니다.

둘째, 상처를 통해 배우십시오. 벤저민 프랭클린은 “고통은 교훈을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상처를 스승으로 삼으십시오. 저는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안락함보다 시련을 통해 더 많이 배웠습니다. 상처와 연약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삶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상처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사용하십시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십시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합니다. 같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 아픔을 깊이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민 목회의 실패를 통해, 실패의 고통 속에 있는 목회자들을 위로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용서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용서는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용서하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미움과 복수의 감옥에서 벗어납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사랑을 소생시키는 산소입니다.

다섯째,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상처가 끝이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생각보다 질깁니다. 인생은 상처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가 새로운 길을 열어 줍니다.

상처를 무조건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은 양면이 있습니다. 김정호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상처 아닌 꽃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상처와 함께 피어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깊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처 위에 부활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보혈과 생수로 우리는 용서와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상처를 통해 가장 깊은 능력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상처를 받으면 아픕니다. 상처는 흔적을 남깁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상처를 받으면 더 아픕니다. 실패와 상실의 때에 상처를 받으면 더 고통스럽습니다. 피곤할 때는 작은 상처에도 쉽게 무너집니다. 무엇보다 상처는 대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게 됩니다. 칼로 찌르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듯, 관계의 가까움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물을 씻어주고 닦아줄 수 있는 것도 가까운 이들입니다. 멀리서는 눈물을 씻어 줄 수도 없고, 눈물을 닦아 줄 수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주고받는 일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아픈 사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처만 받는 것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상처가 없는 곳은 무덤뿐입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상처는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배신, 상처, 상실, 실패의 상처가 있습니다. 학대와 언어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죄책감과 후회의 상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저 역시 상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한 상처를 덜 받고 덜 주며 목회하려고 애쓰지만, 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날마다 무릎을 꿇습니다. 마음의 정원을 가꾸듯 기도의 자리에서 제 영혼을 돌보고 있습니다.

상처의 신비는, 상처가 오히려 더 아름다운 생애를 가능케 한다는 데 있습니다. 상처를 바르게 치유하고 다루면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깊은 상처가 깊은 성숙을 만들어냅니다. 상처의 경험은 공감 능력을 길러주고,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을 열어 줍니다. 상처를 통해 인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람을 더 넓게 품을 수 있습니다.

가장 깊은 상처가 가장 깊은 힘이 될 수 이유는, 깊은 상처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라는 고통을 안고 살았으나, 그 연약함 위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렀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10).

상처는 열림입니다. 열린 상처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치유의 빛이 임합니다. 마음과 낙하산은 열리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상처를 받은 경험 때문에 마음을 닫고 살면 안 됩니다. 상처를 두려워하여 마음을 닫으면, 좋은 것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닫힌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상처는 또한 깨어짐입니다. 곡식이 으깨져 고운 가루가 될 때 소제가 드려지고, 장미가 새벽 이슬 속에서 으깨질 때 가장 귀한 향유가 만들어집니다. 상처가 가꾸어지면 향기가 됩니다. 하나님은 완고한 자가 아니라, 상처로 부드러워진 사람, 깨어진 사람을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보십시오. 그들 모두는 상처 입은 자들이었고, 깨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상처를 잘 가꾸면 상처는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상처는 공감과 연민을 키우고, 삶의 목적과 사명을 발견하게 합니다. 상처는 믿음을 키우며 영성을 깊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깊은 상처를 깊은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첫째, 상처를 인정하십시오. 상처를 인식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됩니다. 억누르거나 부정하면 더 깊은 상처가 남습니다. 환대할 때 상처는 더 이상 적이 되지 않고 우리의 친구가 됩니다.

둘째, 상처를 통해 배우십시오. 벤저민 프랭클린은 “고통은 교훈을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상처를 스승으로 삼으십시오. 저는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웠습니다. 저는 안락함보다 시련을 통해 더 많이 배웠습니다. 상처와 연약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삶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상처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사용하십시오.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십시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합니다. 같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 아픔을 깊이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민 목회의 실패를 통해, 실패의 고통 속에 있는 목회자들을 위로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용서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용서는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힘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용서하십시오. 그 순간 우리는 미움과 복수의 감옥에서 벗어납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힘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사랑을 소생시키는 산소입니다.

다섯째,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상처가 끝이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하지만 생각보다 질깁니다. 인생은 상처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가 새로운 길을 열어 줍니다.

상처를 무조건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것은 양면이 있습니다. 김정호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상처 아닌 꽃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상처와 함께 피어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깊은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처 위에 부활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보혈과 생수로 우리는 용서와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장 깊은 상처를 통해 가장 깊은 능력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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