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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سادس: إخلاء «الرياء»

   الفصل السادس : إخلاء « الرياء »         رأينا فيما سبق كيف ينبغي لنا أن نخلي ذواتنا من الكبرياء الذي يدفع الإنسان إلى رفع نفسه فوق الله، ومن الطمع الذي لا يكتفي بالله بل يطلب باستمرار أن يمتلك المزيد . والآن ننتقل إلى خطية عميقة أخرى، هي « الرياء » . الرياء هو الرغبة في أن نظهر أمام الناس بصورة تختلف عن حقيقتنا . فهو أن نحمل في داخلنا أفكارًا ومشاعر معينة، بينما نتصرف في الخارج وكأننا لا نحملها، وأن نهتم بتقييم الناس لنا أكثر من اهتمامنا بنظر الله إلينا، فنزيّن إيماننا بحسب ما نريد أن يراه الآخرون . لذلك فإن إخلاء الذات من الرياء لا يبدأ بمحاولة الظهور أمام الناس كمسيحيين أفضل . بل يبدأ بأن ننظر إلى حقيقتنا أمام الله بكل صدق، من دون أن نخفي شيئًا . قد نستطيع أن نخدع الناس . وقد نستطيع، إلى حدّ ما، أن نتحكم في الصورة التي يراها الآخرون عنا . لكن لا ينفع أي قناع أمام الله، لأن الله لا يرى فقط ما يظهر ...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선 (1) 주님의 음성만 들어야 합니다 ( 요 10:3-5).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주님의 음성을 즉각적으로 알아챕니다 .   그리고 타인의 음성에 대하여서는 자기 목자의 음성이 아니라는 이질감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즉시 도망칩니다 .   (2)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 막 8:34).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모든 식구가 자기 자신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자로 계속해서 부인하는 삶을 사는 공동체입니다 .   먼저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아내 앞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자처럼 행합니다 .   억울함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에 내 자아의 요구를 부인하고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하셨듯 배우자를 먼저 섬기는 자리로 내려갑니다 .   가정이 서로를 향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 인정하는 가정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가정입니다 .   (3)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34 절 ).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의 명예와 평판을 다 버리고 , 매일 죽으러 가는 사형수처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   (4) 가정의 공동 목적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야 합니다 (35 절 ).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 나와 복음을 위하 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에 , 주님 때문에 당하는 손해와 희생을 실패가 아닌 '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흔적 ' 으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

자녀에 관하여

자녀에 관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 22:6).   여기서 “마땅히 행할 길”을 ' 그의 길을 따라 ' 입니다 .   성경 주석과 학자들은 이 ' 길 ' 을 3 가지로 설명합니다 ( 인터넷 ): (1) 하나님 경외 :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2) 복음과 말씀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 성경 말씀을 삶의 척도로 삼는 훈련입니다 .   (3) 바른 가치관 : 재물보다 명예와 은총을 귀하게 여기고 ,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 저는 “바른 가치관”외에도 “뚜렷한 목적관”와 “영원한 인생관”을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함 ).   또한 여기서 “가르치라”는 히브리어 단어 “하노크”는 3 가지 실 제적인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 (1) " 입맛을 들이다 " 입니다 .   아이에게 "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이렇게 달콤하고 좋은 것이구나 !" 라는 맛을 보게하여 스스로 찾게 만드는 교육을 뜻합니다 .   (2) " 봉헌하다 " 입니다 .   자녀교육의 시작부터 " 이 아이의 인생은 하나님의 것입 니다 " 라고 구별하여 드리는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   (3) " 길을 들이다 " 입니다 .   “ 가르치라 ” 는 아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처음으로 방향을 잡아주고 습관화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 아이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삶의 기초 체력 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   “ 가르치라 ” 는 " 아이가 선한 것에 맛을 들이도록 돕고 ,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가르쳐서 올바른 습관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 인터넷 ).    

위기는 기회입니다! (4): 철저한 무력한 상태의 은혜

우리 인생에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 ( 말씀 ) 을 듣지 않고 사람들의 말을 듣는 잘못된 결정을 하므로 우리가 철저한 무력한 상태에 놓여있을 수 있습니다 .   이 철저한 무력한 상태는 내 능력을 걷어내고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오실 공간을 만드는 은혜입니다 .   이 공간을 만드는 은혜를 우리가 누리기 위해선 우리가 잡고 있던 인생의 키를 내려놓고 우리 인생의 유라굴로 광풍과 같은 위기조차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 참고 : 인터넷 ). https://youtu.be/eJfsD0BYFk4?si=sTflbi7N9sUomI_a

예수님이 주시는 분쟁의 목적은 “나”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관계를 허물고,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다시 세우기 위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분쟁의 목적은   “ 나 ” 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관계를 허물고 ,  “ 그리스도 ” 라는 반석 위에 다시 세우기 위한   은혜의 수단입니다 .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 아들이 아버지와 , 어머니가 딸과 , 딸이 어머니와 ,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2:51-53).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2 장 51-53 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   (a)    첫째로 , 예수님은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 아느냐 ”( 눅 12:51 상 ) 고 말씀하셨습니다 .   (i)                   저는 이 첫 번째 말씀을 묵상할 때 오래 전에 자주 불렀던 한국 복음성가 “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 이란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   1.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듯 2.       우리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