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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Lot’s Wife”: The Lord Solemnly Warns, Through a Historical Event, of the Danger of “Spiritual Double-Mindedness” (Lingering Attachment to the World) into Which Believers Living in the Last Days Can Easily Fall

  “Remember Lot’s Wife”: The Lord Solemnly Warns, Through a Historical Event, of the Danger of “Spiritual Double-Mindedness” (Lingering Attachment to the World) into Which Believers Living in the Last Days Can Easily Fall         “On that day, he who is on the housetop, and his goods are in the house, let him not come down to take them away. And likewise the one who is in the field, let him not turn back. Remember Lot’s wife. Whoever seeks to preser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it will keep it alive. I tell you, in that night there will be two in one bed;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Two women will be grinding together; one will be taken and the other left. And they answered and said to Him, ‘Lord, where?’ And He said to them, ‘Where the body is, there the vultures will be gathered.’” (Luke 17:31–37)     (1)     After reading today’s passage, Luke 17:31–37, first in the Korean Bible and then in th...

“롯의 처를 기억하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영적 양다리(세상에 대한 미련)’의 위험성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엄중히 경고하시는 주님

롯의 처를 기억하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영적 양다리(세상에 대한 미련)’ 위험성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엄중히 경고하시는 주님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밤에 둘이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7:31-37).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 31-37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인자가 나타나는 ”(30)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것이니라”(31) 말씀 속에서 헬라어 문장에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τ σκεύη ατο”( 스큐에 아우투)[“그의 세간”(개역개정/개역한글) 또는 그의 물건들”(새번역/공동번역)] “τ πίσω”( 오피소)[“뒤로”(돌이키지 것이니라)(개역개정/개역한글)].

 

(a)   “τ σκεύη ατο”( 스큐에 아우투) )[“그의 세간”(개역개정/개역한글) 또는 그의 물건들”(새번역/공동번역)]:

 

여기서 그의 물건들(세간)’ 인간이 세상에서 미련을 두기 쉬운 '물질적인 재산' '세상 소유에 대한 집착' 상징합니다.  지붕 위에서 안의 물건을 챙기러 내려가지 말라는 것은, 마지막 때에 세상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구원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인터넷).

 

(b)   “τ πίσω”( 오피소)[“뒤로”(돌이키지 것이니라)(개역개정/개역한글)]:

 

정관사 ‘τ 부사πίσω’ 만나뒤에 있는 것들(the things behind)”이라는 명사적 표현이 됩니다.  본문에서는 바로 앞의 전치사 ες(~ 향해) 함께 쓰여뒤를 향해(뒤로)” 번역됩니다”(인터넷).

 

밭에 있던 자가 ‘τ πίσω’(뒤에 있는 것들) 향해 돌이키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는, 심판과 구원의 순간에 과거의 삶이나 세상적 미련으로 마음이 향해서는 됨을 뜻합니다”(인터넷).

 

(i)                  흥미로운 점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 13절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μν πίσω πιλανθανόμενος)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인터넷).

 

·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 13절에서 사용한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μν πίσω πιλανθανόμενος)”라는 표현은, 영적 경주를 하는 신앙인이 취해야 태도를 고대 그리스의 단거리 육상 경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헬라어 의미와 영적 적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헬라어 원문의 구체적 의미

 

“τ πίσω” ( 오피소): 뒤에 있는 것들

 

바울의 과거 전체를 뜻합니다.  여기에는 그가 세상에서 자랑하던 스펙(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리새인, 가말리엘 학파 )뿐만 아니라, 과거에 저지른 치명적인 잘못(교회를 박해하고 스데반을 죽이는 동조한 ) 모두 포함됩니다.

 

“ἐπιλανθανόμενος” (에피란타노메노스): 잊어버리고

 

단어는 단순히 뇌리에서 기억이 지워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이상 마음에 두지 않다’, ‘영향력을 상실하게 만들다라는 능동적이고 단호한 선택을 뜻합니다.

 

고대 그리스 경주에서 선수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속도가 떨어지거나 넘어지기 때문에, 뒤를의식적으로 무시하는태도를 묘사합니다.

 

2.      바울이 말한뒤에 있는 것들 구체적 내역

 

바울이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뒤에 있는 가지 양면성을 가집니다.

 

과거의 성공과 자랑거리 (영적 자만 방지): 바울은 빌립보서 3 전반부에서 자신의 화려한 가문, 학벌, 종교적 열심을 언급하며, 이를 그리스도를 위해배설물 여겼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영광이나 신앙적 업적에 안주하는 순간, 현재 푯대를 향해 달릴 동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실패와 죄책감 (영적 낙심 방지): 바울은 과거에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고 죽이던박해자였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과거를 가지고 바울에게네가 그러고도 사도냐?”라며 정죄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이를잊어버렸다 것은, 십자가의 용서를 신뢰함으로써 과거의 상처와 죄책감의 매임에서 단호히 벗어났음을 의미합니다.

 

3.      현대 그리스도인을 위한 실제적 적용

 

과거의 영광에 묶이지 않기 (과거형 신앙 탈피): “내가 옛날에는 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과거에 이런 봉사를 했다 식의 왕년의 신앙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 경주는 매일 아침 새로운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실패와 정죄감에서 자유하기: 과거의 실수, 영적 넘어짐, 상처에 발목이 잡혀나는 라고 낙심하는 자책감을 끊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이 서에서 같이 옮기신( 103:12) 우리의 죄과를 우리 스스로 다시 들추어 보며 경주를 멈추어서는 됩니다.

 

오직 (푯대)에만 시선 고정하기: 그리스 선수는 결승선 너머에서 상을 들고 기다리는 심판관만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우리의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실 하늘의 상급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말씀의 핵심 적용입니다(인터넷).

 

(2)   둘째로, 저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17:32)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a)   먼저 예수님께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μνημονεύετε τς γυναικς Λώτ (므네모뉴에테 테스 귀나이코스 로트)]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가장 짧고도 강력한 명령 하나인롯의 처를 기억하라 말씀하신 이유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영적 양다리(세상에 대한 미련)’ 위험성을 역사적 사건을 통해 엄중히 경고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의 가지로 요약할 있습니다”(인터넷):

 

1.      몸만 구원받고 마음은 소돔에 두었기 때문 (영적 위선 경고)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소돔 밖으로 나오는외형적 구원의 대열에는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소돔의 물질적 풍요와 화려한 삶의 터전 σκεύη, 세간) 묶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거나 종교적인 모양새를 갖추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님을 경고하십니다.

 

몸은 세상(소돔)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세상을 동경하는반쪽짜리 신앙 결국 심판을 피할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2.      뒤를 돌아보는 불신앙이기 때문 (시선의 방향)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 19:17) 명확히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본 행동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보다 자신이 두고 세상 재물을 가치 있게 여긴불순종이자불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31절에서 밭에 있는 자도뒤로ς τ πίσω) 돌이키지 말라 하셨습니다.

 

구원의 여정에서는 오직 전방(하나님 나라) 바라보아야 하며, 과거의 삶이나 세상적 미련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영적 전진이 멈추고 소금 기둥처럼 굳어버리게 됨을 상기시키신 것입니다.

 

3.      마지막 심판은 예고 없이, 순식간에 임하기 때문 (긴박성)

 

누가복음 17장의 문맥은 노아의 때와 롯의 때처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집을 짓다가 순식간에 심판을 맞이하게 것을 묘사합니다( 17:28-30).

 

심판의 날이 임할 때는 안의 물건을 챙기러 지붕에서 내려올 시간조차 없을 만큼 긴박합니다.

 

예수님은 롯의 처를 소환하심으로써, “마지막 순간에 세상 미련 때문에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영적 긴박감을 제자들의 마음에 심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약 현대적 적용:

 

예수님이 우리에게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너희는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뒤에 있는 것들’(세상의 성공, 미련, 혹은 과거의 실패) 단호히 의도적으로 잊어버리고(πιλανθανόμενος), 오직 앞만 바라보며 달려가라는 주님의 간절한 권고입니다(인터넷).

 

(3)   셋째로, 저는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17:33) 예수님의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다시 읽었을 “περιποιήσασθαι”(페리포이에사스다이)(획득하다/보존하다)라는 단어와 “ζωογονήσει”(조오고네세이)(살리다/생명을 보존하다)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단어를 사용하신 것일까요?

 

(a)   예수님께서생명을 보존하다살리다 표현할 일부러 가지 서로 다른 단어를 대조하여 사용하신 데에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지키려는 인위적인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생명의 보존이 어떻게 다른지 본질을 폭로하기 위함입니다.  구체적인 차이와 예수님의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인간의 인위적인 움켜쥠: περιποιέω (페리포이에사스다이)

 

어원적 의미: 주변을 뜻하는 ‘περί(페리)’ 만들다를 뜻하는 ‘ποιέω(포이에오)’ 합쳐진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모아두다’, 자신의 소유로 삼다’, ‘따로 챙겨두다라는 뜻입니다.

 

뉘앙스: 단어는 주체가인간 자신입니다.  나의 힘과 지혜, 그리고 재물을 가지고 삶의 안전지대(울타리) 악착같이 구축하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의도: 마지막 심판의 때에 안의 세간살이(σκεύη) 챙기려 지붕에서 내려가거나, 소돔의 재물이 아까워 뒤를 돌아본 롯의 처처럼 힘으로 물질과 목숨을 소유하고 지켜내겠다 이기적이고 인위적인 집착을 고발하기 위해 단어를 쓰셨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울타리를 치는 자는 결국 울타리와 함께 파멸(πολέσει)합니다.

 

2.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살리심: ζωογονέω (조오고네세이)

 

어원적 의미: 생명을 뜻하는 ‘ζωός(조오스)’ 낳다·발생시키다를 뜻하는 ‘γίνομαι(기노마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직역하면생명을 출산하다’,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뉘앙스: 단어는 출산과 관련된 단어로, 생명의 주권이 인간이 아닌하나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새롭게 산출하시고 끝까지 살아남게 만드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의도: 주님을 위해 땅의 소유와 목숨을 기꺼이 포기한(잃은) 자들에게는, 인간이 울타리와는 비교할 없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생명의 능력(부활과 영생) 임하여 그들을진짜 살아있는 존재 건져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요약: 단어를 다르게 쓰셨는가?

 

예수님은 단어의 대조를 통해 참된 구원의 원리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자기 생명과 재산 주변에 울타리를 치고 움켜쥐려는 행위(περιποιήσασθαι) 결국 실패하지만,

 

하나님이 주체가 되심을 인정하고 주님을 위해 삶을 기꺼이 내어드릴 , 하나님께서 친히 생명을 새롭게 출산하시고 영원히 살려내신다(ζωογονήσει) 강력한 영적 진리입니다.

 

, "내가 움켜쥐면 죽고, 하나님께 맡기면 산다" 종말론적 역설을 단어의 뉘앙스를 통해 완벽하게 대조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인터넷).

 

(4)   넷째로, 저는 예수님께서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밤에 두사람이 침대에 누워 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것이며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것이다.  ( 사람이 밭에 있어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 것이다.)”(17:34-36,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신 것을 헬라어 성경으로 다시 읽었을 3번이나 반복되는 ες 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 κα τερος φεθήσεται”( 헤이스 파랄렘프데세타이 카이 헤테로스 아페데세타이)(“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a)   예수님께서 엄중한 문장(‘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번이나 형태를 바꾸어 반복하신 이유는 종말의 긴박성과 구원의 철저한 개별성을 성별, 공간, 계층을 초월하여 각인시키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함과 확실함, 그리고 강력한 강조를 뜻합니다.  구체적으로 반복된 영적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모든 인간 환경의 총망라 (예외 없는 종말)

 

예수님은 가지 다른 일상적 배경을 제시하며, 지구상의 어떤 인간도 인자의 임함(종말)에서 예외가 없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밤과 낮의 동시성: 침상() 맷돌·() 모두 언급하심으로써, 종말이 지구적으로 순식간에 임할 것을 보여줍니다.

 

성별과 계층의 초월: 당시 사회적 기준이었던 남성(밭에 있는 )뿐만 아니라, 소외받던 여성(맷돌 가는 )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동일한 심판과 구원의 저울대 위에 서게 됨을 강조합니다.

 

2.      외적 연대감에 대한착각 철저한 깨뜨림

 

가장 친밀하고 분리할 없어 보이는 관계도 종말의 순간에는 완전히 갈라집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침상): 부부나 가족처럼 육체적·정서적으로 하나 관계입니다.

 

경제적 동업 관계(맷돌질): 생계를 위해 사람이 마주 앉아 무거운 돌을 돌리는 호흡이 일치된 관계입니다.

 

사회적 노동 관계():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흘리는 동료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세상에서 가까운 사이였을지라도, " 옆의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내가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번이나 박자감 있게 반복하며 경고하신 것입니다.

 

3.      종말의 확실성과 불가역성 (Warning)

 

히브리적 표현 기법에서 동일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는 것은 " 일은 반드시, 예외 없이, 그대로 일어난다" 절대적인 확실성을 의미합니다.

 

노아의 홍수와 소돔의 심판을 언급하신 직후 말씀을 삼세번 반복하심으로써, 다가올 심판이 결코 비유나 위협용 농담이 아닌 인류가 맞닥뜨릴 가장 생생한 현실임을 경고하셨습니다.

 

4.      영적 단독자로서의깨어 있음촉구

 

번의 반복은 듣는 이로 하여금 "나는 과연 데려감을 당할 (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인가, 남겨질 (φεθήσεται)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만듭니다.  타인의 신앙이나 교회라는 공동체의 울타리 뒤에 숨지 말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지금 당장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강력한 다그침입니다(인터넷).

 

(i)                  문장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우주적이고 철저한 영적 분리 선언하는 매우 엄중한 말씀입니다.  단어의 구체적인 의미와 예수님께서 이를 번이나 반복하신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단어별 상세 의미와 뉘앙스

 

“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 (파랄렘프데세타이): 데려감을 당할 것이요 (will be taken)

 

문법: 원형은 ‘παραλαμβάνω(파라람바노)’, ‘~곁에(παρά)’취하다(λαμβάνω)’ 결합한 동사의 미래 수동태형입니다.

 

뉘앙스: 영접하다, 동반자로 친밀하게 맞아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4 3절에서 예수님이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παραλήμψομαι)”라고 하실 쓰인 단어입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의 자리, 하나님 나라의 잔치 안으로 이끌림을 받는 상태를 뜻합니다.

 

“ὁ τερος” ( 헤테로스): 다른 하나는 (and the other)

 

복음서에서 그냥 다른 하나가 아니라 성질, 종류, 방향이전혀 다른 종류의 타자 구별할 주로 쓰입니다.  구원받은 자와 본질적으로 운명이 갈라진 사람을 뜻합니다.

 

φεθήσεται” (아페데세타이):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will be left)

 

문법: 원형은φίημι(아피에미)’, ‘~로부터 떠나(πό)’보내다(ημι)’ 결합한 동사의 미래 수동태형입니다.

 

뉘앙스: 내버려 두다, 떠나보내다, 거절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임재와 구원의 은혜 밖으로 격리되어, 노아의 홍수나 소돔의 심판 때처럼 자리에 그대로 방치되어 심판을 맞이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b.     번의 반복(침대, 맷돌, ) 가지는 구체적인 영적 의미

 

예수님은 (침대) (맷돌 갈기, 밭일) 일상적 삶을 배경으로 문장을 반복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외형적인 조건은 구원의 기준이 아니다.

 

침대에 누운 부부나 형제, 함께 맷돌을 가는 이웃, 밭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는 겉보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삶의 방식, 직업, 환경, 신분이 완전히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중심의 영적 상태(세상에 미련을 롯의 처인가, 오직 앞만 바라보는 바울인가) 따라 운명은 빛과 어둠으로 완전히 갈라집니다.

 

구원은 철저히 1:1, 개인적이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가족( 침대)이라 할지라도, 공동체나 가족의 이름으로 도맡아 구원받을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사이의 철저한 개인적인 관계입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세상의 어떤 인간적 유대관계도 영원한 분리를 막을 없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일상 속에서 예고 없이 임한다.

 

사람들이 잠을 자고, 요리하기 위해 맷돌을 갈고, 생업을 위해 밭에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 인자의 날이 임합니다.  특별한 징조를 기다리며 미루는 신앙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깨어 있어야 함을 경고합니다.

 

요약 결론:

 

예수님이 문장을 번이나 외치신 것은겉모습이 똑같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라 뜻입니다.

 

앞서 살핀 31~33절의 맥락과 연결하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세상 세간살이(σκεύη) 움켜쥐려고 (πίσω) 돌아보는 자는 자리에버려둠을 당할’(φεθήσεται) 것이요, 세상 미련을 잊어버리고 주님께 목숨을 맡긴 자는 주님 곁으로데려감을 당할’(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 것입니다.

 

결국 반복된 문장은 "너는 지금 겉으로는 함께 일하고 있으나, 마지막 그날에 주님 곁으로 이끌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묻는 주님의 엄중한 종말론적 질문입니다(인터넷).

 

(5)   마지막 다섯째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주여 어디오니이까”[(현대인의 성경) “주님, 어디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들기 마련이다”](17:37)하고 말씀하셨는데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리 말씀하신 것일까요?

 

(a)   누가복음 17장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37절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말씀은,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난해한 구절 하나입니다.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을 헬라어 문맥과 당시의 배경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엄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인터넷):

 

1.      제자들의 질문: “주여 어디오니이까?” (Πο, Κύριε)

 

제자들은 방금 예수님의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소가어디[Πο()]’인지를 묻습니다.

 

구원받는 자들이 데려감을 당하는 영광스러운 장소가 어디인지, 혹은 심판을 받아 버려지는 끔찍한 장소가 구체적으로 지구상 어디인지를 묻는 지리적·공간적 호기심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답변과 단어의 뉘앙스

 

예수님은 지명을 말씀하시는 대신 고대 근동의 흔한 자연 현상을 격언으로 제시하십니다: “που τ σμα, κε κα ο ετο πισυναχθήσονται”(호푸 소마, 에케이 카이 호이 아에토이 에피스위낙데손타이)(“시체가 있는 , 바로 그곳에 독수리들도 함께 모여들 것이다”).

 

“τ σμα” ( 소마): 마태복음 24 28(평행본문)에서는 '송장' 뜻하는 'πτμα(프토마)' 썼으나, 누가는 ', 주검' 뜻하는 '소마' 사용했습니다.  영적으로 생명을 잃고 부패해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ο ετοὶ” (호이 아에토이): 독수리(eagles) 또는 시체를 먹는 독수리과 (vultures) 의미합니다.

 

πισυναχθήσονται” (에피스위낙데손타이): ‘함께 모여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단어의 명사형이 성도들의 마지막 모임을 뜻하는에피시나고게’[πισυναγωγή (모임·휴거)]입니다.

 

3.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핵심 의미 3가지)

 

예수님이 비유를 쓰신 이유는 제자들의 잘못된 호기심을 깨뜨리고, 심판의 영적 원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심판의 확실성과 필연성 (자연적 불변의 법칙)

 

하늘을 날던 독수리들은 위의 시체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어 순식간에 떼를 지어 내려옵니다.  시체가 있으면 독수리가 모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필연적인 자연의 이치입니다.

 

예수님은어디서 심판이 일어날지 장소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영적으로 부패하고 죽어 있는 (시체)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독수리) 자연 법칙처럼 필연적이고 정확하게 자리에 임한다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주적이고 전면적인 심판 (특정 장소의 제한을 깨뜨림)

 

제자들은 "유대 땅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하고 특정 장소를 궁금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장소의 제한을 없애버리셨습니다.  심판은 어느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나 소돔의 유황불처럼 영적 타락이 극에 달한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 동시에, 그리고 우주적으로 임한다는 경고입니다.

 

로마 군대를 통한 예루살렘 심판의 예언 (역사적 배경)

 

당시 유대인들에게 말씀은 역사적으로 매우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을 심판할 로마 군대의 군기(깃발) 문양이 바로독수리(Aquila)’였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시체처럼 변해버린 예루살렘(유대 종교) 향해, 로마 군대(독수리) 사방에서 모여들어 멸망시킬 (주후 70 예루살렘 멸망) 이중적으로 예언하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누가복음 17 전체의 영적 결론

 

누가복음 17 31절부터 37절까지 놀라운 하나의 흐름이 완성됩니다.

 

·         마지막 때에는 집안의 세간살이(σκεύη) 챙기려고 뒤로(πίσω) 돌이켜서는 됩니다(31).

 

·         몸만 빠져나오고 마음은 세상에 두어 뒤를 돌아본 롯의 처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32).

 

·         세상 안전을 위해 자기 삶을 움켜쥐려는 (περιποιήσασθαι) 죽고, 주님께 맡기는 자는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살리십니다(ζωογονήσει) (33).

 

·         똑같은 일상을 살지만 사람은 주님 곁으로 데려감을 당하고(παραλημφθήσεται), 세상 미련을 사람은 자리에 버려집니다(φεθήσεται)(34-36).

 

·         장소가 어디일지 호기심을 갖기보다, 지금 영혼이 심판을 부르는죽은 시체 상태인지, 아니면 주님을 맞이할살아있는 상태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본질입니다(37).

 

결국 예수님은 장소나 시기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 나의 일상 속에서 세상 미련을 버리고 깨어 있으라는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신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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