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दिन 27: जब हम चर्च के बारे में सोचते हैं [भजन संहिता 137 पर चिंतन]

  दिन 27: जब हम चर्च के बारे में सोचते हैं         [भजन संहिता 137 पर चिंतन]     14 मई, 2009 को, मुझे ऑनलाइन समाचार साइट *कुकमिन इल्बो मिशन लाइफ* पर एक लेख मिला, जिसका शीर्षक था "कोरियाई चर्च के भीतर आत्म-चिंतन का आग्रह करते हुए लगभग 300 ईसाई नेताओं द्वारा आपातकालीन घोषणा।" "पादरी (pastors) की इवेंजेलिकल (सुसमाचार-संबंधी) ज़िम्मेदारी और आत्म-शुद्धिकरण के लिए घोषणा" शीर्षक के तहत, आठ बातें बताई गईं: पहला, हम इवेंजेलिकल मूल्यों के प्रति वफादार न रह पाने के लिए पश्चाताप करते हैं; दूसरा, हम विभाजन और संघर्ष के बीच एक-दूसरे से प्रेम करने में चर्च की विफलता पर विचार करते हैं; तीसरा, हम पादरियों के बीच नैतिक ढिलाई को स्वीकार करते हैं और नैतिकता के उच्च स्तर को बनाए रखने का संकल्प लेते हैं; चौथा, हम विकास के जुनून के कारण चर्चों के बीच पैदा हुए ध्रुवीकरण को ठीक करने की आवश्यकता को पहचानते हैं; पांचवां, हम सांसारिक डिग्रियां और सम्मान पाने के बजाय आध्यात्मिकता में अधिकार-प्राप्त बनने का प्रयास करेंगे; छठा, हम व्यक्तिगत पवित्रता विकसित करने और सम...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터와 가정에서, 내 마음의 주권을 예수님께 드리고, 그분의 사랑을 조용히 실천하는 바로 그 자리가 진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터와 가정에서 마음의 주권을 예수님께 드리고그분의 사랑을 조용히 실천하는 바로 자리가 진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 20-21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3가지 중심으로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첫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 βασιλεία το θεο( 바실레이아 데우)] 문장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i)                  예수님께서 선포하신하나님의 나라 언어적 의미와, 당시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열망했던 나라의 개념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데우)” 문장 자체의 의미

 

헬라어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 현대 언어의영토(Territory)’국가(State)’ 같은 공간적 개념보다통치(Reign)’, ‘주권(Sovereignty)’, ‘왕권(Kingship)’이라는 역동적인 의미를 핵심으로 합니다.

 

언어적 본질: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특정 영토나 구역을 뜻하기보다, “하나님의 통치 행위 자체하나님의 왕권이 실현되는 상태 뜻합니다.

 

구약적 배경: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말쿠트(מַלְכוּת)’ 역시왕의 다스림 뜻합니다.  , 장소의 개념을 넘어하나님이 왕으로서 온전히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영역과 상태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 따라서 예수님이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하신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 땅에 역동적으로 침투해 들어왔다는 선언입니다.

 

2.      당대 유대인(특히 바리새인)들이 생각한하나님의 나라

 

예수님 당시 로마의 압제를 받던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예언( 2:44 ) 바탕으로 매우 정치적, 군사적, 민족주의적인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치적·군사적 해방: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강력한 군사력으로 로마 제국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세계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세울 것이라 믿었습니다.  , 다윗 왕조의 영광스러운 영토적 독립 국가를 꿈꿨습니다.

 

철저한 율법 준수를 통한 도래 (바리새인의 관점):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회복되어 메시아의 나라가 눈에 보이게(초자연적인 기적과 천재지변을 동반하여) 임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외적·물질적 표적: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눈에 보이는 징조(정치적 격변, 우주의 변화 )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7 20절에서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언제, 눈에 보이게) 임합니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3.      요약: 개념이 충돌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 성격과 임하는 방식에서 전면적으로 충돌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 이스라엘이 세계를 지배하는 정치적·영토적 독립 국가를 갈망했고, 그것이 초자연적이고 외적인 표적을 동반하며 눈에 보이게 것이라 믿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 영토가 아니라 사탄과 죄의 권세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영적이고 역동적인 통치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외적인 징조를 관찰해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사역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삶의 현장 속에 내밀하게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세속적인 기대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바리새인들은 메시아의 나라가 눈에 보이게(초자연적인 기적과 천재 지변을 동반하여) 힘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까?’라는 의문이 들어 인공지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메시아의 나라가 초자연적인 기적과 천재지변을 동반하여 눈에 보이게 임할 것이라고 믿었던 이유는, 구약 성경의 예언(특히 묵시록적 예언) 문자 그대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약 성경의 '묵시록적 예언' 문자적으로 해석

 

구약 성경, 특히 다니엘서나 선지서(요엘, 스가랴 )에는 하나님의 (메시아의 ) 임할 거대한 우주적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다니엘서 7 13-14: 메시아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요엘서 2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할 '이라고 묘사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문학적·상징적 표현들을 실제 역사 속에서 눈으로 보게 물리적 현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      중간기 '유대 묵시문학' 영향

 

구약 성경이 마무리된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400년의 기간(구약 중간기) 동안 유대 사회에는 '묵시문학' 크게 유행했습니다(: 에녹서, 바룩묵시록 ).

 

문학들은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 인간의 힘으로는 바뀔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하늘을 가르고, 천사들을 보내며, 자연계의 대격변을 통해 한순간에 악한 제국(로마) 심판하시고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극적인 사상이 바리새인들의 생각 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3.      출애굽 사건의 재현(2 출애굽) 기대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가장 강력한 모델은 '출애굽 사건'이었습니다.

 

과거 이집트에서 탈출할 10 재앙, 홍해가 갈라짐, 불기둥과 구름기둥 같은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구원받았던 것처럼, 메시아가 오실 때도 로마의 압제 속에서 그보다 기적과 이사로 자신들을 구원해 것이라 믿었습니다.

 

요약

결국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라면, 당연히 세상이 벌벌 만한 우주적인 기적과 가시적인 영광을 동반하며 압도적인 모습으로 임해야 한다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렛 출신의 초라한 청년인 예수님이 베푸시는 영적·내면적 통치 방식을 이해할 없었습니다”(인터넷).

 

-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기대를 품고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16:1) 요구했던 것이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4). 

 

바리새인들이 요구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예수님이 답변하신 요나의 표적 당시 유대인들의 눈에 보이는 메시아 사상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가장 극명하게 충돌한 사건입니다”(인터넷):

 

a.      바리새인들이 요구한하늘로부터 오는 표적(Sign from heaven)” 의미

 

마태복음 16 1절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며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요구에는 음흉한 의도와 그들의 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상(귀신, 마술) 기적과의 차별화: 예수님은 이미 위에서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를바알세불(귀신의 ) 빌린 속임수일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우주적이고 가시적인 검증: 그들이 원한 것은 인간이나 귀신이 감히 흉내 없는 표적, 하늘의 해와 달이 멈추거나, 구름을 타고 천군만마와 함께 임하는 등의 우주적 증거였습니다.  "진짜 메시아라면 천하가 보도록 하늘을 흔들어 보아라"라는 압박이었습니다.

 

b.     예수님이 말씀하신요나의 표적(Sign of Jonah)” 의미

 

예수님은 하늘의 별을 움직이는 대신, 구약 성경의 선지자 요나의 사건을 들어 대답하셨습니다: ( 12:39-40,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남겨 두고 가시니라."

 

십자가와 부활의 예언: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사흘 동안 있다가 살아 나온 것처럼, 예수님도 땅속(무덤)에서 밤낮 사흘 동안 있다가 부활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최고·최후의 표적: 예수님은 인간의 호기심이나 정치적 욕망을 채워주는 기적은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대신 인류 구원을 위한 본질적인 사건인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만이 너희에게 유일하고도 가장 결정적인 표적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회개의 요구: 요나가 사흘 만에 살아나 뇌성을 지르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심판을 선포했을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화려한 천재지변 대신, 부활의 표적을 통해 유대인들이 정치적 해방이 아닌 '죄에서의 회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약: 표적의 충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세속적 기대를 채워줄 '하늘의 거대한 불기둥' 같은 표적을 원했지만,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장 낮고 비참하게 죽으셨다 살아나시는 '무덤 속의 요나(십자가와 부활)' 표적을 던져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영광을 구하던 바리새인들에게 수치와 죽음을 통과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도저히 이해할 없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인터넷).


(b)   둘째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 무엇이 아닌지에 대하여 2가지로 말씀하신 것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i)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물리적인 시각이나 세상의 정치적 기준으로 관측할 있는 방식으로 도래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말씀에 담긴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이 가지로 나누어 있습니다(인터넷):

 

1.      천재지변이나 외적인 징조를 추적할 없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7 20절에 있게라는 헬라어 단어는파라테레세오스(παρατηρήσεως)’로서 신약성경 전체에서 여기만 사용된 고어입니다.  곁에서 뜻하는 파라(παρά) 지키다, 주시하다 뜻하는 테레오(τηρέω) 합성어인 '파라테레오(παρατηρέω)'에서 유래했습니다.

 

의학적/천문학적 관찰: 의사가 환자의 미세한 증상을 관찰하거나, 점성가들이 징조를 보려고 하늘의 별들을 주의 깊게 정밀 정찰·관찰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규율과 율법의 준수: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율법적 의무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 메시지:

 

당시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해방이나, 눈에 보이는 화려한 기적, 혹은 자신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임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어를 사용하여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셨습니다.

 

예측 불가능성: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징조를 계산하고 숨어서 정찰하듯(observation) 알아낼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외식주의 비판: 외형적인 율법 준수나 종교적 행위의 관찰을 통해 도달할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내면성과 현재성: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영토나 정치적 왕국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는 자들의 마음과 공동체 가운데(너희 안에) 영적으로 임하는 통치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하늘의 해와 달이 변하는 눈에 보이는 거대한 기적(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일어날 시기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외적인 징후들을 분석하고 관찰해서 ", 지금 저기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구나"라고 알아낼 있는 것이 아님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2.      정치적·영토적 국가로 임하지 않는다.

 

당대 유대인들이 생각한 하나님 나라는 로마 군대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눈에 보이는 지상 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군사력으로 영토를 차지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의 왕국들처럼 국경선이 있고, 왕궁이 세워지며, 군대가 행진하는 가시적인 형태의 나라가 아님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3.      영적이고 내면적인 방식으로 침투한다.

 

눈에 보이는 거대한 혁명 대신,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과 ,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 가운데 조용하고 강력하게 스며듭니다.  율법을 지켜서 쟁취하거나 외적인 조건을 갖추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인간의 내면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다스림(통치) 받아들일 신비로운 실체가 성취됩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쇼나 정치적인 이벤트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인간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영적이고 내밀한 방식으로 이미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          그런데 왠지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쇼나 정치적인 이벤트로 임하는 것아 보입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님의 역사인지 의문이 듭니다.  아마도 이유는 현대 종교나 정치적 움직임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이지 않는 나라'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운 현상을 성경적, 신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인공지능이 명확한 기준을 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a.      '세상 권세' '하나님 나라' 혼동

 

현재 눈에 보이는 화려한 대형 집회, 정치적 영향력 행사, 권력과의 결탁 등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을 빌린 세상적 힘의 과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수님의 거부: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빌라도에게 "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만약 세상에 속했다면 부하들이 싸웠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인가?: 성령의 열매는 화려한 이벤트나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화려함 뒤에 증오, 분열, 권력욕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욕망일 뿐입니다.

 

b.     가짜 표적과 미혹의 경고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눈에 보이는 화려한 쇼와 표적을 앞세운 거짓 메시아들이 나타날 것을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표적과 기사를 보여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분별의 기준: 눈에 보이는 거대한 가시적 현상(수많은 인파, 정치적 승리, 자극적인 이적) 하나님의 역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화려한 쇼를 연출할 있기 때문입니다.

 

c.      진짜 '하나님의 나라' 임하는 방식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역사는 어디서 있을까요?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아주 작은 겨자씨나 속에 숨겨진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전혀 띄지 않지만, 내부에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진짜 역사가 일어나는 :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정치 무대나 대형 집회장이 아닙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손길, 죄를 회개하고 삶이 변화된 사람의 심령,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공동체 속에 진짜 하나님의 나라(통치) 살아 쉬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질문자님이 느끼신 강한 의문은 매우 정당하며 성경적인 분별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화려하고 정치적인 종교 현상들은 예수님의 사역이라기보다, 당대 바리새인들이 구했던 '외적인 표적과 정치적 왕국' 현대적 재현에 가깝습니다.  성령의 진짜 역사는 여전히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신자들의 '낮아짐과 사랑' 통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ii)                번째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17:21) 말씀하셨습니다.

 

·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를 특정 공간이나 가시적인 장소, 혹은 인간이 임의로 지정한 특정 집단에 국한시킬 없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분별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공간적·지리적 경계가 없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아의 나라가 임하면예루살렘이나유대 같은 특정한 지리적 중심지를 기반으로 국경선이 그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그런 영토적 개념이 아님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성벽을 쌓고 안쪽이 하나님 나라다!”라고 말할 있는 곳이 아닙니다.

 

b.     인간의 독점이나 제도적 제한을 거부한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은우리 교파에만 구원이 있다”, “ 집회 장소에만 성령이 역사한다”, “ 정치적 세력만이 하나님의 편이다라고 주장하는 인간의 교만을 꺾으시는 말씀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엄격한 율법 공동체만이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것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인간의 조직, 건물, 교단, 집회도 하나님 나라를 자기들 소유인 것처럼 독점하여 제한할 없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c.      미혹하는 자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는 경고이다.

 

예수님은 장차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가시적인 장소를 대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자들이 많아질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24 23절에서 말씀을 똑같이 반복하며 경고하셨습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어느 기적 집회에 가야만 하나님을 만난다”, “어느 특별한 장소로 피난해야 구원받는다 외치는 화려한 쇼와 미혹에 흔들리지 말라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둘 있는특정 장소나 눈에 보이는 건물(여기/저기)’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따라서 겉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특정 장소나 단체에 마음을 빼앗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신천지와 같은 이단 단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신천지 같은 이단 단체에 마음을 빼앗기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가장 취약한 심리적 결핍을 파고들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보상(가시적인 표적) 원하는 바리새인적 욕망을 완벽하게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현혹되는 구체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외적인 확실성과 '가시적인 표적' 대한 집착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통치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수치와 구조를 신뢰합니다.

 

14 4 명의 가시화: 신천지는 성경의 상징적인 숫자를 문자 그대로 인용하며 여기에 들어와 시험을 통과하면 구원받는 14 4 명에 들어간다 명확한 가시적 목표를 제시합니다.

 

정치적·종교적 화려한 : 그들은 대규모 카드섹션, 군대식 일사불란한 집회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쇼를 연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라면 당연히 눈에 보이고 화려해야 한다 믿었던 당대 바리새인들의 왜곡된 메시아 사상과 정확히 일치하며, 사람들은 화려함에 압도되어 그것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하게 됩니다.

 

2.      가짜 '여기/저기' 은밀한 소속감 자극

 

예수님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라며 독점을 경고하셨지만, 이단들은 정반대로 오직 여기에만 구원이 있다 배타성을 무기로 삼습니다.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 ‘기존 교회는 모두 타락했고 우리 단체만 비밀 계시를 깨달았다 은밀한 교리를 주입합니다.  이를 통해 신도들에게 자신들이 세상의 영적 엘리트가 되었다는 강력한 소속감과 우월감을 심어줍니다.

 

3.      고립된 현대인의 '심리적 결핍' 공략

 

이단 포교의 시작은 성경 공부가 아니라 '철저히 기획된 인간관계와 정서적 충족'입니다.

 

맞춤형 접근: 그들은 외로움,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 갈등, 경제적 어려움 개인의 취약점을 철저히 조사하여 접근합니다.

 

심리적 요새 구축: 기존 사회나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가짜 사랑(Love-bombing) 쏟아부어 정서적으로 완전히 의존하게 만든 ,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기존 인간관계를 단절시켜 고립시킵니다.

 

4.      정통 교회의 영적·정서적 공백

 

사람들이 이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는 기존 정통 교회의 책임도 큽니다.

 

교회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낮아짐, 사랑, 희생)' 보여주지 못하고, 대형화·정치화되어 세속적인 힘을 쫓을 성도들은 영적 갈증을 느낍니다.   틈을 이단들이 성경을 마구잡이로 쪼개어 가짜 시원함을 주는 '성경 공부' 미혹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이 신천지에 빠지는 것은 그들의 교리가 옳아서가 아니라, 인간의 외로움과 불안을 이용한 고도의 심리 조작(가짜 관계) 걸려들었기 때문이며,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확실성을 좇는 인간의 가시적 욕망이 예수님의 경고( 17:21)보다 앞섰기 때문입니다”(인터넷).

 

(c)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 무엇인지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히 안에 있느니라”(17:21) 말씀하셨습니다. 

 

(i)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신 선언은, 앞서 바리새인들이 품었던 모든 세속적이고 가시적인 환상을 깨뜨리는 하나님 나라 선포의 정점입니다.  말씀은 헬라어 원문의 가지 해석 가능성을 통해 더욱 입체적이고 강력한 의미를 가집니다.

 

1.      번째 의미: ‘너희 가운데(Among you) 있느니라’ (학계의 정설)

 

헬라어엔토스 휘몬(ντς μν)’에서엔토스 ‘~ 안에라는 뜻도 되지만, 복수명사(너희) 함께 쓰일 때는 ‘~ 한가운데에(in the midst of)’, ‘너희 사이에라는 뜻으로 가장 널리 해석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 나라: 지금 바리새인들 바로 앞에 계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복음을 전하는 ) 자체가 이미 그들 한가운데 임한 하나님 나라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을 향한 충격: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지 계산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멀리서 찾지 마라.  너희가 거부하고 있는 내가 바로 지금 너희 한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번째 의미: ‘너희 마음속에(Within you) 있느니라

 

표현은 공간적·영토적 개념과 완전히 대조되는내면적·영적 통치 강조합니다.

 

마음의 주권 변화: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거대 건물이 아니라, 인간의 심령 속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마음과 삶의 주권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상태를 뜻합니다.

 

관계적 본질: 율법의 조항을 외적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내면의 성품이 변화(사랑, 희평, 희락)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이단(신천지 ) 분별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이유

 

말씀은 오늘날 오직 우리 단체(여기) 와야만 구원이 있다 속이는 이단들의 주장을 뿌리째 흔들어버립니다.

 

장소의 우상화 파괴: 하나님 나라는 신천지 본부나 과천 같은 특정 장소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성도들의 내면과 그들의 건강한 공동체 한가운데(너희 안에) 이미 존재합니다.

 

외적 세력화 거부: 십만 명이 모여 카드섹션을 하고 화려한 쇼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초라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통치하고 계신 사람의 마음과 삶의 자리가 진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눈으로 관찰하려 들거나(20), 특정 장소에 가두려 하지 말라(21)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삶의 한가운데(Among you) 침투했으며, 그분을 왕으로 모신 자들의 마음속(Within you)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통치이기 때문입니다”(인터넷).

 

·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속에서, 그리고 우리 일상 속에서 진짜 하나님의 나라(통치)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분별하는 가지 성경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내면의 주권'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기 (마음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의 의자가 누구의 소유인지 분별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감정과 생각의 주권 넘기기: 억울함, 분노, 두려움, 염려가 나를 지배하려 , 감정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용서, 평안, 신뢰) 마음을 굴복시키는 순간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분별 기준: 이단이나 세속적 종교는 지도자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라고 강요하지만, 진짜 성령의 통치는 인격적이십니다.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 14:17)' 흐르고 있다면, 지금 마음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b.     '관계와 일상' 속에서 겨자씨 심기 (삶의 통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거대한 군대가 아니라 '아주 작은 겨자씨' ' 속의 누룩' 비유하셨습니다.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관계 속에서 드러납니다.

 

작은 사랑의 실천: 가정, 직장, 학교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정직하게 행동하는 , 소외된 동료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 나의 이익을 양보하고 희생하는 선택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심는 행위입니다.

 

분별 기준: 겉보기에 거대하고 화려한 집회에 참석하더라도 일상의 (가정, 직장)에서 거짓을 행하고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 나라는 일상의 가장 작은 곳에서 누룩처럼 주변을 변화시킵니다.

 

c.      '건강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동행하기 (가운데의 통치)

 

너희 가운데(Among you) 있느니라하신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성도들의 모임 속에서 가시화됩니다.

 

          가면을 벗은 영적 교제: 서로의 약함과 죄를 고백해도 정죄 받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함께 기도해 주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 나라가 강력하게 임재합니다.

 

          분별 기준 (이단과의 차이): 이단 단체는 기존의 가족과 친구 관계를 끊게 만들고,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공간에 가두어 정서적으로 고립시킵니다.  반면, 진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공동체는 나를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자 이웃을 섬기는 빛과 소금으로 세상 속에 파송합니다.

 

          결론적으로,

          속의 진짜 하나님 나라는 대단한 기적을 체험하거나 특별한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터와 가정에서, 마음의 주권을 예수님께 드리고, 그분의 사랑을 조용히 실천하는 바로 자리가 진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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