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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يوم الخامس والثلاثون: شيخٌ جميل

    اليوم الخامس والثلاثون : شيخٌ جميل       [ تأمل في المزمور 71: 9]     " لا ترفضني في وقت الشيخوخة؛ لا تتركني حين تفنى قوتي " ( مزمور 71: 9).     شخصياً، لا أحب الإشارة إلى كبار السن بمجرد كلمة *noin-ne* ( وهو مصطلح غير رسمي، وأحياناً يحمل دلالة انتقاص أو استخفاف بمعنى " عجوز "). ومع ذلك، وبينما كنت أتأمل في نص اليوم وأضع عنواناً لهذه الخاطرة هو " شيخ جميل " ، وجدت نفسي متردداً - نظراً لدقائق اللغة الكورية - فيما إذا كان من المناسب حقاً استخدام كلمة *neulgeuni* ( عجوز ) لوصف الأجداد والجدات . إن قصدي هو ببساطة التأمل في الكتاب المقدس باستخدام عبارة " وقت الشيخوخة " الواردة فيه . وكل ما أرجوه هو ألا يسبب مصطلح *neulgeuni* أي ألم لقلوب كبار السن . ورغبتي هي استكشاف - انطلاقاً من نص اليوم - ثلاثة جوانب تشكّل جمال الشيخ، ومن هو الشيخ الجميل حقاً في عيني الله . ومن خلال ذلك، أطمح أيضاً أن أصبح أنا نفسي شيخ...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5)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5)     하나님은 시간과 고난뿐만 아니라 심지어 죄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툰 죄도 허비않으셨습니다 .   그들이 심히 다툰 이유는 마가란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   바나바는 계속해서 자기의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2 차 전도여행을 떠나자고 말한 반면에 바울은 계속해서 1 차 전도여행 초기에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가 버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 행 15:37-38).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1 차 전도 여행에서 그들을 돕는 조력자였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선교를 계속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팀을 이탈했습니다 .   아마도 그 이유는 마가는 구브로에서의 선교가 거의 열매를 맺지 못했던 시기 이후로 그들을 떠났던 것으 로 보입니다 .     구브로에서의 선교는 오직 한 사람의 개종만이 기록되어 있고 , 그 과정에서 마귀가 강하게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   결국 바울과 마가는 심한 말다툼 끝에 서로 갈라 져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따로 실라를 택하여 신자들의 축복을 받고 안디옥을 떠나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가면서 여러 교회를 격려하였습 니다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서로 화목하지 않고 서로 심히 다툰 바울과 바나바의 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두 개로 나눠진 선교팀 ( 바나바와 마가 한 팀과 바울과 실라 한 팀 ) 을 각각 다른 지역에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선 (1) 주님의 음성만 들어야 합니다 ( 요 10:3-5).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주님의 음성을 즉각적으로 알아챕니다 .   그리고 타인의 음성에 대하여서는 자기 목자의 음성이 아니라는 이질감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즉시 도망칩니다 .   (2)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 막 8:34).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모든 식구가 자기 자신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자로 계속해서 부인하는 삶을 사는 공동체입니다 .   먼저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아내 앞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자처럼 행합니다 .   억울함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에 내 자아의 요구를 부인하고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하셨듯 배우자를 먼저 섬기는 자리로 내려갑니다 .   가정이 서로를 향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 인정하는 가정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가정입니다 .   (3)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34 절 ).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의 명예와 평판을 다 버리고 , 매일 죽으러 가는 사형수처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   (4) 가정의 공동 목적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야 합니다 (35 절 ).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 나와 복음을 위하 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에 , 주님 때문에 당하는 손해와 희생을 실패가 아닌 '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흔적 ' 으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

자녀에 관하여

자녀에 관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 22:6).   여기서 “마땅히 행할 길”을 ' 그의 길을 따라 ' 입니다 .   성경 주석과 학자들은 이 ' 길 ' 을 3 가지로 설명합니다 ( 인터넷 ): (1) 하나님 경외 :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2) 복음과 말씀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 성경 말씀을 삶의 척도로 삼는 훈련입니다 .   (3) 바른 가치관 : 재물보다 명예와 은총을 귀하게 여기고 ,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 저는 “바른 가치관”외에도 “뚜렷한 목적관”와 “영원한 인생관”을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함 ).   또한 여기서 “가르치라”는 히브리어 단어 “하노크”는 3 가지 실 제적인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 (1) " 입맛을 들이다 " 입니다 .   아이에게 "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이렇게 달콤하고 좋은 것이구나 !" 라는 맛을 보게하여 스스로 찾게 만드는 교육을 뜻합니다 .   (2) " 봉헌하다 " 입니다 .   자녀교육의 시작부터 " 이 아이의 인생은 하나님의 것입 니다 " 라고 구별하여 드리는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   (3) " 길을 들이다 " 입니다 .   “ 가르치라 ” 는 아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처음으로 방향을 잡아주고 습관화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 아이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삶의 기초 체력 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   “ 가르치라 ” 는 " 아이가 선한 것에 맛을 들이도록 돕고 ,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가르쳐서 올바른 습관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 인터넷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4)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4)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하면서 아리스다고를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 골 4:10).   이 헬라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나의 동료 포로”를 의미하며 , 아마도 우리는 그는 실제로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 니다 .   “나와 함께 갇힌” 자라는 이 명칭은 빌레몬서 1 장 23 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 와 로마서 16 장 7 절 (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에도 나옵니다 . 여기서 아리스다고와 에바브라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공통점은 영적 전쟁인 복음 사역을 위해 바울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결박된 진정한 전우라는 것입니다 .   바울이 사 용한 헬라어 “ 쉬나이크말로토스 ” 는 신약성경에 단 세 번만 사용된 특별한 칭호로서 바울은 수많은 동역자 중에서도 복음을 위해 실질적인 신체적 자유를 포기하고 고난의 현장에 끝까지 함께한 이 네 사람에게만 이 특별한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 인터넷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0)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0)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3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첫번째로 ,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 사랑 ( 을 ) 받는 형제’입니다 ( 골 4:7, 9).   두번째 공통점은 , 그들은 ‘ 신실한 형제’ 또는 ‘ 신실한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7, 9 절 ). 여기서 “ 신실”이란 “’ 하나님의 비밀’곧 , 복음을 맡은 사역자의 유일한 자격”임이다 .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 장 1-2 절에서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 신실 ) 이니라 " 고 말씀하였습니다 . 주님의 일군의 신실은 적어도 3 가지라로 호크마는 말하고 있습니다 : (1) “ 복음에 신실함이니 ,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함이고 ( 고후 2:17), (2)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고 ( 고후 1:18-20), (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다가 고통과 난관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 엡 6:24).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5)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5)         오늘 본문 골로새서 4 장 7-18 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끝맺으면서 손수 마지막 인사말을 써서 문안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18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의 말씀을 한 8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첫째로 , 바울이 마지막 문안 인사에서 언급한 두기고와 오네시모란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 골 4:7-9)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 현대인의 성경 ) “두기고가 나에 관한 모든 소식을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 그는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이며 신실한 일꾼이요 나와 함께 주님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   내가 특별히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에게 우리 사정을 알게 하여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받는 신실한 형제 오네시모도 함께 보냅니다 .   그는 여러분과 함께 있던 사람입니다 . 그들이 이 곳 사정을 모두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편지를 끝맺으면서 마지막 문안 인사를 했을 때 제일 첫번째로 언급한...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4)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4)         골로새서 1 장 2 절에선 바울이 골로새서 편지의 수신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 . ”   여기서 “성도들”이란 하나님의 목적 (God ’ s purpose) 과 하나님의 일 (God ’ s service) 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KJV 성경 주석 ).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신실하게 믿는 형제들로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 (1) 믿음이 충만한 자들이요 (full of faith), (2) 신뢰하는 사람들 (trustful) 이요 , 또한 신뢰할 만한 사람들 (trustworthy) 로서 (3) 그리스도에게 충성된 자들 (loyal to Christ) 입니다 (KJV 성경 주석 ).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골로새서 1 장 2 절 하반절에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 하고 말씀했습니다 .   동일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도 있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