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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سادس: إخلاء «الرياء»

   الفصل السادس : إخلاء « الرياء »         رأينا فيما سبق كيف ينبغي لنا أن نخلي ذواتنا من الكبرياء الذي يدفع الإنسان إلى رفع نفسه فوق الله، ومن الطمع الذي لا يكتفي بالله بل يطلب باستمرار أن يمتلك المزيد . والآن ننتقل إلى خطية عميقة أخرى، هي « الرياء » . الرياء هو الرغبة في أن نظهر أمام الناس بصورة تختلف عن حقيقتنا . فهو أن نحمل في داخلنا أفكارًا ومشاعر معينة، بينما نتصرف في الخارج وكأننا لا نحملها، وأن نهتم بتقييم الناس لنا أكثر من اهتمامنا بنظر الله إلينا، فنزيّن إيماننا بحسب ما نريد أن يراه الآخرون . لذلك فإن إخلاء الذات من الرياء لا يبدأ بمحاولة الظهور أمام الناس كمسيحيين أفضل . بل يبدأ بأن ننظر إلى حقيقتنا أمام الله بكل صدق، من دون أن نخفي شيئًا . قد نستطيع أن نخدع الناس . وقد نستطيع، إلى حدّ ما، أن نتحكم في الصورة التي يراها الآخرون عنا . لكن لا ينفع أي قناع أمام الله، لأن الله لا يرى فقط ما يظهر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23)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23)       데마의 이탈이 주는 핵심 영적 교훈은 크게 4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인터넷 ): (1) 과거의 헌신이 미래의 신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누구나 변질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 고전 10:12).   (2) 중간 지대는 없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 ( 세상 ) 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명확히 선언하셨습니다 ( 마 6:24).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 약 4:4).   마음의 중심을 세상에 조금이라도 내어주는 타협은 결국 신앙의 완전한 파선으로 이어집니다 .   (3) 고난의 때에 진짜 신앙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십자가 ( 고난 ) 가 동반됩니다 .   고난과 손해 , 위기의 순간은 우리의 신앙이 ' 참된 보석 ' 인지 ' 가짜 모조품 ' 인지 판가름하는 영적 시험대입니다 .   (4) 사명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것은 ' 영적 영양실조 ' 의 결과입니다 .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간 반면 , 바울은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 딤후 4:7).   차이는 ' 무엇을 바라보았는가 ' 에 있습니다 .   바울은 ' 의의 면류관 '( 오는 세대의 영광 ) 을 보았고 , 데마는 ' 데살로니가의 풍요 '( 현재 세대의 안락함 ) 를 보았습니다 .   우리의 시선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하늘의 상급에서 멀어지고 당장 눈앞의 안락함 , 재정적 안정 , 세상의 인정에 고정되기 시작할 때 , 그것이 바로 사명의 자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는 전조 증상입니다 .

바울의 마지막 문안인사 (19)

바울의 마지막 문안인사 (19)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 성도들들 위하여 항상 애써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수고한 이유는 그 세 도시에 영적 배경 때문입니다 : (1) 골로새 :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천사를 숭배하는 신비주의 및 세상 철학이 뒤섞인 혼합주의 이단 사상이 교회에 들어와 복음을 왜곡하고 교회를 분열시킬 위험이 생겼습니다 ( 변질된 이단 사상 ).   (2) 히에라볼리 : 로마의 신들과 온천수의 치유성분이 있다고 믿음으로 신성시하는 이방 신전들이 가득했습니다 ( 우상숭배 ).   성도들은 육체의질병을 고치기 위해 우상숭배와 타협하라는 강한 유혹을 받았습니다 .   (3) 라오디게아 : 부족함이 없다보니 영적인 절박함이 사라졌습니다 .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수와 골로새의 차가운 생수가 라오디게아로 흘러 들어오는 과정에서 미지근한 물이 되었듯 , 그들의 신앙도 타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 영적 나태함 )( 인터넷 ).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마 16:18).   첫째로 ,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승리장로교회를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   진정 때를 따라 (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완벽한 순간에 ) 돕는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도와주셨기에 오늘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의 고백은 “ 엘리에셀 ”, 즉 “ 나의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 입니다 .   이 엘리에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여기까지 도우셨기에 우리 마음에는 “ 에벤에셀 ” ( “ 그 도움의 돌 ”) 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   둘째로 ,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인 승리장로교회를 계속해서 세워나아 가실 것입니다 .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며 유지하는 주체는 인간의 프로그램이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   주님께서는 이 약속의 말씀 그대로 지난 46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승리장로교회를 무너뜨리지 않으시고 친히 든든히 세워오셨습니다 .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까진 일꾼들을 세우셔서 각 나라 선교지로 보내서서 영혼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사역 및 선교케 하셨고 지금도 그리하고 계십니다 .   셋째로 , 주님이 세우시는 우리 승리장로교회는 예수님처럼 소외된 자들의 공동체 , 고난의 공동체로 가야 합니다 .   성도의 참된 제자도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 세상의 가장 자리에 버려진 이들을 향해 일부러 발걸음을 옮기는 불편한 순종에서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달 (7 월 ) 마지막 주일부터 매달 넷째 주일에 우리 교회에서 가까이 있는 양로원을 방문하여 어르신들과 함께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8)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8)     첫째로 ,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굳게서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해 달라고 언제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골 로새서 4 장 12 절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 ”   여기서 기도를 " 항상 " 한다 함은 , 그 기도하는 제목이 한결같이 떠나지 않고 그 중심에 있어 , 무언 중에도 기도가 계속될 뿐 아니라 , 일정한 규례를 따라 밀실 혹은 집회석에서 기도함을 의미합니다 .   그리고 " 애써 기도 " 한다함은 ,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까지 기도에 노력함인데 여기서 “애써”라는 단어는 ‘고뇌하다’라는 의미로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와 같습니다 : “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 ( 눅 22:44).   이 헬라어 단어는 운동선수들이 운동에 온전히 헌신하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각자 좋아하는 운동에 쏟았던 만큼 기도에 관심과 열정을 쏟는다면 , 우리는 부흥을 경험할 것입니다 !( 주석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5)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5)     하나님은 시간과 고난뿐만 아니라 심지어 죄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툰 죄도 허비않으셨습니다 .   그들이 심히 다툰 이유는 마가란 인물 때문이었습니다 .   바나바는 계속해서 자기의 생질인 마가를 데리고 2 차 전도여행을 떠나자고 말한 반면에 바울은 계속해서 1 차 전도여행 초기에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가 버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 행 15:37-38).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1 차 전도 여행에서 그들을 돕는 조력자였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선교를 계속하는 것을 포기하고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팀을 이탈했습니다 .   아마도 그 이유는 마가는 구브로에서의 선교가 거의 열매를 맺지 못했던 시기 이후로 그들을 떠났던 것으 로 보입니다 .     구브로에서의 선교는 오직 한 사람의 개종만이 기록되어 있고 , 그 과정에서 마귀가 강하게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   결국 바울과 마가는 심한 말다툼 끝에 서로 갈라 져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배를 타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따로 실라를 택하여 신자들의 축복을 받고 안디옥을 떠나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가면서 여러 교회를 격려하였습 니다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서로 화목하지 않고 서로 심히 다툰 바울과 바나바의 죄도 허비하지 않으시고 사용하시사 두 개로 나눠진 선교팀 ( 바나바와 마가 한 팀과 바울과 실라 한 팀 ) 을 각각 다른 지역에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선 (1) 주님의 음성만 들어야 합니다 ( 요 10:3-5).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주님의 음성을 즉각적으로 알아챕니다 .   그리고 타인의 음성에 대하여서는 자기 목자의 음성이 아니라는 이질감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생명의 위협을 받아 즉시 도망칩니다 .   (2)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 막 8:34).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모든 식구가 자기 자신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기 자신과 상관없는 자로 계속해서 부인하는 삶을 사는 공동체입니다 .   먼저 가정의 가장인 남편이 아내 앞에서 자기 자신의 권리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자처럼 행합니다 .   억울함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에 내 자아의 요구를 부인하고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하셨듯 배우자를 먼저 섬기는 자리로 내려갑니다 .   가정이 서로를 향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만 인정하는 가정이야말로 주님을 따르는 가정입니다 .   (3)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34 절 ).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의 명예와 평판을 다 버리고 , 매일 죽으러 가는 사형수처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   (4) 가정의 공동 목적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야 합니다 (35 절 ).   예수님을 따르는 가정은 " 나와 복음을 위하 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에 , 주님 때문에 당하는 손해와 희생을 실패가 아닌 '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흔적 ' 으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

자녀에 관하여

자녀에 관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 22:6).   여기서 “마땅히 행할 길”을 ' 그의 길을 따라 ' 입니다 .   성경 주석과 학자들은 이 ' 길 ' 을 3 가지로 설명합니다 ( 인터넷 ): (1) 하나님 경외 :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2) 복음과 말씀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 성경 말씀을 삶의 척도로 삼는 훈련입니다 .   (3) 바른 가치관 : 재물보다 명예와 은총을 귀하게 여기고 ,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 저는 “바른 가치관”외에도 “뚜렷한 목적관”와 “영원한 인생관”을 우리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함 ).   또한 여기서 “가르치라”는 히브리어 단어 “하노크”는 3 가지 실 제적인 행동을 담고 있습니다 : (1) " 입맛을 들이다 " 입니다 .   아이에게 "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이렇게 달콤하고 좋은 것이구나 !" 라는 맛을 보게하여 스스로 찾게 만드는 교육을 뜻합니다 .   (2) " 봉헌하다 " 입니다 .   자녀교육의 시작부터 " 이 아이의 인생은 하나님의 것입 니다 " 라고 구별하여 드리는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   (3) " 길을 들이다 " 입니다 .   “ 가르치라 ” 는 아이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처음으로 방향을 잡아주고 습관화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   억지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 아이가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삶의 기초 체력 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   “ 가르치라 ” 는 " 아이가 선한 것에 맛을 들이도록 돕고 ,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가르쳐서 올바른 습관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 인터넷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4)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4)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하면서 아리스다고를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 골 4:10).   이 헬라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나의 동료 포로”를 의미하며 , 아마도 우리는 그는 실제로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 니다 .   “나와 함께 갇힌” 자라는 이 명칭은 빌레몬서 1 장 23 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 와 로마서 16 장 7 절 (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에도 나옵니다 . 여기서 아리스다고와 에바브라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공통점은 영적 전쟁인 복음 사역을 위해 바울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결박된 진정한 전우라는 것입니다 .   바울이 사 용한 헬라어 “ 쉬나이크말로토스 ” 는 신약성경에 단 세 번만 사용된 특별한 칭호로서 바울은 수많은 동역자 중에서도 복음을 위해 실질적인 신체적 자유를 포기하고 고난의 현장에 끝까지 함께한 이 네 사람에게만 이 특별한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 인터넷 ).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0)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0)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3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첫번째로 ,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 사랑 ( 을 ) 받는 형제’입니다 ( 골 4:7, 9).   두번째 공통점은 , 그들은 ‘ 신실한 형제’ 또는 ‘ 신실한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7, 9 절 ). 여기서 “ 신실”이란 “’ 하나님의 비밀’곧 , 복음을 맡은 사역자의 유일한 자격”임이다 .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 장 1-2 절에서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 신실 ) 이니라 " 고 말씀하였습니다 . 주님의 일군의 신실은 적어도 3 가지라로 호크마는 말하고 있습니다 : (1) “ 복음에 신실함이니 ,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보수하여 전함이고 ( 고후 2:17), (2) 인격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고 ( 고후 1:18-20), (3)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다가 고통과 난관을 당하여도 변절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 엡 6:24).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5)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5)         오늘 본문 골로새서 4 장 7-18 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끝맺으면서 손수 마지막 인사말을 써서 문안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18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의 말씀을 한 8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첫째로 , 바울이 마지막 문안 인사에서 언급한 두기고와 오네시모란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 골 4:7-9)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 현대인의 성경 ) “두기고가 나에 관한 모든 소식을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 그는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이며 신실한 일꾼이요 나와 함께 주님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   내가 특별히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은 여러분에게 우리 사정을 알게 하여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   그리고 우리의 사랑을 받는 신실한 형제 오네시모도 함께 보냅니다 .   그는 여러분과 함께 있던 사람입니다 . 그들이 이 곳 사정을 모두 여러분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편지를 끝맺으면서 마지막 문안 인사를 했을 때 제일 첫번째로 언급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