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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고자 “안식일에 규정”을 어기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정죄할 구실을 찾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고자 “안식일에 규정”을 어기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정죄할 구실을 찾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이 만든 “ 안식일의 규정 ” 을 확고히 믿고 따르며 “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 ” 들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기에 ( 관심도 없기에 ?)   “ 죄 없는 사람 ” 을 “ 죄인 ” 으로 단정하고자 “ 안식일에 규정 ” 을 어기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정죄할 구실을 찾습니다 ( 참고 : 마태복음 12:2, 5, 7, 10, 현대인의 성경 ).

우리 마음 속으로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마음   속으로라도   “ 죄   없는   사람 ” 을   “ 죄인 ” 으로   단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인 “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 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 죄 없는 사람 ” 을 “ 죄인 ” 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참고 : 마태복음 12:7,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그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인 “ 너희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 ” 으므로 ( 참고 : 22:29, 현대인의 성경 ) 우리 마음 속으로라도 “ 죄 없는 사람 ” 을 “ 죄인 ” 으로 단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 바리새인들 ” 과 같은 의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그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 죄인 ” 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를 부르셔서 “ 나를 따르라 ” 고 말씀하신 후 그의 집에서 “ 많은 세리와 죄인들 ” 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입니다 .   이렇게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참고 : 마태복음 9:9-13).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2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 (1)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 참고 : 에베소서 2:4).   (2) 긍휼이 여기는 우리는 복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 : 마태복음 5:7).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크게 뉘우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크게   뉘우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크게 뉘우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   그러나 자기 멋대로 행하며 죄 짓는 일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헌신적으로 하나님께 제사 ( 예배 ) 를 드려도 그것은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 참고 : 이사야 66:2-3, 현대인의 성경 ).

주님께서 계속해서 우리 교회의 찬양 사역자들을 통해 찬양의 기적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계속해서 우리 교회의 찬양 사역자들을 통해 찬양의 기적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성가대원들은 예스라히야의 지휘 아래 힘차게 찬송하였고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였습니다 .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다 함께 어울려 즐거워하였으므로 그들이 기뻐서 외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 느헤미야 12:42-4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승리 성가대원들이 박덕영 전도사님의 지휘 아래 힘차게 찬송하고 우리 온 교인들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우리 온 교우 식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기쁨으로 말미암아 다 함께 사랑으로 어울려 즐거워하며 기뻐서 감사의 찬양의 큰 소리가 찬양 동영상을 통해서라도 수많은 이들에게 들려지길 기원합니다 .   주님께서 계속해서 우리 교회의 찬양 사역자들을 통해 찬양의 기적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찬양 동역자들의 삶과 가정 안에서도 또한 가정을 통해서도 찬양의 기적을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성도들은 어떻게 할 수밖에 없을까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성도들은 어떻게 할 수밖에 없을까요 ? 여로보함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의 아들들을 파면하여 하나님의 제사장 일을 못하도록 했습니다 .   그리고 그는 자기가 만든 수염소와 송아지 우상에게 제사하고 산당에서 섬김 제사장들을 제멋대로 임명했습니다 .   그 결과 “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심으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자유로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으며 이것은 유다의 국력 신장에 큰 도움이 되었 ” 습니다 ( 역대하 11:16-17, 현대인의 성경 ).   만일 노회가 목사님들을 제멋대로 세우고 교회에 직분자들을 제멋대로 임명하여 교회가 하나님께 자유로이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까지 된다면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성도님들은 어떻게 할 수밖에 없을까요 ?

혹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제사를 드려도 되는 것일까요?

혹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제사를 드려도 되는 것일까요?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 나는 여호와께 한 가지일만은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왕이 림몬의 신전에 들어갈 때 내 부축을 받아 들어가서 절을 하면 나도 함께 절을 하게 되는데 나는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라고 말한 것 ( 열왕기하 5:18, 현대인의 성경 ) 을 묵상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 혹시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에서 명절 때 제사를 드릴 때 식구의 영혼 구원 ( 전도 ) 의 목적을 위해 하는 수 없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식구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제사를 드려도 되는 것일까요 ?’

이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선을 행하는 일과 서로 나눠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이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 히브리서 13:2, 16, 현대인의 성경 ).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우리 안에 바리새인의 모습?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우리 안에 바리새인의 모습?  우리 안에 바리새인의 모습은  주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   그 이유는 아직도 주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 고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마태복음 12:1-8, 현대인의 성경 ).

흥미롭습니다.

흥미롭습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나은데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인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나중에는  아말렉 사람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 사무엘상 15:2, 9, 18, 22-23; 사무엘하 1:8-10).   흥미롭습니다 .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결과  아말렉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

이슬과 같은 사랑

이슬과 같은 사랑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 과 같습니다 ( 호 6:4).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구름과 이슬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잠깐이요 순간적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 인애 " 와 " 하나님을 아는 것 " 보다  내가 원하는 " 제사 " 와 " 번제 " 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6 절 ).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쉬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