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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책망을 받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책망을 받고 싶습니다.  새해 2024 년도를 맞이하여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책망을 받고 싶습니다 ( 참고 : 잠언 24:25, 현대인의 성경 ).   저는 더욱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 에베소서 6:17) 제 양심에 가책을 더욱더 받는 ( 참고 : 사무엘상 24:5; 사무엘하 24:10, 현대인의 성경 )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

양심의 가책을 받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 사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을 불러 일으키려고 다윗의 마음을 “ 충동 ” 하여 인구 조사를 하도록 했을 때 ( 역대상 21:1, 현대인의 성경 ) 다윗은 인구 조사 후에 “ 양심의 가책 ” 을 받아 하나님께 “ 내가 이 일로 큰 죄를 범했습니다 .   여호와여 , 이제 종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   내가 아주 미련한 짓을 하였습니다 ”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 사무엘하 24:10,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충동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혹여나 우리가 사탄의 충동질에 넘어가 아주 미련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   우리의 양심이 마비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  

양심의 가책?

양심의 가책?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헤매는 사울 왕 ( 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 ) 이 용변을 보려고 공교롭게도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곳에 들어왔을 때 (3 절 , 현대인의 성경 ) 자기의 부하들은 “ 이제 당신의 때가 왔습니다 .   여호와께서는 원수들을 당신에게 넘겨 줄 테니 좋을 때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 하고 속삭이므로 살금살금 사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잘랐습니다 (4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그 후에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 지금이 바로 그때 ” 요 다윗의 때 (“ 당신의 때 ”) 였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   그들이 말한 “ 그때 ” 또는 다윗의 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는 때요 원수인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때였을 것입니다 .   한 마디로 , 그때라 사울이 죽임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   다시 말하면 ,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둬야 합니다 .   또 한가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즘에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해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혹여나 마음 속으로라도 주님의 종에게 “ 라가 ”( 뜻 : 머리가 빈 , 헛된 , 무가치한 ) 라고 생각하든지 “ 미련한 놈 ” 이라고 생각한 것 ( 마 5:22) 을 깨닫고 양심이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의...

성경적인 죄의 기준을 낮추면 ...

성경적인 죄의 기준을 낮추면 ... 성경에서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죄가 아니라고 , 다들 그리한다고 등으로  합리화 시켜서 성경적인 죄의 기준을 낮추고 또 낮추면우리는 영적 문둥병자 같이 양심이  가책과 죄책을 느끼지 못해 계속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질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 자신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을 ( 못할 ?) 것입니다 .

"예언"적인 하나님의 말씀?

"예언"적인 하나님의 말씀?  " 예언 " 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양심은 가책을 받고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우리 마음의 숨은 일들을 드러나게 됩니다 ( 고전 14:24, 25, 현대인의 성경 ).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도 예수님의 "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 (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 ) 를 돌로 쳐라 " 는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면 , 교회 안에서 시험에 들어 목사님의 문제나 교회의 문제를 지적할 구실만을 찾던 교인들이 하나님의 "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는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 ( 요한복음 8:3-9, 현대인의 성경 ; 로마서 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