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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1)

이 성탄 계절에 사도 바울은 두기로를 특별히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냈다(골4:8)하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gave)(요3:16)는 말씀과 더불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주"셨다(gave up)(롬8:32)는 말씀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gave Himself up)(엡5:2)는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마27:46)라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잃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막8:35).   https://youtu.be/amBwOJJrKxs?si=B6DoBllFE_Il7U-p

양심의 가책?

양심의 가책?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헤매는 사울 왕(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이 용변을 보려고 공교롭게도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곳에 들어왔을 때(3, 현대인의 성경) 자기의 부하들은 이제 당신의 때가 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원수들을 당신에게 넘겨 줄 테니 좋을 때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하고 속삭이므로 살금살금 사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잘랐습니다(4,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 후에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지금이 바로 그때요 다윗의 때(“당신의 때”)였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들이 말한 그때또는 다윗의 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는 때요 원수인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때였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때라 사울이 죽임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둬야 합니다.  또 한가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즘에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해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혹여나 마음 속으로라도 주님의 종에게 라가”(: 머리가 빈, 헛된, 무가치한)라고 생각하든지 미련한 놈이라고 생각한 것(5:22)을 깨닫고 양심이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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