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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양심의 가책?

양심의 가책?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 헤매는 사울 왕(사무엘상 24:11, 현대인의 성경)이 용변을 보려고 공교롭게도 자기와 자기의 부하들이 숨어 있는 곳에 들어왔을 때(3, 현대인의 성경) 자기의 부하들은 이제 당신의 때가 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원수들을 당신에게 넘겨 줄 테니 좋을 때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하고 속삭이므로 살금살금 사울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잘랐습니다(4,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 후에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부하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지금이 바로 그때요 다윗의 때(“당신의 때”)였는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들이 말한 그때또는 다윗의 때는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는 때요 원수인 사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때였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때라 사울이 죽임을 당하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때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나님의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둬야 합니다.  또 한가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즘에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해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혹여나 마음 속으로라도 주님의 종에게 라가”(: 머리가 빈, 헛된, 무가치한)라고 생각하든지 미련한 놈이라고 생각한 것(5:22)을 깨닫고 양심이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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