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다윗 왕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가고 있었을 때 사울 왕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하인인 시바가 두 마리의 나귀에다 빵 200개, 건포도
100송이, 싱싱한 과일 100개,
그리고 포도주 한가죽 부대를 싣고 뒤쫓아왔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시바에게 “므비보셋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시바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할아버지의 나라를 자기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사무엘하 16:1-3,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 시바의 말은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주인인 므비보셋을 배신하고 거짓말로 다윗 왕
앞에서 므비보셋을 비방한 것입니다. 절뚝발이인 므비보셋도 다윗 왕과 함께 가려고 그의 종 시바에게 나귀 안장을 지우라고 했지만 시바가 그를 배신했기에 므비보셋은 다윗
왕과 함께 가지 못한 것입니다(19:26-27,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왕은 지혜롭지 못하여 시바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시바에게 므비보셋에게 속한 것을 모두 시바에게 주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16:4, 현대인의 성경). 그러다가
다윗 왕은 나중에 므비보셋의 말도 들어본 후에 “내가 사울의 밭을 너(므비보셋)와 시바에게 똑같이 분배해 주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19:29,
현대인의 성경). 지혜가 있는 자는 양쪽 말을 다 듣고 쌍방간에 공정히 판단합니다(신명기 1:13,
15, 16). 그런데 저도 지혜가 부족하여 한
쪽 말만 듣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수 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가고 있었을 때 사울이 집안 사람 중
하나인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과 그의 신하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살인자여! 악한이여! 여기서 사라져라!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다.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사무엘하 16:5-7,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시므이이가 다윗왕을 저주한대로 다윗은 “살인자여 악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다윗은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죽였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아의 장례를 마친 후 사람을 보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 자기의 아내로 삼았을 때 성경은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1:27). (2) 그러나 시므이가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 가족을 죽인 죄를 너에게 갚으셨다”라고 저주한 내용이나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았으나 이제 여호와께서 그것을 너의 아들 압살롬에게 주었구나!”라는
내용은 동의를 할 수가 없는 것은 다윗은 사울과의 그 가족을 죽이지 않았고 또한 사울의 왕위를 빼앗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과 그 가족은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죽었고(사무엘상31:1-6) 또한 사울의 왕위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았기에(사무엘하 7:15) 그가 왕위를 빼앗긴 것입니다. (2) 그리고 시므이는 다윗왕에게 “너는 사람을 죽인 죄로 이제 벌을 받아 망하게 되었다!”고 저주했는데 실제로 다윗왕은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간음죄를 덮으려고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의도적으로 죽인 죄로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었지만 그가 망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시므이의 저주는 합당한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므이의 합당치 않은 저주 내용을 묵상할
때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베드로전서 3:18, 현대인의 성경)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왕을 저주했을 때 아비새는 다윗 왕에게 “어째서 왕은 이 죽은 개 같은 녀석이 왕을 저주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제가 가서 당장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사무엘하 16:9,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아비새는 다윗왕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가리켜 “이 죽은 개 같은 녀석”이라고 말했는데 다윗이 사울 왕에게 “어째서 왕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자를 쫓고 있습니까?”(사무엘상24:14,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사울 왕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다윗을 쫓아 죽이려고 했지만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나를 살리시려고 이 낮고 낮은 천한 세상까지 오셔서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2) 다윗이 아비새와 함께 사울왕의 진지까지 갔었을 때 아비새가 다윗에게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서 저 창으로 그를 찔러 땅에 꽂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단번에 해치우겠습니다”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사무엘상 26:8, 현대인의 성경). 이 아비새란 인물은 다윗에게 충성심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원수를 “단번”에 해치우길 원했고 또한 다윗을 저주한 자도 “당장”
가서 목을 베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3) 그러나 아비새는 자기가 보기에 “다윗의 원수”였던 사울 왕을 “단번”에 해치우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그건 안 된다. 그를
죽이지 말아라. 여호와께서 택하신 왕을
해하는 자가 어찌 죄가 없겠느냐? 분명히
말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이니 그는 죽을 때가 되어 죽거나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왕으로 택한 자를 내가 죽이지
못하도록 하셨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9-11절, 현대인의 성경). (4)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원수’인 우리(로마서5:10)의 죄사함과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몸을 “단번”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히브리서10:10; 참고: 로마서 6:10;
히브리서 7:27; 9:12, 26, 28; 베드로전서 3:18).
아비새가 가서 당장 다윗왕을 저주한 죽은 개 같은 시므이의 목을 베고
싶어했을 때 다윗왕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저주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나를 저주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네가 어째서 이렇게 하느냐? 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야 말할 게 있겠느냐? 여호와께서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내버려 두어라.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길을 갔으나
시므이는 비탈길로 계속 따라오면서 여전히 저주하고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렸”습니다”(사무엘하 16:10-1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시므이가 비탈길로 계속 다윗왕을 따라오면서 여전히 그를
저주하고 돌을 던지켜 티끌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무 말없이”
길을 갔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이사야 53장 7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리고 저는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마태복음 3:17,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다(이사야53:10)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쩌면 여호와께서 내가 당하는 어려움을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나를
축복해 주실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27:46)라고 크게 소리지르셨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 보시고 “오늘의 이 저주로 인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에베소서1:3,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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