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말씀 묵상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에 있은 지 3년이 되자 죽은 아들 암논에 대한 슬픔을 거의 잊고 이제는 그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사무엘하 13:38-39, 현대인의 성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리워하고 있는 아들 압살롬을 찾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혹시 그는 아직도 자기 아들 암논을 죽인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결국 요압 장군이 다윗 왕이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여자 한 사람을 데려오게 하여(사무엘하 14:2, 현대인의 성경) 그녀에게 할 말을 일러준 후 다윗 왕에게 보냈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그 지혜로운 여자가 다윗 왕에게 “대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보니 죄 있는 사람처럼 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다윗 왕은 그 여인의 집안 문제는 자기가 맡아서
아무도 그녀의 남은 한 아들[다른 아들과 서로 싸우다가 쳐죽인 아들(6절, 현대인의 성경)]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8절, 현대인의 성경) “내가 살아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11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망명 중에 있는 아들 압살롬을 왕궁으로 데려오지
않고 있었기에 그는 그 지혜로운 여자가 보기에 “죄 있는 사람처럼” 된 것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 왕은 “죄 있는 사람처럼”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는 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란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은 죄입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 암논을 죽인 다른 아들 압살롬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윗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여 그술에 있는 지 3년이 되어서야 죽은 아들 암논에 대한 슬픔은 거의
잊고 그 때서야 그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3:38-39,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다윗은 결국에 가서는 압살롬을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했지만(21절) 그로 하여금 자기 집에 가서 머물러 있게 하고
자기 앞에 2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압살롬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24,
28절, 현대인의 성경). 만일 다윗이 진심으로 아들 압살롬을 용서했다면 그술에 3년 동안이나 있으므로 못보았던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데려오게 해 놓고서 또 다시 2년 동안이나
자기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용서한 자식을 5년 동안이나 안 보고 지낼 수 있습니까? 제가 볼 때 다윗은 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용서하지 않은 아버지였습니다.
왜 압살롬은 자신의 “아름다운 딸” 이름을 “다말”이라고 지었을까요? (사무엘하 14:27, 현대인의 성경) 혹시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여동생” “다말”을 생각하고 같은 이름을 자신의
딸에게 지어준 것이 아닐까요?(13:1, 현대인의 성경) 그 정도로 압살롬은 자기 여동생 다말을 사랑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여동생 다말을 암논이 강간하고(14절, 현대인의 성경) 욕보였으니(32절, 현대인의 성경) 압살롬이 얼마나 암논을 미워했으면
그와 일제 말을 하지 않았다가(22절, 현대인의 성경)
“그로부터 2년 후에”(23절,
현대인의 성경) 암논을 죽였을까요? (29절,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압살롬이 암논을 2년 동안 미워하다가 그를 죽였는데, 그의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해놓고
2년 동안이나(14:28, 현대인의 성경) 그로하여금 자기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압살롬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24절,
현대인의 성경). 그 말은 혹시 압살롬이 암논을 2년 동안 미워했듯이(그를 죽이기 전까지) 다윗은 압살롬을
2년 동안 미워했던 것이 아닐까요?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2년 동안 있으면서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 다윗왕을 뵈려고 요압 장군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중재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요압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사무엘하14:29,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는 수없이 압살롬은
자기 하인들을 시켜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해서 결국 요압을 만났습니다(30-31절, 현대인의 성경). 그때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부른 것은 당신을 왕에게 보내 왕이 나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때문에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는지 한번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이오. 내가 차라리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이제 나를 왕과 좀 만나게 해 주시오.
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왕이 나를 죽여도 좋소”(32절, 현대인의 성경). 이 압살롬의 행동과 말을 생각할 때 저는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그리워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자기를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놓고서도 2년 동안이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니까 자기가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요압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그 사람 사이에 거리를 멀리 두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지만,
용서하는 마음은 서로의 거리를 좁힙니다.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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