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 현대인의 성경 ) “ 백성들은 메시야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혹시 요한이 그가 아닌가 하고 모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누가복음 3:15) 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 ” 고 있었던 분은 “ 메시야 ” 요 ( 눅 3:15, 현대인의 성경 ), 그들이 얼마나 메시야를 바라고 기다렸으면 세례 요한이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까지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a) 이러한 생각 속에서 든 생각은 제가 풀러 신학교를 다녔을 때 김세윤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유대인들의 메시아적 기대 (Messianic expectation) 3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 (1) 정치적 해방 (Political freedom), (2) 경제적 풍부 (Economic prosperity), (3) 사회적 공의 (Social justice)( 김세윤 ). (i) 세례 요한이 요단강 부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을 당시 (3 절 , 현대인의 성경 )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었던 로마 ...
"복음은 평생 더 깊이 깨닫는 과정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전도 방법 두 번째, 복음 깨달음입니다. 복음 깨달음입니다. 요나 2장 끝에서 요나가 바다 밑바닥에서 물고기의 뱃속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 제일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9)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는 요나 2장 9절 말씀은 성경의 중심 구절이라고요. 이 구절에 성경 전체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구원은 은혜라는 말입니다.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항상 요나 2장 9절을 인용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반복했습니다. 요나는 왜 바다 밑바닥에 있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선지자인 요나는 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한다고 했을까요? 마치 이것이 그에게 새로운 생각인 것처럼 말이죠. 그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지 않았나요? 대답은 그는 알았지만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알았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에드먼드 클리우니가 전달하고자 했던 건 복음을 정말로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복음을 이해하기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복음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복음 신학화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경이로움을 점점 더 깊이 깨닫는 평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종교는 “내가 순종하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해 내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내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우리에게 통제권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거죠. 몇 년 전 제가 복음을 전하려고 한 여자분이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복음이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순전히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