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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사역 일기 (Sharing Ministry Journal)

나눔 사역 일기 ( Sharing Ministry Journal ) 2025. 10. 23. 목요일. 오늘 YMCA 에서 운동을 하면서 두 지체하고 각각 따로 다른 시간에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나눔 속에서 저는 "나눔 사역 일기"(Sharing Ministry Journal)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밤 11시가 좀 넘어서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를 뒤돌아보면서 나눔 사역에 관하여 배우게 된 점들이나 느낀 점들이나 생각하게된 점들을 좀 두리뭉실하게 기록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나눔 사역 일기가 여러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유익되길 바랍니다. 1. Sharing is Caring !   오늘 대화 속에서 저는 제 막내 딸 예은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저에게 한 말인 "Sharing is Caring"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느 한 지체와 주님 안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을 때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care하기에 그 caring heart로 각자 마음의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 나눔은 관심 속에서 몇 마디 인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번 경험케하셨는데 오늘도 저는 운동을 하면서 어느 지체가 생각나서 카카오톡으로 몇 마디 글을 적어 보냈는데  그 말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른 지체도 저는 몇 마디 글을 적어서 카카오톡으로 보낸 것뿐인데 귀한 마음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 그 때 생각나게 하시는 사람이 있고 관심이 생기면 서슴치 않고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그 말이 인사이든 다른 말이든)을 계속해서 해야겠다는 다짐입니다. 3. 나눔의 타이밍이 기가막힙니다. 하하. 오늘도 그 두 지제들 하고 각각 따로 대화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그들이 저에게 한 말을 생각해보면 각자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을 때 제가 카톡으로 말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가 말을 걸었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은 평생 더 깊이 깨닫는 과정"

 

"복음은 평생 더 깊이 깨닫는 과정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전도 방법

두 번째, 복음 깨달음입니다. 복음 깨달음입니다. 요나 2장 끝에서 요나가 바다 밑바닥에서 물고기의 뱃속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 제일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9)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는 요나 2장 9절 말씀은 성경의 중심 구절이라고요. 이 구절에 성경 전체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구원은 은혜라는 말입니다. 

에드먼드 클라우니는 항상 요나 2장 9절을 인용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속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반복했습니다. 요나는 왜 바다 밑바닥에 있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선지자인 요나는 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한다고 했을까요? 마치 이것이 그에게 새로운 생각인 것처럼 말이죠. 그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지 않았나요? 대답은 그는 알았지만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알았지만 알지 못했습니다. 에드먼드 클리우니가 전달하고자 했던 건 복음을 정말로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복음을 이해하기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복음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복음 신학화만으로는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경이로움을 점점 더 깊이 깨닫는 평생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종교는 “내가 순종하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해 내가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내가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우리에게 통제권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거죠. 

몇 년 전 제가 복음을 전하려고 한 여자분이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복음이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순전히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섭다는 겁니다. 제가 왜 무섭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내가 내 공로로 구원받는다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제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내가 내 공로로 구원받았다면 나는 납세자와 같으니 내가 세금을 내면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 제한될 것이라는 겁니다. 나는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내가 매우 열심히 일했으니 하나님이 내게 아무거나 요구할 수 없을 거라는 거죠. 내가 순전히 은혜로 구원받는다면 하나님이 내게 요구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이 없지 않겠느냐는 거였습니다. 마지막에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영화 '바이블' 아시죠? 그 영화의 한 장면이 감동적입니다. 조지 스콧이 아브라함 역을 맡았죠. 다른 부분은 거의 마음에 안 들지 않지만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어린 이삭은 뉘어져 제물로 바쳐질 준비를 하고 있는 장면이죠. 이삭은 묶인 채로 아버지가 뭘 하는지 깨닫습니다. 이 장면은 성경의 내용을 좀 더 할리우드식으로 극적인 요소를 가미했지만, 아직도 감동적입니다. 이삭은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고는 묻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버지께 요구할 수 없는 것은 없나요?" 아브라함(조지 스콧)은 “없다”고 합니다. 이 여자분은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제 공로로 구원받는다면, 저는 여전히 어느 정도 통제권을 가질 수 있지만 은혜로 구원받는다면, 하나님이 제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면, 당신이 제가 저의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았고 말하면 제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제가 하나님께 저를 받아 달라고 간구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것이 제 공로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요. 저는 저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가 행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에 근거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요.”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례를 주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셨네요.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 Desiring God 2006 National Conference에 강연자로 초대된 팀 켈러의 강의 'The Supremacy of Christ and the Church in a Postmodern World'(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전도 방법)의 발췌 영상입니다.” 


https://www.gospelandcity.org/news/articleView.html?idxno=3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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