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주는 깊은 상처와 고통? 교회 안에서 , 특히 지도자들로 인해 , ' 나는 실패자이다 ' 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더 나아가서 깊은 죄책감 속에서 시달리다가 마침내 못 견디고 그 교회를 떠났을 때에도 모든 교제를 다 끊어 버림 당할 정도로 차갑게 대하므로 더 큰 실패자라는 죄책감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한 영혼에게 평생 큰 상처와 깊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 주어진 귀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 사람을 더 보고 싶습니다 . 아버지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신음 소리를 더 듣고 싶습니다 .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한 영혼 영혼을 만나고 싶습니다 .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
선교 세미나를 통하여 ... 오늘 오후 선교 세미나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께서는 저 같은 부족한 후배를 사랑해 주시는 강사 선배 목사님을 통하여 위로해 주셨습니다 . 성자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내려놓은 성육신 선교사역과 순교자적인 증인의 삶을 살라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한 영혼 , 영혼을 섬기라고 교훈 해 주셨습니다 .
아니 어떻게 ...? 아니 , 어떻게 "38 년 동안 앓고 있는 환자 " 가 예수님께서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 " 고 말씀하시므로 " 곧 병이 나아 자기를 거둬 들고 걸어갔 " 는데 " 그 날 " 이 " 안식일 " 이라고 " 유대인들은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 안식일인데 당신이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오 '"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 아니 , 어떻게 그 유대인들은 38 년 동안 앓고 있었던 그 환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 나음을 받은 것보다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을그리도 중요시 여길 수 있었을까요 ? 지금 한 영혼의 구원과 건짐을 받는 것이 중요한가요 , 아니면 주일 대면 예배가 중요한가요 ?
해산의 수고?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 그 / 녀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그 / 녀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 갈 4:19). 해산의 수고에는 고통이 따르듯이 한 영혼을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있습니다 ( 마 16:24; 막 8:34; 눅 9:23).
나의 삶의 원동력 나의 삶의 원동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므로 어떠한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이제는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속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므로 그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인하여 나는 내게 주신 사명과 사역을 희생적으로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 . 사랑의 빛진 자의 자세로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 그 사명과 사역은 바로 화목케 하는 것이다 . 나는 이웃과 이웃을 화목하게 하는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 또한 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한 영혼 , 영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그 영혼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해야한다 . 이것이 나의 삶의 존재 목적이다 . [2016 승리 36 주년 말씀집회 둘째날 주신 말씀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