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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교회가 주는 깊은 상처와 고통?

교회가 주는 깊은 상처와 고통? 교회 안에서 , 특히 지도자들로 인해 , ' 나는 실패자이다 ' 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더 나아가서 깊은 죄책감 속에서 시달리다가  마침내 못 견디고 그 교회를 떠났을 때에도  모든 교제를 다 끊어 버림 당할 정도로 차갑게 대하므로 더 큰 실패자라는 죄책감을 부여하는 것은  충분히 한 영혼에게 평생 큰 상처와  깊은 고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 주어진 귀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 사람을 더 보고 싶습니다 . 아버지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 신음 소리를 더 듣고 싶습니다 .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이 사랑하시는 한 영혼 영혼을 만나고 싶습니다 . 저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치 않습니다 .

선교 세미나를 통하여 ...

선교 세미나를 통하여 ... 오늘 오후 선교 세미나를 통하여 성령 하나님께서는 저 같은 부족한 후배를 사랑해 주시는 강사 선배 목사님을 통하여 위로해 주셨습니다 .   성자 예수님께서는 저에게 내려놓은 성육신 선교사역과 순교자적인 증인의 삶을 살라고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한 영혼 , 영혼을 섬기라고  교훈 해 주셨습니다 .

그 한 영혼을 위하여 ...

그 한 영혼을 위하여 ...  한 영혼을 " 정결한 처녀 " 로  "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 " 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어  그 한 영혼을 섬기며 ,  그 한 영혼을 높이며 ,  그 한 영혼에게 폐를 끼지지 말아야 합니다 ( 고후 11:2, 7-9).

아니 어떻게 ...?

아니 어떻게 ...?  아니 , 어떻게  "38 년 동안 앓고 있는 환자 " 가  예수님께서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 " 고 말씀하시므로 " 곧 병이 나아 자기를 거둬 들고 걸어갔 " 는데  " 그 날 " 이 " 안식일 " 이라고  " 유대인들은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 안식일인데 당신이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오 '"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 아니 , 어떻게  그 유대인들은 38 년 동안 앓고 있었던 그 환자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병 나음을 받은 것보다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을그리도 중요시 여길 수 있었을까요 ?    지금 한 영혼의 구원과 건짐을 받는 것이 중요한가요 ,  아니면 주일 대면 예배가 중요한가요 ?

해산의 수고?

해산의 수고?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어  그 / 녀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그 / 녀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 갈 4:19).   해산의 수고에는 고통이 따르듯이  한 영혼을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고통이 있습니다 ( 마 16:24; 막 8:34; 눅 9:23).

나의 삶의 원동력

나의 삶의 원동력   나의 삶의 원동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므로  어떠한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이제는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속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므로 그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인하여  나는 내게 주신 사명과 사역을 희생적으로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 .   사랑의 빛진 자의 자세로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   그 사명과 사역은 바로 화목케 하는 것이다 .   나는 이웃과 이웃을 화목하게 하는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   또한 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한 영혼 , 영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그 영혼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해야한다 .   이것이 나의 삶의 존재 목적이다 .   [2016 승리 36 주년 말씀집회 둘째날 주신 말씀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