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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남한과 북한을 한 나라와 한 민족으로 이루시사 한 대통령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남한과 북한을 한 나라와 한 민족으로 이루시사 한 대통령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두 나라와 두 민족으로 계속 나누어지지 않게 하시고 한 나라로 이루시사 한 왕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신 것처럼 남한과 북한을 한 나라와 한 민족으로 이루시사 한 대통령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 참고 : 에스겔 37:16-22,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두려워 떨고 있는 유다 왕 아하스에게 시리   왕과 이스라엘 왕이 아하스 왕을 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고 그들이 유다를 침략하고 유다 백성들을 두렵게 하여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인 다음 다브엘의 아들을 왕위에 앉힐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 그러나 결코 이 일이 그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 이사야 7:5-7,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 시편 146:9, 현대인의 성경 ).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라"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라" 유다 왕 아하스와 모든 유다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베가 왕과 시리아의 르신 왕이 동맹을 맺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그들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리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하스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너는 조심하며 침묵을 지키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라 ”( 이사야 7:1-4,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바벨론에 도착한 몇 사람들에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아직도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   그러자 그들은 포로로 잡혀 오지 않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고 성문은 불탄 이후로 다시 세우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   그 말은 들은 느헤미야는 주저앉아 울다가 며칠 동안 슬퍼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 느헤미야 1:2-4,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국이 생각났습니다 .   만일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나 아니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으로 피신해 온 사람들이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통해 지금 남한으로 넘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에 살면서 큰 어려움과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파 슬피 울면서 하나님께 간구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고소, 편지, 연합 전선

고소, 편지, 연합 전선  유다와 베냐민의 원수들은 크셀크세스 ( 아하수에로 ) 즉위하자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을 고소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   또 아르타크셀크세스 ( 아닥사스다 ) 시대에 비슬람 , 미드레닷 , 다브엘 ,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이 아람어로 편지를 써서 황제에게 보냈으며 그것은 읽을 때에 번역되었습니다 .   그리고 사령관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예루살렘에 대한 고소장을 써서 아르타크셀크세스 황제에게 보냈습니다 ( 에스라 4:6-8,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연합 전선을 펴서 함께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과 또한 법적으로 우리를 고소할 수도 있다는 것과 또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대해 거짓되고 나쁜 얘기들을 써서 편지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실제로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당회에서 ( 목사님과 장로님들 ) 일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회에서도 목사님들끼리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의 키루스 황제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조서를 내려 온 땅에 공포하도록 하셨습니다 .   그 조서의 내용의 핵심은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 는 것과 “ 너희 중 그 ( 하나님 ) 의 백성들은 누구든지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여라 ” 입니다 .   이러한 조서를 내리면서 키르수 황제는 “ 그는 예루살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 ” 고 말했습니다 ( 에스라 1:1-3,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성취하심에 있어서 심지어 한 나라의 불신자 왕도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리고 주님께서 약 20 년 전에 한국에서 살던 저에게 교회갱신 목회자협의회 ( 교갱협 ) 수련회 때 미국에서 오신 강사 목사님을 통해 마태복음 16 장 18 절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I will build My church) 란 약속의 말씀을 주시사 저로 하여금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지금까지 승리장로교회를 섬기게 하시면서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해 나아가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하고 계십니다 .    비록 저는 불성실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승리장로교회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 참고 : 디모데후서 2:13, 현대인의 성경 ).

깨끗이 하는 정결 작업

깨끗이 하는 정결 작업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요시야 왕은 14 년 동안이나 죄로 더럽혀진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이 하는 정결 작업을 했습니다 .   그는 산당과 아세라 여신상과 그 밖의 모든 우상들을 제거했습니다 ( 역대하 34:3-8,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죽을 때까지 죄로 더럽혀진 제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깨끗이 하는 정결 작업을 하다가 주님의 품 안에 안기고 싶습니다 .

우리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영적 전쟁에 임하여 승리하기 위해선 ...

우리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영적 전쟁에 임하여 승리하기 위해선 ... 남쪽 유다 왕 아비야는 북쪽 이스라엘 왕 여로보함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   비록 여로보암의 군대 (80 만 병력 ) 가 자기의 군대 (40 만 병력 ) 보다 두 배나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비야 왕은 “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지도자가 되셨 ” 기에 여로보암 왕과 그의 80 만 병력이 싸워도 이기지 못할 줄을 확신했습니다 .   비록 여로보암 왕이 일부 병력을 몰래 유다 병력 후방으로 보내 거기서 매복하게 하므로 유다 사람들을 앞뒤로 적에게 포위당하였었지만 그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함께한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고 유다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자 하나님께서 아비야 왕과 유다 사람들을 도와 여로보암 왕과 이스라엘 군을 무찌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   비록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민족이 하듯이 자기 멋대로 제사장들을 세워 수상을 섬겼지만 아비야 왕은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오직 아론의 자손들만이 그들의 제사장이 되고 레위 사람들만 그들을 도와 하나님께 아침저녁으로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렸습니다 .   이와 같이 아비야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했지만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 역대하 13:1-15,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영적 전쟁에 임하여 승리하기 위해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음과 동시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며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기도자들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요?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요? 남쪽 유다 왕 르호보암은 정예병을 소집하고 전쟁을 일으켜 북쪽 이스라엘을 장악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서 " 너희는 너희 형제들과 싸우러 가지 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거라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내 뜻이었다 " 고 말씀하셔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함 왕을 치러 가지 않았습니다 ( 역대하 11:1-4,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의 뜻은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이 나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   그 이유는 르호보암 왕의 아버지인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 열왕기상 11:11-13).   저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무조건 연합하여 하나됨을 지키려고 하기보다 우리의 범죄의 결과로 둘로 나뉘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나님께 기도로 여쭤보는 습관

하나님께 기도로 여쭤보는 습관 이스라엘 왕 아합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 시리아 ) 와 전쟁하기에 앞서 아합 왕에게 400 명의 거짓 선지자들 외에 “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 라고 물었던 유다 왕 여호사밧은 ( 열왕기상 22:6-7) 다시금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에돔 왕과 함께 모압과 전쟁하기에 앞서 “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 하고 물었습니다 ( 열왕기하 3:11).   이 사실을 묵상할 때 적어도 유다 왕 여호사밧은 적군과 전쟁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우리도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기도로 여쭤보는 습관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였던 라헬이 낳은 요셉 ( 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 ) 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 (44:28, 현대인의 성경 ) 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라헬이 낳은 또 하나의 아들은 베냐민에게마저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백발이 된 자기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2:38,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44:29, 현대인의 성경 ).   그정도로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야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44:30).   그래서 야곱의 아들 유다는 이집트 총리 ( 요셉 ) 에게 " 우리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만일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죽게 될 것입니다 .   이렇게 되면 백발이 된 아버지를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됩니다   ...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30-31 절 , 34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가 몇 년전 딸 아이에게 ' 아빠는 첫째 아기 주영이가 내 품에서 죽었는데 너까지 죽으면 아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 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는 말씀 (30 절 ) 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

목숨을 거시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시는 주님

목숨을 거시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시는 주님 야곱의 아들들 중 유다는 심각한 기근으로 인해 양식을 사러 두 번째 이집트로 내려가기 위해서 막내 동생 베냐민과 함께 가야했기에 아버지 야곱에게 "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 주십시오 .   그러면 우리가 즉시 떠나겠습니다 .   그렇게 해야만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자녀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   내가 목숨을 걸고 그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 라고 말했는데 ( 창세기 43:1-5, 8-9, 현대인의 성경 ), 실제로 그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베냐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베냐민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베냐민 대신 자기가 애굽 총리의 종이 되어 이집트에 머물로 있겠다고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   그리고는 요셉에게 " 그러니 제발 이 아이 ( 베냐민 ) 는 형제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 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44:32-33,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시므로 말미암아 ( 요한일서 3:16, 현대인의 성경 )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 에베소서 2:1) 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거시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는 주님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는 주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가 네 번째 아들인 유다를 낳았을 때에는 " 이번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양하리라 " 고 말합니다 ( 창세기 29:35, 현대인의 성경 ).   신랑 되신 주님께서는 결국 신부 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십니다 .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신 하나님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신 하나님 니느웨   왕과 백성들이  자신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의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 욘 3: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왕이 행한 모든 악 때문에  유다에 대한 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 ( 왕하 23:26, 현대인의 성경 ).   비록 유다 왕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하나님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 ( 왕하 23:25, 26).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걸머지시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을 때  모든 진노를 돌이키지 않으시고  아들 예수님에게 모든 진노를 다 쏟아부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