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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 현대인의 성경 ) “ 백성들은 메시야를 무척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혹시 요한이 그가 아닌가 하고 모두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누가복음 3:15) 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 ” 고 있었던 분은 “ 메시야 ” 요 ( 눅 3:15, 현대인의 성경 ), 그들이 얼마나 메시야를 바라고 기다렸으면 세례 요한이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까지 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a)     이러한 생각 속에서 든 생각은 제가 풀러 신학교를 다녔을 때 김세윤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유대인들의 메시아적 기대 (Messianic expectation) 3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 (1) 정치적 해방 (Political freedom), (2) 경제적 풍부 (Economic prosperity), (3) 사회적 공의 (Social justice)( 김세윤 ).   (i)                       세례 요한이 요단강 부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을 당시 (3 절 , 현대인의 성경 )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었던 로마 ...

"주의하라" (10)

“ 주의하라 ” (10)       넷째로 , 사도 바울은 금욕주의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 골 2:20-23).   여기서 금욕주의란 육체를 벌함으로써 영혼을 정화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   골로새서 2 장 21-23 절은 엄격한 자기 태만과 자기 부인과 자기 학대를 통해 거룩함을 성취하려는 시도인 금욕주의의 무익함을 지적합니다 .   이러한 금욕주의는 일시적인 사용하면 없어질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죄를 억제하거나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무력합니다 .   바울은 이런 규정들은 제멋대로 만든 종교적 숭배나 거짓된 겸손이나 자기 몸을 괴롭히는 데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체의 정욕을 막는데는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바울은 이런 것은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고 이미 그리스도 함께 죽은 성도들은 이러한 율법적 규정에 복 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이유는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하여 세상의 모든 어리 석 음에서 새 생명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   참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참되이 받은 바 되어 그 생활에 변화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   그리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삽니다 .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사는 참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근 거한 것이 아닌 그저 사람들이 제멋대로 만든 계명이나 가르침을 따라 살면서 자기 몸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  

“주의하라” (4) (골로새서 2장 20-23절)

  “ 주의하라 ” (4)         [ 골로새서 2 장 20-23 절 ]       마지막 넷째로 , 사도 바울은 금욕주의 (Asceticism) 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   래리 오스본 목사가 쓴 “당신의 열심이 위험한 이유”는 , 크리스천들의 열정적인 신앙에도 함정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의 율법주의식 열정에 난색을 보입니다 .   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 의도하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리새인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 종종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쉽게 판단하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을 “우연한 바리새인”이라고 정의합니다 .   “그리고 오스본 목사는 ‘우연한 바리새인’들은 헌신과 신학적 성숙 , 열의 , 재정적 헌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 이들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다고 꼬집는다 .   어떻게 보면 ‘우연한 바리새인’ (accidental pharisees) 들은 종교적 열광주의와 금욕주의에 빠져 있다고 강조한다” ( 인터넷 ).     여러분 , 금욕주의란 무엇입니까 ?   ‘옥스포드 기독교 사전’ (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는 ‘금욕주의’ (asceticism) 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음 : “금욕주의는 여러 종교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 자기 절제를 위한 수단으로 , 악에 대항하며 선을 고양하기 [ 높이 쳐들어 올리기 (Naver 사전 )]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수행 체계를 뜻한다” ( 인터넷 ).   위키백과는 “금욕주의는 정신에 속하는 것을 선...

“주의하라” (7)

“ 주의하라 ” (7)       둘째로 ,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입니다 (13 절 ).   우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했을 때에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   우리는 세상과 육신과 마귀라는 죄의 영역에 묶여 있어서 영적인 자극에 반응할 수도 없었습니다 .   우리는 영적인 삶과는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   셋째로 ,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의 대한 혐의를 도말하셨다는 것입니다 (14-15 절 ).   여기서 우리의 대한 혐의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 율법의 채무 증서” ) 로서 “증서”란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는 자필 채무 증명서를 말합니다 .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우리의 빚 증서를 완전히 지우시고 우리의 죄사함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   신자들의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그들 모두를 대신하여 형벌을 지불하셨고 , 이로써 완전한 형벌을 요구하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키셨습니다 ( 맥아더 ).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우리의 대한 혐의를 도말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가므로 율법주의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주의하라" (2) (골로새서 2장 8-23절)

“ 주의하라 ” (2)           [ 골로새서 2 장 8-23 절 ]       둘째로 ,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 (Legalism) 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 ( 골 2:11-17).   전에 제가 읽었던 책들 중에 “복음 , 자유를 선포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   그 책에서 타비티 얀야빌리 라는 사람은 " 복음의 자유 , 복음의 열매를 추구하라 " 는 제목 아래 이런 글을 쓴 것을 제가 읽고 도전을 받았었습니다 : “거짓 가르침은 언제나 분열시킨다 .   거짓 가르침이 있는 곳마다 율법주의와 비난의 영과 독선적인 판단 주위가 들어온다 .   뒤이어 다툼이 일어나고 교만이 자리를 뜬다 .   율법주의는 교회를 교만한 비난과 도발과 질투로 서로 물어뜯는 영적 사육제로 바꾼다 "( 얀야빌리 ).   저는 이 말에 공감합니다 .   왜 교회 안에 교만한 비난과 독선적인 판단 주위 ( 주된 자리 ) 가 있으므로 결국 교회 안에 다툼과 분열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바로 율법주의 때문이란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     율법주의 (Legalism) 란 무엇입니까 ?   주로 우리가 율법주의 라고 하면 성경에 나오는 외식했던 바리새인들을 생각하며 율법주의란 그들처럼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 행위중심 구원관 ).   제일 근본적인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바로 구약의 율법을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   즉 , 율법주의는 자기 의 (self-righteousness) 에 기초한 신앙임 .   그래서 율법주의에서는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잘 지키는 자기의 헌신과 노력이 강조됩니다 ( 인터넷 ).   그러나 이 자기 의에 기초한 율법주의...

"주의하라" (8) (골 2:16-17)

“ 주의하라 ” (8)         ( 골  2:16-17)     A.   여러분 , 혹시 기독교의 양심 자유에 관하여 아디아포라 (adiaphora) 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 1.     아디아포라란 단어는 원래 철학적 용어로서 “대수롭지 않은” , “그리 중요치 않은” , “가치중립적인” , “해도 그만 , 안 해도 그만인 것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음 .   a.     그런데 이 철학적 용어가 신학 용어로 사용되었을 때 그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 그 문제를 개인이나 공동체의 문화적 양심과 상황적 특성에 근거하여 해결을 시도한다는 뜻 이 담겼음 .   (1)   다시 말하면 ,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지 않아서 , 사람의 형편에 따라 임의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남겨진 영역을 “아디아포라”라고 말함 ( 인터넷 ).   (a)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정의 를 내렸음 : 아디아포라란 “성경에 금하거나 명령하지 않은 어떤 의식적인 행사를 , 신자의 개인적 양심에 맡김”을 말합니다 ( 박윤선 ).   (i)             그 한 예로 술과 담배 등을 얘기할 수 있을 것임 .   또 어떤 신학교 교수님은 주일에 일하는 것 도 아디아포라라고 말하는 분도 있는 것 같음 .   B.   이 아디아포라 문제를 잘 묘사해 주고 있는 성경은 바로 로마서 14 장 1-12 절 말씀이라고 생각함 . 1.     그 말씀을 보면 아디아포라 문제는 구약 성서에 나와있는 엄격한 음식법을 따르는 문제 와 종교적으로 지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