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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 (2)

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 (2)     고용인은 애매히 까다로운 고용주에게 고난을 받아서 슬픔을 당해도 참고 순종해야 합니다 .   그 첫 번째 이유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 ( 벧전 2: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   또 한가지 이유는 고용인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이 말은 우리가 직장에서 신적 소명 의식을 갖아야 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   (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   그 발자취는 결코 편안하고 고난이 없는 발자취가 아닙니다 .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의 본을 본받아서 까다로운 고용주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고 이겨 나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는 이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는 이유 제가 기록해 놓은 설교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동영상 (YouTube) 과 글로나마 인터넷 (email, Facebook, 네이버 블로그 , 카카오톡 스토리 , 카카오톡 , 교회 웹사이트 , 구글 블로그 ) 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는 이유는 물론 그것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소명이기 때문이지만 또한 혹시나 주님께서 그 말씀들을 그들에게 영의 양식으로 먹여주시사 그들의 믿음도 성장케 하여주시고 또한 우리 모두가 회개해야 할 죄들을 깨닫고 그 죄악 된 길들에서 돌아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참고 : 예레미야 36:6-7, 현대인의 성경 ).

'제가 누구이기에 ....'

'제가 누구이기에 ....'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사 이집트 왕 바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도록 하시고자 했을 때 모세의 첫 번째 반응은 " 내가 누구이기에 ...." 였습니다 ( 출애굽기 3:10-11, 현대인의 성경 ).   모세의 입장에선 자기가 누구이기에 바로 왕에게 가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낼 수 있는지 충분히 하나님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   주님께서 1987 년 5 월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고 김영익 강사 목사님을 통해 요한복음 6 장 1-15 절에 나오는 ' 오병이어 ' 의 말씀을 통해 저를 부르셨을 때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강력하게 역사하시사 ' 비록 저는 남자만 5,000 명에 비하여 물고기 2 마리와 떡 5 덩어리 밖에 안되는 인생이지만 그 소년처럼 제가 주님께 이 모습 이대로 받쳐서 제 인생이 주님의 손 안에 있으면 주님께서는 충분히 기적을 이루실 줄 믿게 하시사 헌신케 하셨습니다 .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었다면 저 또한 모세처럼 ' 주님 , 제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남자만 5,000 명에 비하며 심히 보잘 것 없는 인생인데 제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는 ...?' 등등 의문과 질문을 충분히 했었을 것입니다 .  

어떻게 복음 전도 선교지로 떠나는 주님의 종을 배웅해야 할까요?

어떻게 복음 전도 선교지로 떠나는 주님의 종을 배웅해야 할까요? 주님의 부르심 ( 소명 ) 에 순종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 전도 선교지로 떠나는 주님의 종을 배웅할 때에 비록 그 주님의 종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 때문에 매우 슬프고 눈물이 나올지라도 그 주님의 종과 함께 무릎을꿇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서로 작별하고 믿음으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 사도행전 20:36-38; 21:4-6, 현대인의 성경 ).

인생의 깊은 암흑 기간?

인생의 깊은 암흑 기간? 주님께서 사울을 구원하시고 부르시사 사명을 주시는 과정에 사울이 " 사흘 동안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 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 사도행전 9:9, 현대인의 성경 ).  주님께서 사울에게 " 시내로 들어가거라 .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 라고 말씀하셨고 (6 절 , 현대인의 성경 ) 또한 다카스커스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 너는 어서 ' 곧은 거리 ' 에 있는 유다의 집에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라 .  지금 그가 기도하고 있다 .  그는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손을 얹어 다시 보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 라고 말씀하셨는데 (10-12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 두 사이에 사울은 사흘 (3 일 ) 동안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것입니다 .  아마 사울이 금식 기도했는지도 모르겠지요 .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 사흘 " 동안 그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  마태복음 12 장 40 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 "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  어쩌면 우리에게는 " 사흘 "( 문자적으로 말고 ) 동안 " 큰 물고기 " 와 같은 상황이든 " 땅 속 " 과 같은 상황이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든 인생의 깊은 암흑 기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 깊은 암흑 기간 동안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보지 말고 ,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인간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자아가 철저히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져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야 .. 그때서야 구원의 주님만 전적으로 또한 전심으로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지 않나 생각...

소명과 사명을 주시는 주님

소명과 사명을 주시는 주님     [ 누가복음 5 장 4-10 절 , 요한복음 21 장 1-6 절 ]               어제 금요일 (2021. 12. 17.) 사랑하는 선배 목사님이신 조명래 파라과이 선교사님의 “ 최고의 백신 ”( 약 1:5) 이란 제목 아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 https://youtu.be/2ghp-rVjNcY ).   그 은혜를 간략하게 두 가지로 요약을 한다면 ,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아가므로 나 자신을 알아갈 때에 하나님의 위치와 나의 위치를 알고 분수에 넘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돼야겠다는 교훈을 받은 것과 (2)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위기를 통해서라도 더욱더 사명감에 불타올라야 한다는 교훈을 받은 것입니다 .   특히 저는 조 선교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서 주님께서는 1987 년 5 월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요한복음 6 장 15 절 말씀을 통해 저를 부르시사 저에게 주신 사명을 이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더욱더 뚜렷하게 ( 분명하게 ) 하시고 계심과 그 사명에 초점을 맞추어 이끌림을 더욱더 받게 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음을 깨달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요한복음 6 장 1-15 절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그 이유는 그 주님의 말씀이 저를 부르신 말씀이요 ( 부르심의 말씀 ) 또한 주님께서 저에게 사명을 주신 말씀 ( 사명의 말씀 ) 이기 때문입니다 .             어느 한 인터넷 글을 보니까 “ 소명 ” 과 “ 사명 ” 에 대해서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 “ 소명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주님 (누가복음 5장 4-10절과 요한복음 21장 비교)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주님 (누가복음 5장 4-10절과 요한복음 21장 비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사 "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 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 깊은 데로 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아라 " 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   비록 그는 밤새도록 애써 봤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께서 그리 말씀하셨기에 " 한 번 더 그물을 쳐보겠습니다 " 라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린 후 그물을 쳤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   그 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 주님 , 저는 죄입니다 .   제발 저를 떠나 주십시오 " 라고 말했습니다 ( 누가복음 5:4-10, 현대인의 성경 ).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 요한복음 20 장 )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그 날 밤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   날이 밝아 올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 얘들아 , 고기를 좀 잡았느냐 ?"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 하고 말씀하시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   그때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 주님이시다 !' 하고 말하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르고 물에 뛰어들었다 .   이렇게 부활하신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라고 질문하셨고 베드로는 ' 그렇습니다 .   주님 ,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내가 죽은 후에도 주님께서는 나를 부르신 후에도 ( 내가 죽은 후에도 ) 나에게 하신 약속인 요한복음 6 장 1-15 절 말씀대로 생명의 떡이신 주님의 말씀 나눔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아가시되 나의 모든 말씀 묵상 나눔을 통하여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요한복음 19:36; 히브리서 11:4). 나는 언젠가 이 땅에서 멈추고 끝나겠지만 주님의 말씀 나눔 역사는 멈출 수가 없고 끝날 수가 없습니다 . [ 은퇴후 사역도 준비해야겠지만 죽은 후에 사역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말씀 묵상을 통해 하겠되었습니다 .]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드리고 싶은 나의 기도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드리고 싶은 나의 기도 저는 이 세상 (This Age) 을 떠나 다가오는 세상 (The Coming Age) 에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고백 기도를 마음 속으로라도 드리고 주님께 가길 기원합니다 : ' 주님 ,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하라고 주신 일인 요한복음 6 장 1-15 절 오병이어의 사명 말씀대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말씀 묵상을 이웃들에게 나누는 일을 다 완성하여 주님을 이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 요한복음 17:4).

크리스찬 직업인의 소명

크리스찬 직업인의 소명     “성공을 너무도 강조하는 세상에서는 직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소명에 대해서는 귀머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 …   소명과 연결되지 않은 직업은 서로를 분리시킨다 .   반면에 소명에 대한 순종을 표현하는 직업은 , 공동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재능을 내어놓는 구체적인 방식이 된다 .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것은 우리의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소명이어야 한다 ."             [ 헨리 나우웬 , “긍휼” ]    ------------------               성공을 너무도 강조하는 이 세상 직업 세계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듣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 보입니다 .   오직 승진 또는 더 많은 돈을 외치는 세상 직업 세계에서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는 있지만 크리스찬으로서 왜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지 소명의식을 잊어버리고 하루 하루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러한 소명의식이 결핍된 가운데서 일을 하는 직업인들은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일뿐 결코 크리스챤 직업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크리스챤 직업인이라면 분명히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분명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일 뿐입니다 .   그리고 그저 교회를 다니는 직업인은 세상적 흐름 속에서 승진과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가운데 직장 동료들을 경쟁자로 보기에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쟁자들을 밀어내는 배타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결국은 서로를 연합하기보다 서로를 분리시키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러기에 이러한 직업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