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الإنجيل ليس في الكلام، بل في قوة الحياة ». « إن كنت أشهد لنفسي فشهادتي ليست حقًا . الذي يشهد لي هو آخر، وأنا أعلم أن شهادته التي يشهدها لي هي حق . أنتم أرسلتم إلى يوحنا فشهد للحق . وأنا لا أقبل شهادة من إنسان، ولكني أقول هذا لتخلصوا أنتم . كان هو السراج الموقد المنير، وأنتم أردتم أن تبتهجوا بنوره ساعة . وأما أنا فلي شهادة أعظم من يوحنا، لأن الأعمال التي أعطاني الآب لأكملها، هذه الأعمال بعينها التي أنا أعملها هي تشهد لي أن الآب قد أرسلني . والآب نفسه الذي أرسلني يشهد لي . لم تسمعوا صوته قط، ولا أبصرتم هيئته، وليست لكم كلمته ثابتة فيكم، لأن الذي أرسله هو لستم أنتم تؤمنون به . فتشوا الكتب لأنكم تظنون أن لكم فيها حياة أبدية، وهي التي تشهد لي . ولا تريدون أن تأتوا إليّ لتكون لكم حياة ». ( يوحنا 5:31–40) (1) المقدمة : الشهادة التي تقود الناس إلى الإيمان بيسوع تحت عنوان « الشهادة التي تقود الناس إلى ال...
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 (2) 고용인은 애매히 까다로운 고용주에게 고난을 받아서 슬픔을 당해도 참고 순종해야 합니다 . 그 첫 번째 이유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 ( 벧전 2:19-20)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 ” 또 한가지 이유는 고용인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이 말은 우리가 직장에서 신적 소명 의식을 갖아야 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 (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 그 발자취는 결코 편안하고 고난이 없는 발자취가 아닙니다 .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의 본을 본받아서 까다로운 고용주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고 이겨 나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