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라벨이 엘리야인 게시물 표시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탈진은 기회입니다. (1) (왕상 19:1-14)

엘리야 선지자의 첫 번째 탈진 현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https://youtu.be/HTlyS5EbAjc?si=GPCtKl_csIMXeJAE

왜 그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의 방에 있는 침상에 눕혀 놓았을까요?

왜 그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의 방에 있는 침상에 눕혀 놓았을까요 ?   엘리사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그 수넴 여자는 그 이듬해 정말 아들을 낳았습니다 .   그런데 그 아들이 갑자기 “ 아이구 머리야 !   아이구 머리야 !” 하고 소리를 질러 댔다가 결국에 가서는 자기 어머니의 무릎 위에 누워 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의 방으로 안고 가서 침상 위에 눕힌 다음 방문을 닫고 나와서 “ 급히 하나님의 사람 ” 인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러 갈멜산까지 간 것입니다 ( 열왕기하 4:17-25, 현대인의 성경 ).   왜 그 수넴 여자는 그리 행했을까요 ?   왜 그녀는 죽은 자기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의 방에 있는 침상에 눕혀 놓았을까요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네 명의 친구들이 자기들의 친구인 중풍병자를 침상에 매고 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기도 하시는 예수님 앞에 데려가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지붕을 뜯고 구명을 뚫어 병자를 침상 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린 성경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 누가복음 5:17-26, 현대인의 성경 ).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친구인 중풍병자에게 “ 일어나 걸어가라 ” 라고 말씀하시기보다 “ 네 죄는 용서받았다 ”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0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묵상할 때 사르밧 과부가 자기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 선지자에게 “ 하나님의 사람이여 ,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 하셨습니까 ?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내 아들을 죽이려고 이 곳까지 오셨습니까 ?” 라고 말한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 열왕기상 17:18, 현대인의 성경 ).  

말씀의 역사가 갑절이나 나타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말씀의 역사가 갑절이나 나타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 내가 네 곁을 떠나기 전에 너에게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 ” 고 물었을 때 엘리사는 “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 라고 대답했습니다 .   엘리야는 “ 네가 정말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구나 ” 라고 말했습니다 ( 열왕기하 2:9-10, 현대인의 성경 ).   저 또한 믿음의 선배님들이 보시기에 “ 정말 어려운 것 ” 을 하나님께 구하고 싶습니다 .   제가 생명의 떡 ( 요한복음 6:48) 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 시편 1:2) 사람들에게 나눌 때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5,000 명을 먹이시고도 남았던 것처럼 ( 요한복음 6:1-15) 그러한 말씀의 역사가 갑절이나 나타나게 하여 주시길 주님께 기원합니다 .

주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엘리야가 자기 겉옷을 벗어 말아 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져서 엘리야와 엘리사가 “ 마른 땅을 밟고 ” 건너갔다는 말씀 ( 열왕기하 2:8, 현대인의 성경; 참고: 14절 ) 을 묵상할 때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갈라지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 마른 땅을 밟고 ” 바다를 지나갔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출애굽기 14:16, 21-22, 현대인의 성경 ).   또한 여호수아 시대 때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갑자기 위에서 흐르던 물이 멈춰 멀리 사르단 근처에 있는 아담성에까지 둑을 이루었고 사해로 흘러 가던 물은 완전히 끊어져 강바닥이 말라 버렸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 마른 땅을 밟고 ” 건너갔다는 말씀 ( 여호수아 3:14-17, 현대인의 성경 ) 이 생각났습니다 .   영어 복음 성가 “Way Maker”(“ 길을 만드시는 주 ”) 후렴 가사가 생각납니다 : “ 주님은 길을 만드시는 분이고 ,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며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고 , 어둠 속에 빛이십니다 .   주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 인터넷 ). https://youtu.be/VxRZDqbDoMk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   여호와께서 나에게 (1) 벨엘로 가라 , (2) 여리고로 가라 , (3) 요단강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   제발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 고 세 번 말했을 때 엘리사는 ‘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당신이 살아 계시는 한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 하고 세 번 대답했습니다 ( 열왕기하 2:1-6,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룻이란 여인이 생각났습니다 .   그녀는 그녀의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모압 땅을 떠나 유다 땅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 룻기 1:7, 현대인의 성경 ) 그녀에게 “ 얘야 , 너의 동서는 자기 백성과 신들에게 돌아갔는데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 고 말했을 때 (15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 저에게 억지로 어머니 곁을 떠나라고 강요하지 마시고 어머니와 함께 가게 해 주세요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니께서 사시는 곳에 저도 살겠습니다 .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묻힐 것입니다 .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 만일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나면 여호와께서 저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시기 원합니다 ”(16-17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 마태복음 26:56, 현대인의 성경 ).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

“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 ” 하나님께서 부르시사 기름 부어 주님의 종으로 세우셔서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는데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주님의 성전을 더럽히면서 주님의 종들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엘리야 선지자처럼 “ 살아남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는데 그들은 나마저 죽이려고 ” 한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 ” 를 들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 참고 : 열왕기상 19:10-12, 현대인의 성경 ).

우리를 다시 소성케 하시고(restore) 또한 부흥케(revive)하시는 주님

우리를 다시 소성케 하시고(restore) 또한 부흥케(revive)하시는 주님 극심한 두려움과 큰 낙심 속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일 때 우리는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간구한 후 심신(마음과 육신)이 지쳐 잠이 들 수도 있습니다 .   바로 그 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이 있는 손으로 우리를 어루만지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사 우리를 다시 소성케 하시고 (restore) 또한 부흥케 (revive) 하십니다 ( 참고 : 열왕기상 19:4-7, 현대인의 성경 ; 시편 71:20; 80:18; 이사야 57:15; 예레미야 30:17).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공포)은 ...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공포)은 ...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 공포 ) 은 우리로 하여금 혼자 있게 만들며 , 하나님께 죽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 ‘ 나는 믿음이 훌륭한 믿음의 조상 ( 선배님 ) 들보다 나은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라고 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참고 : 열왕기상 19:3-4, 현대인의 성경 ).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역행하는 행동?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역행하는 행동?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 놓고 기도해서 불을 내려 응답하는 신이 바로 그가 하나님이요 라고 말한 엘리야 선지자는 물 네 주전자를 가져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세 번이나 물을 갖다 붓게 했습니다 .   그 결과 물이 단에 넘쳐 흐르고 도랑에도 가득했습니다 ( 열왕기상 18:24, 33-35, 현대인의 성경 ).   이것은 나무나 송아지로 하여금 불타게 하는 데 역행하는 행동입니다 .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 ( 뜻 ) 에 순종하는 행동은 사람들 보기에 이성으로 이해가 안될 수도 있는 역행하는 행동일 수가 있습니다 .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오바냐는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엘리야 선지자의 말 대로 아합 왕에게 가서 엘리야가 왔다고 말을 했습니다 ( 열왕기상 18:8-9, 14-16, 현대인의 성경 ).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시면서 약속의 말씀을 주셨기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갔는데 , 그래서 가서 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는데 , 그 가나안 땅에 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 창세기 12:1-10, 현대인의 성경 ).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이렇게 인도하신 것일까요 ?   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분명히 수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엘리야에게 분명히 물이 마를 그릿 시냇가로 가라고 명하셨을까요 ?( 열왕기상 17:1-3, 현대인의 성경 ).   결국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 얼마 후에는 그 시냇물도 말라 버렸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하는 사르밧 과부에게 인도하신 것일까요 ?(7-12 절 , 현대인의 성경 ).   우리의 지성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닌가요 ?   잠언 3 장 5-6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지식을 의지하지 말아라 .   너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인정하라 .   그러면 그가 너에게 바른 길을 보이실 것이다 ."

'나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

'나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 선지자 엘리야는  주님께 " 나만 남았 " 다고 말했지만  주님은 그의 종 엘리야에게  "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 고 말씀하셨습니다 ( 로마서 11:3-4). 사명따라 섬기면서  환난과 핍박 중에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  ' 나 혼자만 남았다 ' 는 생각이 들 때에  " 내가 나를 위하여 ...  남겨 두었다 " 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

왜 하필이면 까마귀들과 가난한 과부였을까요?

왜 하필이면 까마귀들과 가난한 과부였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먹이게 하셨을뿐만 아니라  사르밧에서는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조금 기름밖에 없어서  자기 자신과 자기 아들을 위하여  마지막 한끼 음식을 만들어 먹고  굶어 죽게될 과부에게 명령하여  엘리야 선지자에게 음식을 주게 하셨습니다 ( 열왕기상 17:3, 9, 12). 왜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과 가난한 과부에게 명령하사 엘리야 선지자에게   음식을 주신 것일까요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수도 있습니다 . 아니 ,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 위기를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 열왕기상 17 장 13-24 절 ).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후에  더 큰 기적이 없다할지라도  적어도 아무 재앙이 없어야하지 않나요 .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하시길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18 절 ).   그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위기가 없이는 우리의 죄를 생각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19-21 절 ).   그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위기가 없이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22-24 절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건지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건지심) 하나님의 구원 ( 건지심 ) 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수도 있습니다 .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던 엘리야를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그 시내가 말랐을 때  건져주심에 있어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사는  좀 부자 과부를 만나게 하시지  한끼 음식 만들어서 자기 아들과 먹고  죽을려고 하는 가난한 과부에게 인도해 주셨는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열왕기상 17 장 8-12 절 ).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 건지심 ) 은  우리의 기대 밖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상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방법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수도 있습니다 .   비도 이슬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서  " 그 시냇물을 마시라 " 는 명령하실 수 있습니까 .   분명히 "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 " 를 건인데 말입니다 ( 열왕기상 17 장 1-7 절 ).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머리로 이해한 후 순종하기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