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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신성을 모독한 죄?

신성을 모독한 죄?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신 것은 어떤 서기관들의 관점으로 볼 때에 신성을 모독한 죄입니다 .   그 이유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시는 권능이 있으신 데 예수란 사람도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그 중풍병자를 통해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 마태복음 9:2-3, 6).   그러나 실제로는 그 서기관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죄를 범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이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참고 : 요한복음 10:30).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교인들이 불신앙으로 우리에게 ...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교인들이 불신앙으로 우리에게 ...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교인들이 불신앙으로   우리에게 ‘ 하나님은 당신을 위기가운데 구출해주지 않을 것이다 ’ 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말을 할 때에 우리는 그들에게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말고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 참고 : 이사야 36:21,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침묵해야 하는 이유는 불신앙의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신앙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이 그 불신자 배우자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갖게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 자신이 불신앙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 참고 : 사시기 3:6-7, 현대인의 성경 ).

쉬운 줄로 생각되는 가능하게 보이는 일만 행합니다.

쉬운 줄로 생각되는 가능하게 보이는 일만 행합니다. 믿음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전능하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지만 불신앙은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여 쉬운 줄로 생각되는 가능하게 보이는 일만 행합니다 ( 참고 : 신명기 1:41, 현대인의 성경 ; 창세기 17:1, 18:14).

믿음으로 살지 않고 보고 듣는 데로 살면 ...

믿음으로 살지 않고 보고 듣는 데로 살면 ...  믿음으로 살지 않고 보고 듣는 데로 살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기 보다 불신앙의 말을 듣기를 속히 하여 두려움 속에서 원망하며 불평하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 참고 : 신명기 1:26-28; 고린도후서 5:7; 야고보서 1:19,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 사냥을 하고 돌아온 에서는 얼마나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으면 자기가 사냥해 온 고기를 음식으로 만들어서 ( 직접 못만들면 어머니 리브가에게 부탁해서라도 ) 먹지 않고 죽을 쑤고 있는 동생 야곱에게 " 배가 고파 죽겠으니 그 붉은 죽을 좀 다오 " 라고 말했을까요 ?   그 때 왜 야곱은 배가 고파 죽겠다는 형 에서에게 아무 조건없이 그가 원하는 죽을 좀 주지 않고 " 먼저 형의 장자권을 나에게 파시오 " 라고 말했을까요 ?   혹시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탐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   그리고 혹시 야곱은 형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   아니 어떻게 팥죽과 빵을 받고 자신의 장자권을 동생에게 팔을 수 있을까요 ?   아무리 배가 고파 죽게되었다고 " 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 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 창세기 25:29-34, 현대인의 성경 )   에서는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자신의 맏아들의 특권을 팔아 버렸습니다 .   성경은   에서를 가리켜 " 불신앙의 사람 "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히브리서 12:16,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

이 약속을 들은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 약속을 들은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극히 큰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자식이 없어 자기 재산을 상속할 자가 없는데 주님의 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   즉 , 아브람은 주님의 큰 상보다 자식을 그리도 원했던 것 같습니다 .   그것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   이 약속을 들은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 창세기 15:1-6; 로마서 4:20-22, 현대인의 성경 ).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나 형편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나 형편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  아내인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고 나이가 75 세나 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 내가 네 후손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할 것이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다면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 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 창세기 11:30, 12:4, 13:16, 현대인의 성경 ).     이 도저히 불가능한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아브라함은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 로마서 4:18-21, 현대인의 성경 ).   우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기를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나 형편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약속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히브리서 3:12, 19,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사람들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못된 고집을 부리면서 항상 죄의 유혹에 미혹되어 죄를 짓는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노하실 것입니다 ( 히브리서 3:8, 10, 12, 13, 15-17, 현대인의 성경 ).

철저하게 참는 인내를 보여야 합니다.

철저하게 참는 인내를 보여야 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므로 모르고 죄를 짓는 전도 대상자를 불쌍히 여기므로 철저하게 참는 인내를 보여야 합니다 .   그 이유는 후에 그가 주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 디모데전서 1:13, 16, 현대인의 성경 ).

왜 우리는 우리가 당한 시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우리가 당한 시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 분명히 성경은 "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우리가 당한 시험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   우리에게 감당할 능력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혹시 우리는 감당할 능력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   혹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고 보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   ( 고린도전서 10:13, 현대인의 성경 ; 고린도후서 5:7, 새번역 )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도 ...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도 ... 우리가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처럼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도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 참고 : 로마서 4:17-21, 현대인의 성경 ).

신앙 vs. 불신앙

신앙 vs. 불신앙 신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면 (Faith = obedience)  불신앙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Unbelief = disobedience).   (L. Anne Jervis, "At the Heart of the Gospel" 읽으면서 )

왜 방향을 돌려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왜 방향을 돌려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행하시되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우리를 안으사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   그런데 우리는 이일에 우리 하나님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방향을 돌려 다른 길을 따라 광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 신명기 1:30-40).   왜 하나님은 뱡향을 돌리사 우리로 하여금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일까요 ?   혹시 우리의 불신앙을 단련시키려고 ?   혹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정화시키려고 ?   혹시 우리로 하여금 겸손케 하시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케 하시려고 그리 인도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