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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سادس: إخلاء «الرياء»

   الفصل السادس : إخلاء « الرياء »         رأينا فيما سبق كيف ينبغي لنا أن نخلي ذواتنا من الكبرياء الذي يدفع الإنسان إلى رفع نفسه فوق الله، ومن الطمع الذي لا يكتفي بالله بل يطلب باستمرار أن يمتلك المزيد . والآن ننتقل إلى خطية عميقة أخرى، هي « الرياء » . الرياء هو الرغبة في أن نظهر أمام الناس بصورة تختلف عن حقيقتنا . فهو أن نحمل في داخلنا أفكارًا ومشاعر معينة، بينما نتصرف في الخارج وكأننا لا نحملها، وأن نهتم بتقييم الناس لنا أكثر من اهتمامنا بنظر الله إلينا، فنزيّن إيماننا بحسب ما نريد أن يراه الآخرون . لذلك فإن إخلاء الذات من الرياء لا يبدأ بمحاولة الظهور أمام الناس كمسيحيين أفضل . بل يبدأ بأن ننظر إلى حقيقتنا أمام الله بكل صدق، من دون أن نخفي شيئًا . قد نستطيع أن نخدع الناس . وقد نستطيع، إلى حدّ ما، أن نتحكم في الصورة التي يراها الآخرون عنا . لكن لا ينفع أي قناع أمام الله، لأن الله لا يرى فقط ما يظهر ...

우리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의 나이 30 살이 되던 해에 바빌로나아에서 포로들과 함께 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을 보여 주는 영광의 광채를 보고 엎드려 “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을 듣게 되었 ” 습니다 ( 에스겔 1:1, 28,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1) 요셉도 그의 나이 30 세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 창세기 41:46), 다윗도 그의 나이 30 세에 왕이 되어 약 40 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고 ( 사무엘하 5:4) 또한 예수님은 나이 30 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 누가복음 3:23).   (2) 마치 포로 생활을 하듯이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 되었을 때에서야 귀로 듣기만 했던 주님께 대하여 이제는 우리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됩니다 ( 참고 : 욥기 42:5).   (3)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우리를 만날 것이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그 곳이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 참고 : 출애굽기 29:43, 현대인의 성경 ).   그리고 우리는 “ 나에게 말씀하시는 ”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 참고 : 에스겔 1:28, 현대인의 성경 ).  

바로 그 때가 온 식구가 하나님을 돌아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바로 그 때가 온 식구가 하나님을 돌아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참 하나님이 없고 식구를 가르칠 영적 지도자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살 때에 그 가정은 무질서하여 아무도 안전하게 다닐 수가 없을 것이며 어려움을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바로 그 때가 온 식구가 하나님을 돌아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   그리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 : 역대하 15:3-5, 현대인의 성경 ).

결코 "우연히" 아닙니다!

결코 "우연히" 아닙니다!   “ 그 수넴 여자 ” 는 “ 기근이 끝난 후에 ” “ 이스라엘로 돌아와 자기 집과 땅을 되찾기 위해 왕에게 호소하러 갔 ” 습니다 .   그런데 “ 바로 그때 ” (1) “ 왕은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 ” 고 , (2) “ 왕은 엘리사가 행한 기적에 대해서 알고 싶어 ” 했고 , (3) 그래서 게하시는 엘리사가 “ 그 수넴 여자 ” 의 “ 죽은 아이를 살렸던 일을 왕에게 말해 주었 ” 습니다 .   (4) “ 바로 이때 ” “ 그 아이의 어머니 ” 인 “ 그 수넴 여자 ” 가 “ 들어와서 자기 집과 땅을 되찾게 해 달라고 왕에게 호소 ” 한 것입니다 .   (5) “ 그러자 게하시는 ‘ 왕이시여 , 이 사람이 바로 그 여자입니다 .   그리고 이 아이는 엘리사가 그때 살려 낸 바로 그 여자의 아들입니다 .’ 하고 외쳤 ” 습니다 .   (6) “ 그래서 왕은 그 여자에게 물어보고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한 다음 관리 한 사람을 불러 그 여자의 모든 소유를 돌려주고 그녀가 떠나고 없는 7 년 동안에 그녀의 토지에서 생산된 모든 농산물을 계산해 주라고 지시 ” 했습니다 ( 열왕기하 8:1-6,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 그 수넴 여자 ” 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났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어떻게 그녀가 왕에게 호소하러 갔었을 바로 그 때 왕은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기적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었을까요 ?   그리고 분명히 엘리사 선지자가 행한 기적들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는 엘리사 선지자가 그 수넴 여자의 죽은 아들을 살린 기적을 왕에게 말해줬을까요 ?   놀랍지 않습니까 ?   이것이 모두 다 우연히 일어난 것일까요 ?   룻이란 이방 여인도 “ 우연히 ” 자기 시아버지인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

몇 칠이나마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방을 공급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몇 칠이나마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방을 공급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었던 수넴 여자는 엘리사 선지자가 “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 ” 인 줄을 알고 그가 수넴에 올 때마다 식사를 대접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그를 위하여 옥상에 작은 방 하나까지 만들어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들여놓고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에 올 때마다 쉬어 가게 했습니다 ( 열왕기하 4:8-10).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 ( 목사님들이나 선교사님들 ) 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여기 저기 다니실 때 주님께서 그분들이 가는 곳마다 이 수넴 여자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셔서 몇 칠이나마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방을 공급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2 년 동안 있으면서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 다윗왕을 뵈려고 요압 장군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중재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요압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 사무엘하 14:29,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하는 수없이 압살롬은 자기 하인들을 시켜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해서 결국 요압을 만났습니다 (30-31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때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내가 당신을 부른 것은 당신을 왕에게 보내 왕이 나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때문에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는지 한번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이오 .   내가 차라리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   이제 나를 왕과 좀 만나게 해 주시오 .   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왕이 나를 죽여도 좋소 ”(32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 압살롬의 행동과 말을 생각할 때 저는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그리워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   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자기를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놓고서도 2 년 동안이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니까 자기가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요압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그 사람 사이에 거리를 멀리 두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미워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지만 , 용서하는 마음은 서로의 거리를 좁힙니다 .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 (3) (사무엘상 18장 12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 (3)             “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 사무엘상 18 장 12 절 ).       작가 프랭크 타이거 (Frank Tyger) “우정” (Friendship) 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우정은 기꺼이 들어주는 귀 , 이해해 주는 마음 , 도와주는 손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저는 이 글을 2009 년 7 월 (21 일 ) 에 접한 후 이러한 글을 썼습니다 : “우정을 쌓아가는 개척자가 되고 싶습니다 .   주님 안에서 영원한 친구를 만나고 세우는 기쁨을 맛보고 싶습니다 .   참다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 , 그 만남과 교제 가운데 우정을 쌓아가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싶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듣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   아파하는 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아파할 수 있을 정도로 듣고 싶습니다 .   상처 입은 친구의 이야기를 내 기준으로 들으면서 ' 그거 별거 아니야 ' 라는 식으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   내 기준을 내려놓고 상대방 입장에서 듣고 싶습니다 .   그러므로 내 마음 또한 상처 입기를 원합니다 .   아무리 내가 보기에 작은 일일지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크게 느껴져서 말하는 진솔한 이야기를 겸손한 자세로 경청하고 싶습니다 .   진심으로 듣는 자가 될 때에 상대방 친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즉 , 듣는 자는 이해하는 자라 생각됩니다 .   친구가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을 나눌 때에 어찌 진지하게 듣지 않겠습니까 .   함께 울지 못함이 미안할 뿐입니다 .   그러나 마음으로는 울고 싶습니다 .   왜냐하면 친구의 눈물의 의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 (1) (사무엘상 18장 12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 (1)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 사무엘상 18 장 12 절 )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남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저는 지난 주 화요일 (2023. 1. 24.) 아침에 사무엘상 9 장을 묵상하면서 3 가지 적용을 했습니다 :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 ( 기도 ) 를 들으십니다 .   (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측은히 여기십니다 .   (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의 고통 속에서 구해 내시려고 우리의 삶 속에 만남을 주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남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대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   저는 오늘 본문 사무엘상 18 장 12 절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이란 제목 아래 사무엘상 17 장에서 20 장까지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생에 만나게 하신 3 명 중 한 명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   첫째로 ,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은 이스라엘 왕 사울을 만났습니다 .   사울이 다윗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이야기가 사무엘상 16 장 21-23 절에 나옴 .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사울은 다윗을 보는 순간 그를 대견스럽게 여겨 사랑하고 그를 자기 호위병으로 삼았다 .   그런 다음 사울은 사람을 이새에게 보내 ' 다윗을 내 곁에 있게 하라 . 내가 그를 무척 좋아한다 .' 라고 하였다 .   그 후로부터 하나님이 보낸 악령이 괴롭힐 때마다 다윗이 수금을 타면 사울은 상쾌하여 낫고 악령은 그에게서 떠나갔다 . ”   이 말씀의 문맥을 보면 사울이 다윗을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