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마지막 문안 인사 (14)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지막 문안 인사를하면서 아리스다고를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 골 4:10). 이 헬라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나의 동료 포로”를 의미하며 , 아마도 우리는 그는 실제로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 니다 . “나와 함께 갇힌” 자라는 이 명칭은 빌레몬서 1 장 23 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 와 로마서 16 장 7 절 (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에도 나옵니다 . 여기서 아리스다고와 에바브라와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공통점은 영적 전쟁인 복음 사역을 위해 바울과 함께 고난을 겪으며 결박된 진정한 전우라는 것입니다 . 바울이 사 용한 헬라어 “ 쉬나이크말로토스 ” 는 신약성경에 단 세 번만 사용된 특별한 칭호로서 바울은 수많은 동역자 중에서도 복음을 위해 실질적인 신체적 자유를 포기하고 고난의 현장에 끝까지 함께한 이 네 사람에게만 이 특별한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 인터넷 ).
강생의 목적 [ 요한복음 1 장 14 절 ] 성경 요한복음 1 장 14 절을 보십시오 :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여기서 “ 말씀 ” 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우리는 요한복음 1 장 1 절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 여기서 “ 태초 ” 란 단어가 성경에 3 번 나옵니다 : 창세기 1 장 1 절 , 요한복음 1 장 1 절 , 요한일서 1 장 1 절 . 이 셋 중에 창세기 1 장 1 절의 “ 태초 ” 는 만물의 시작을 가리킵니다 . 그러나 요한복음 1 장 1 절과 요한일서 1 장 1 절의 “ 태초 ” 는 시작 이전의 세계인 영원한 것을 가리킵니다 . “ 말씀 ” 은 창조되신 분이 아니시고 , 시작이 있지 않으시고 ,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 성경 출애굽기 3 장 14 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 이십니다 ( 요 1:1). 간략하게 요한복음 1 장 14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 말씀 ” 이란 3 가지입니다 : (1) “ 말씀 ” 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십니다 , (2) “ 말씀 ” 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 (3) “ 말씀 ” 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3 절 ). 성경 요한복음 1 장 14 절은 이 “ 말씀이 육신이 되 ” 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 육신 ” 이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 사람이되 ‘ 죄가 없는 사람 ’ 을 가리킵니다 ( 고후 5:21). 말씀이신 창조주 성자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완전한 사람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