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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यीशु मसीह का सेवक” [रोमियों 1:1–7]

  “यीशु मसीह का सेवक ”       [रोमियों 1:1–7]     रोमियों के नाम पत्र प्रेरित पौलुस ने तब लिखा था जब वे अपनी तीसरी मिशनरी यात्रा के दौरान यरूशलेम जाने से पहले कुरिन्थ में थे (हेंड्रिक्सन)। यह पत्र रोम में रहने वाले ईसाई समुदाय के लिए था, जिसमें यहूदी और गैर-यहूदी (अन्यजाति) दोनों तरह के विश्वासी शामिल थे — हालाँकि उनमें से ज़्यादातर गैर-यहूदी संत थे। पौलुस ने उन्हें यह पत्र एक खास मकसद से लिखा था: सुसमाचार का प्रचार करना (अध्याय 1–11) और उन्हें उस सुसमाचार के योग्य जीवन जीने के लिए प्रोत्साहित करना (अध्याय 12–16)। संक्षेप में, रोमियों की पत्री का मुख्य विषय “ सुसमाचार ” है (मू)। “सुसमाचार ” संज्ञा और उससे जुड़ी क्रिया “सुसमाचार का प्रचार करना ” पत्र की प्रस्तावना (देखें 1:1, 2, 9, 15) और निष्कर्ष (15:16, 19) दोनों में प्रमुखता से आते हैं; असल में, “सुसमाचार ” शब्द पूरी पत्री का आधार है। आज का अंश आयत 1–7 को कवर करता है — यानी “अभिवादन और आशीष ”— जो पत्र की प्रस्तावना (आयत 1–17) का हिस्सा हैं। हम इस हिस्से को संक्षेप में तीन भागों में बाँट स...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눈앞의 현실에 압도되어 기도의 자리, 인내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집요한 믿음으로 끈기있게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눈앞의 현실에 압도되어 기도의 자리, 인내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라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집요한 믿음으로 끈기있게 끝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는데 도시에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8:2-8).

 

 

(1)   저는 지난 금요일에 누가복음 18 1-8 말씀을 묵상하려다가 1절만 묵상하는데도 짧은 말씀 묵상 글이 길어져서 1절만 짧은 말씀 묵상 글을 이렇게 오늘 월요일에 나머지 2-8 말씀을 묵상하면서 짧은 말씀 묵상 글을 써내려갑니다.

 

(a)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2-8 말씀을 한국어로 읽은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제일 먼저 관심을 갖게 문장은 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판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τν θεν μ φοβούμενος κα θρωπον μ ντρεπόμενος( 테온 포부메노스 카이 안트로폰 엔트레포메노스)]입니다(4절에도 말씀이 나옴).  저는 문장을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지 않는 것과 사람을 무시하는 (존중하지 않는 )’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무시한다)’ 것입니다.

 

(i)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헬라어 문장 구조와 당대 문화적 배경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유를 인공지능인 헬라어 본문의 구조적 특징과 수사학적 관점에서 3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1.      데칼코마니 같은 대칭 구조 (대구법)[“데칼코마니(Décalcomanie)” 원래 종이 위에 물감을 바르고 접었다 펴서 반대쪽에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미술 기법 .  문학(대구법)이나 일상에서 " 대상이 닮았거나, 거울을 것처럼 구조적으로 일치할 " 비유적으로 '데칼코마니 같다' 표현함]

 

헬라어 문장을 다시 보시면 표현이 완전한 쌍둥이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τν θεν (하나님을) / μ (않고) / φοβούμενος (두려워하는)

νθρωπον (사람을) / μ (않고) / ντρεπόμενος (존중하는)

 

명사, 부정어, 분사가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대칭(Parallelism)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지 형용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가 인간관계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시각적·언어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수사법입니다.

 

2.      수치와 명예 문화 (Honor and Shame)

 

2절의 마지막 단어인 'ντρεπόμενος(엔트레포메노스)' 어원은 '안으로 돌아서다', '부끄러워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평판을 의식하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당대 유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두려워하는 '종교적 양심', 이웃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적 명예(체면)' 인간을 통제하는 가지 축이었습니다.   재판장은 신전의 (신성)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 사회의 최소한의 상식과 평판(체면)조차 신경 쓰지 않는 "완전한 무법자이자 통제 불가능한 괴물"임을 문장의 연동을 통해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 관계를 결정합니다.

 

십계명이 하나님 사랑(1-4계명) 이웃 사랑(5-10계명)으로 연결되듯, 헬라어 문장에서도 수직적 경외함(하나님) 무너지니 수평적 존중(사람)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리얼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창조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νθρωπον) 한낱 무시해도 되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결코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할 없다" 것은 누가복음 18 2절의 헬라어 본문이 가진 핵심 의도입니다.

 

·         여기서 저는 “φοβούμενος”(두려워함, 경외함)이란 단어의 의미와 ντρεπόμενος”(존중함)이란 단어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유는 단어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수직적)’이웃과의 관계(수평적)’ 규정하는 핵심 동사들이기 때문입니다(인터넷):

 

a.      포부메노스 (φοβούμενος) : 두려워함, 경외함

 

단어는두려워하다’, ‘무서워하다라는 뜻의 동사 '포베오(φοβέω)' 현재 중간태/수동태 분사 형태입니다.  우리가 아는 공포증을 뜻하는 영어 단어 'Phobia(포비아)' 어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단어가 '하나님' 대상으로 쓰일 때는 단순한 공포심을 넘어 가지 깊은 뉘앙스를 가집니다.

 

창조주에 대한 절대적 경외 (Reverence): 인간이 감히 범접할 없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섰을 느끼는 피조물의 거룩한 떨림과 존경을 뜻합니다.

 

심판에 대한 의식: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율법(말씀) 가진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따라서 재판장이 '하나님을 포부메노스(φοβούμενος)(두려워) 하지 않는다' 것은, 하나님의 시선이나 최후의 심판, 도덕적 법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영적 무법자' 상태임을 뜻합니다.

 

b.     엔트레포메노스 (ντρεπόμενος) : 부끄러워함, 눈치 , 존중함

 

단어는 '안에(ν)'라는 접두사와 '돌리다(τρέπω, 트레포)'라는 동사가 결합한 '엔트레포(ντρέπω)' 현재 중간태 분사 형태입니다.

 

직역하면 "자기 내부로 (시선을) 돌리다", "자기 행동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하다"라는 뜻에서 출발합니다.  고대 근동과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핵심인 '명예와 수치(Honor and Shame)' 맥락에서 단어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가집니다.

 

사회의 평판과 체면을 의식함: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여론, 도덕적 비난을 의식하여 행동을 조심하는 태도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는 브레이크 장치입니다.

 

상대를 가치 있게 여김 (존중):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면 되는 인격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며 예의를 갖추는 것입니다.


본문에서의 의미: 재판장이 '사람을 엔트레포메노스(ντρεπόμενος)(존중)하지 않는다' 것은, 과부처럼 힘없는 자들의 절규나 사회적인 비난, 이웃의 눈총, 평판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는 '사회적 안하무인'이자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임을 뜻합니다.

 

단어의 상호작용 요약

 

“φοβούμενος”(포부메노스)(두려워함, 경외함) 인간 내면의 '종교적 양심과 신앙' 제어하는 고삐라면, “ντρεπόμενος”(엔트레포메노스)(존중함) 인간 사회의 '윤리와 공동체적 상식' 지키게 하는 브레이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판장이 신앙적 고삐(하나님을 경외함) 풀렸고, 사회적 브레이크(사람을 의식함) 고장 , 누구도 막을 없는 비정하고 악한 상태임을 단어의 조합을 통해 입체적으로 고발하신 것입니다(인터넷).

 

(b)   이러한 재판장이었기에 과부 자주 그에게 가서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애원했어도 얼마 동안 듣지 아니했던 것입니다(18:3-4).  여기서 저는 과부 애원과 자주 얼마 동안이란 단어들에 대한 구체적 의미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1.      과부 (χήρα, 케라) : 극단적인 사회적 취약계층

 

헬라어 '케라(χήρα)' '남편이 없는 여인' 뜻하지만, 당시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단순히 결혼 상태의 상실을 넘어 '법적, 경제적 보호자가 전무한 상태' 의미했습니다.

 

고대의 법적 한계: 당시 여성이 법정에 직접 나아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보통은 남편, 아들, 혹은 남동생 같은 남성 보호자가 대리해야 했습니다.

 

원한을 풀어 주소서”[κδίκησόν με (에크디케손 )]: 표현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나의 법적 권리를 찾아 공정한 판결을 내려달라" 뜻입니다.  남편이 죽은 유산이나 토지를 빼앗겼거나, 사기를 당해 억울한 상황에 처했으나 이를 대신 싸워줄 사람이 없는 상태입니다.

 

뇌물의 부재: 당대 재판관들은 뇌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과부' 악한 재판장에게 전혀 '수익성이 없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2.      자주” [ρχετο (에르케토)]: 끊임없이 반복되는 발걸음

 

한국어 성경에는 자주 가서라고 번역되어 있으나, 헬라어 원문은 ρχετο”(에르케토)라는 단어 하나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헬라어 단어는 '오다/가다' 뜻하는 동사의 '미완료 과거' 시제입니다.

 

끝나지 않는 현재진행형: 헬라어에서 미완료 시제는 과거에 어떤 행동이 단회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 반복되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어법입니다.

 

단어의 진짜 뉘앙스: "한두 자주 갔다" 수준이 아니라, "재판장이 거절하고 무시해도, 다음 오고, 그다음 오고, 끊임없이 재판장의 집과 집무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요함과 절박함을 문법 구조 자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3.      얼마 동안” [π χρόνον (에피 크로논)]: 기약 없는 거절의 시간

 

헬라어 원문은 π χρόνον”(에피 크로논)으로, 직역하면 "상당한 시간 동안"이라는 뜻입니다.

 

시간의 무게: 여기서 사용된 “χρόνον”(크로논) 단순히 째깍거리는 물리적 시간(Chronos) 뜻합니다.  재판장이 과부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 , 과부의 끊임없는 방문을 , 혹은 수개월 동안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무시했음을 나타냅니다.

 

절망감의 극대화: 과부의 입장에서는 π χρόνον”(에피 크로논)(“얼마 동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절망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재판장의 안하무인 격인 성품(하나님도, 사람도 무서워하는) 시간 동안 과부를 철저히 고립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요약하자면,

법적 보호자도 돈도 없는 '과부(케라)', 아무리 애원해도 듣지 않는 철벽 같은 재판장을 향해 매일같이 눈물로 문을 두드리는 '끝없는 발걸음(에르케토)' 지속했고, 재판장은 냉정하게 '기약 없는 시간(에피 크로논)' 동안 그녀를 방치했습니다.

 

단어들의 조합은 "세상에서 가장 무력한 자가 세상에서 가장 완악한 권력자를 흔들기 위해 지불한 절박한 인내의 깊이" 아주 리얼하게 시각화해 줍니다(인터넷).

 

(c)   그런데 기약 없는 거절의 시간(“얼마 동안”)[π χρόνον (에피 크로논)] 끝내 깨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재판장의 내면적 번뇌입니다.  그의 내면적 번뇌를 묘사하는 문장이 바로 "나를 번거롭게 하나”[κόπον παρέχειν (코폰 파레케인)] "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πωπιάζ με (휘포피아제 )]입니다(18:5).  저는 문장의 구체적인 의미도 궁금해졌습니다.

 

(i)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던 철혈의 재판장을 결국 굴복시킨 것은 거창한 정의감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안위를 위협받는극심한 내면적 스트레스와 공포였습니다.  그의 내면적 번뇌와 붕괴 과정을 보여주는 "나를 번거롭게 하나”[κόπον παρέχειν (코폰 파레케인)] "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πωπιάζ με (휘포피아제 )] 구체적인 헬라어 뉘앙스를 인공지능이 분석한 것입니다(인터넷):

 

1.      나를 번거롭게 하니” [κόπον παρέχειν (코폰 파레케인)]

 

표현은 직역하면 "나에게 고통을 제공하다", "나를 녹초로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코포스(κόπος) 어원: 단어는 '치다', '때리다'라는 뜻의 동사 '코프토(κόπτω)'에서 유래했습니다.  격렬한 노동이나 매질로 인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서 쓰러질 같은 상태(Exhaustion) 의미합니다.

 

본문에서의 뉘앙스: 과부의 지속적인 방문과 부르짖음이 재판장에게는 단순한 '귀찮음' 수준을 넘어섰음을 뜻합니다.  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신적 타격(Blow) 입고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2.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πωπιάζ με (휘포피아제 )]

 

비유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수사학적으로 강렬한 단어가 바로 '휘포피아제(πωπιάζ)'입니다.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권투(Boxing) 경기에서 사용되던 전문 용어입니다.

 

단어의 진짜 의미: " 아래를 가격하여 피멍이 들게 하다", "안면을 강타하다(Give a black eye)"라는 뜻입니다.

 

재판장의 비유적 공포: 과부가 진짜로 재판장의 얼굴을 때릴 리는 만무합니다.  따라서 단어는 재판장의 극단적인 심리적 위기감을 가지로 표현합니다.

 

정신적 KO 상태: " 여자가 날마다 와서 정신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바람에 내가 지금 그로기(KO) 직전 상태다."

 

사회적 명예의 훼손: 당시 권투 시합에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는 것은 수치였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던 오만한 재판장이었지만, 과부가 날마다 법정이나 앞에서 통곡하고 시위를 하니, 자신의 마지막 남은 사회적 체면과 명예(Black eye) 완전히 박살 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와서” [ες τέλος (에이스 텔로스)]: 한국어 성경에는 와서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적 의미는 "끝까지", "영원히", "그녀가 목적을 이룰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고"라는 뜻입니다.  , "내가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면 여자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쫓아다니며 대기치듯 괴롭힐 것이다"라는 절망이 섞여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도 무섭고 사람도 우습다" 재판장이었지만, 과부의 끈질긴 체력전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 여자가 목적을 이룰 때까지(에이스 텔로스) 나를 정신적으로 매질하여 녹초로 만들고(코폰 파레케인), 얼굴과 명예에 피멍이 들도록 사정없이 강타하고 있으니(휘포피아제),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원한을 풀어주어야겠다" 백기를 것입니다.

 

결국 비유는 가장 힘없는 자의 '낙심하지 않는 기도의 ' 세상에서 가장 완악한 권력자의 철벽 같은 요새를 어떻게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지 거친 권투 용어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인터넷).

 

(d)   마지막으로, 저는 주님(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7-8) 하신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i)                  7-8 말씀은 불의한 재판장과의로우신 하나님 극적으로 대조하며, 우리가 어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비유의 핵심 주제를 드러냅니다.   말씀에 숨겨진 강력한 헬라어 단어들과 뉘앙스를 인공지능이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입니다(인터넷):

 

1.      하물며 하나님께서...” [ο μ ποιήσ τν κδίκησιν ( 포이에세 에크디케신)]

 

7절은 헬라어 문법에서 가장 강력한 이중 부정어인 “ο μ”( ) 시작합니다.  이는 "결코, 단연코 ~ 아니다"라는 절대적 확신의 표현입니다.

 

대조를 통한 확신: 악하고 인색한 재판장도 자기 몸이 피곤하고 체면이 깎이니까(휘포피아제) 결국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물며( )"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녀의 기도를 외면하시겠느냐며 강력한 반어법을 쓰십니다.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여기서 '원한을 풀다(에크디케신)' 과부가 3절에서 외쳤던 단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불의한 재판장처럼 귀찮아서 마지못해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녀들의 깨어진 권리와 눈물을 완벽한 정의로 보응하시는 분임을 선언합니다.

 

2.      오래 참으시겠느냐” [μακροθυμε π’ ατος (마크로튀메이 에프 아우토이스)]

 

구절은 번역에 따라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지는 매우 깊은 단어입니다.  '마크로튀메오(μακροθυμέω)' 주로 '오래 참다', '인내하다' 번역됩니다.

 

원어의 진짜 뉘앙스: 여기서 '오래 참으신다' 것은 기도를 들어주고 버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어는 "진노를 더디 하시다", "심판을 늦추시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숨겨진 의미: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통받으며 "도대체 언제 정의를 실현해 주십니까?"라고 부르짖을 , 하나님이 즉각 원수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지체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악인들조차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사랑으로 '오래 참고(마크로튀메이)' 기다려주시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자녀들의 고통을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향한 구원의 오래 참으심(인내) 작동하고 있다는 눈물겨운 대답입니다.

 

8절과의 연결: 그래서 8절에 "속히”[ν τάχει ( 타케이)]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면, 심판과 공의의 실현은 번개처럼 '속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3.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ρα ερήσει τν πίστιν (아라 휴레세 피스틴)]

 

비유의 가장 충격적인 마지막 질문입니다.  여기서 믿음앞에 헬라어 정관사 'ν)' 붙어 있어서, 원문은 " 믿음(The Faith)" 뜻합니다.

 

' 믿음'이란?: 앞서 보았던 '과부의 믿음' 뜻합니다.  아무리 눈앞의 현실이 기약 없는 거절의 시간(에피 크로논)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같아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반드시 공의롭게 응답하신다" 것을 믿고 낙심하지 않는 바로 ' 집요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탄식: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눈앞의 현실에 압도되어 기도의 자리, 인내의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 과부처럼 끝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 믿음' 가진 사람을 과연 찾을 있겠느냐?"라는 도전적이고 가슴 아픈 질문으로 비유를 맺으십니다.

 

전체 흐름 요약 결론


예수님은 (a), (b), (c) 통해 쌓아 올린 불의한 재판장의 이야기를 한순간에 뒤집으십니다.

 

인간 재판장은 자기 귀찮은 면하려고 들어주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결단코( )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세상을 향한 사랑 때문에 조금 더디 하시는 것처럼(마크로튀메이) 보일 , 때가 되면 단번에( 타케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하나님이 응답 하시는가' 아니라, '우리가 응답의 때까지 과부처럼 낙심하지 않는 믿음( 피스틴) 유지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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