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강생(나심)
[사도행전 1장 1-11절; 요한복음1장 1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많은 일들 중에 제일 큰 5가지 일은 (1) 강생(나심), (2) 죽으심, (3) 부활, (4) 승천, (5) 재림입니다. 이 5가지 큰 일을 묵상하고자 사도행전
1장 1-11절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는 첫째 큰 일인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나심)에 관한 말씀이 없기에 요한복음
1장 14절을 추가로 택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1절을 보면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다는 말씀은 누가복음
3장 23절에 “삼십 세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셨다(행1:1)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인 예수님의 강생(나심)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무리라고 생각되어서 예수님의 강생(나심)을 말씀하고 있는 요한복음
1장 14절을 추가로 선택한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은 예수님의 5대 사역 중에 예수님의 강생(나심)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여기서 우리는 “강생”이란 단어와 “탄생”이란 단어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강생”이란 단어는 “내릴 강”에 “날 생”으로서 글자 그대로의 뜻은 “하늘에서 내려와 태어나다”입니다. “탄생”이란 단어는 “태어날 탄”에 “날 생”으로서 글자 그대로의 뜻은 “태어나고 세상에 나오다”입니다. “강생”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태어남을 뜻하지만,
“탄생”은 일반 사람이나 위인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일반적인 현상을 뜻합니다. 이 두 단어의 결정적인 차이를 요약한 문장입니다:
“강생은 원래 존재하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땅으로 내려오신
'위에서 아래로의 이동'을 강조하고,
탄생은 세상에 없던 생명이나 존재가 처음으로 생겨난
'무에서 유로의 시작'을 의미합니다(인터넷). 중국 성경에는 “강생”이란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성경에는 “강생”이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 찬송가는 오래전에는 “강생”이란 단어가 많이 나왔는데 요즘 찬송가에는 “강생”이란 단어 대신 이해하기 쉬운 “탄생”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통일 찬송가에는 “강생”과 “탄생”이란 단어가 같이 나옴).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말씀”이란 “태초”에 계신 말씀(1절)입니다. 여기서 “태초”란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와 달리 창세(만세) 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창세(만세) 전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출3:14).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성부)
하나님”이십니다(요1:1).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습니다(14절). 어떻게 그리되었습니까? 빌립보서
2장 6-7절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여기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란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본질과 속성,
영광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히 똑같으신 분(참 하나님)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절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와 정확히 일치하는 고백입니다. “자기를 비워”(케노시스,
Kenosis)라는 말씀의 의미는 신성의 본질을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하늘의 영광과 특권'을 스스로 제한하고 포기하셨다는 뜻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신성한 권리를 내려놓는 선택을 통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란 말씀의 의미는 단순히 인간의 겉모습만 흉내 내신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배고픔을 겪는 실제 인간(참 인간)이 되셨음을 뜻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가장 낮은 신분인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류를 섬기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자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방법은,
자신의 신성한 영광과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고(자기를 비워),
피조물인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양식을 취하사(종의 형체를 가짐)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강생”(하늘에서 내려와 태어나심)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위대한 신학적 신비의 실체입니다(인터넷).
예수님이 나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나심)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여기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란 말씀은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사건, 그리고 누가복음
2장의 "구주가 나신"
사건을 완벽하게 예언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씀은 태어나신 아기는 겉보기에 나약한 아기이지만,
그 본질은 빌립보서
2장 6절 말씀대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명확히 선포합니다.
즉,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오실 것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란 말씀에서 “정사”는 통치권을 뜻합니다.
빌립보서에서 종의 형체로 낮아지셨던 그분이 궁극적으로는 온 우주를 다스릴 참된 왕이심을 나타냅니다(인터넷).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강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여기서 우리는 강생의 방법을 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혈통이나 남녀의 결합이 아니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습니다(인터넷). 그리고 누가복음
2장 1-7절 말씀은 예수님의 강생의 역사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말씀처럼 자기를 비워 가장 낮아지신 예수님의 실제 태어나심을 묘사합니다. 화려한 왕궁이 아닌
'구유(말밥통)'라는 가장 비천한 곳에 누이심으로써,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강생의 낮아지심을 역사적 사건으로 확증해 줍니다(인터넷).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0-12절 말씀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성육신 이후 세상의 거부와 믿는 자들이 누리는 권세를 대조합니다.
창조주께서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그분을 몰라보고 영접하지 않았으나,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거절당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는 예수님의 성육신 목적과 사랑을 보여줍니다(인터넷). 예수님의 강생은 환영받는 화려한 입국이 아니었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할 것'을 이미 다 아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절당할 것을 아시면서도 내려오신 예수님의 강생의 사랑입니다(10-11절).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아들(사람의 아들)로 내려오신 궁극적인 이유는,
인간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격상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위한 예수님의 강생의 목적입니다(12절).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시는(강생) 거대한 신학적 신비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나 같은 죄인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엄청난 특권(권세)을 쥐여주기 위함이었음을 고백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강생은 단순한 역사적 베들레헴 탄생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그분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의 심령 속에 매일 새로운 탄생(하나님 자녀로의 거듭남)으로 이어집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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