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시 119:67, 71). 이러한 깨달음(나의 죄)과 배움(하나님의 말씀)과 지킴( 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 1. 깨달음: 교만함(시119:69), 그릇 행함(67절), 마음의 살찜과 기름덩이(70절) [마음에 지방을 제거하라!: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12959844] 2. 배움: 자녀들의 위기를 통해 저는 선하신 주님께서(68절) 저를 선대하사(65절) 가르쳐주신(68절) 시편 63편 3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71절).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째 아기 주영이를 추모하면서 ...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262767368] [금년 2019년 한 해를 영원히 과거로 보내기에 앞서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756284213] 3. 지킴: https://youtu.be/i6TfokavYN4?si=P1E4vvk_bnPOvabx
“ 주의하라 ” [ 골로새서 2 장 8-23 절 ] 여러분 , “이단”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 황대우 교수란 분이 “개혁주의 학술원”이란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이단’ ( 이단 ( 異端 ) 이란 ‘다를 이’에 ‘끝 단’자로 구성된 단어이며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 하지만 이단을 의미하는 영어 명사 ‘헤러시’ (heresy) 의 어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하이레시스’가 신약성경에서는 ‘사두개파’ ( 행 5:17), ‘바리새파’ ( 행 5:17), ‘파당’ ( 행 26:5; 고전 11:19; 갈 5:20) 등과 같은 ‘분파’를 의미하는 중립적 개념이다 . 1 세기의 사도들은 일종의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 하지만 2 세기의 속사도교부들은 그 용어를 부정 ( 否定 ) 과 차별 ( 差別 ) 의 의미를 내포한 평가적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이단의 의미다 . 그러므로 이단이란 용어는 이미 2 세기부터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 영국 신학자 맥그래스 (McGrath) 에 의하면 , “이단은 우발적이든 고의든 주인의 집안에 대안적 신념 체계를 세우는 수단 , 즉 일종의 트로이 목마 같은 것이다 . 이단은 겉으로는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 실제로는 파괴적 씨앗을 심는 신앙의 원수이다 . … . ” “오늘날 ‘이단’이란 말은 ‘완전히 다른 복음’ , 즉 기독교에 포함시킬 수 없는 단체나 모임에 적용하는 용어다 .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기준 , 즉 이단의 기준은 무엇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