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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기회입니다. (6)

"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시 119:67, 71). 이러한 깨달음(나의 죄)과 배움(하나님의 말씀)과 지킴( 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 1. 깨달음: 교만함(시119:69), 그릇 행함(67절), 마음의 살찜과 기름덩이(70절) [마음에 지방을 제거하라!: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12959844] 2. 배움: 자녀들의 위기를 통해 저는 선하신 주님께서(68절) 저를 선대하사(65절) 가르쳐주신(68절) 시편 63편 3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71절).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째 아기 주영이를 추모하면서 ...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262767368] [금년 2019년 한 해를 영원히 과거로 보내기에 앞서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756284213] 3. 지킴: https://youtu.be/i6TfokavYN4?si=P1E4vvk_bnPOvabx

동성애에 관하여 자녀와의 대화 (2016. 10. 14.)

동성애에 관하여 자녀와의 대화




2016년 10월 14일, 금요일 오후.


나는 예리에게 전화를 받고 예리와 딜런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딜런 친구를 먼저 집 근처에 내려주고 나는 딜런과 예리가 배고파 해서 햄버거 사주러 갔다. 가서 Drive thru에서 우리 차례를 기다리면서 나는 딜런과 예리에게 동성애에 관하여 말을 꺼내 대화를 나눴다. 안그래도 예리가 얼마 전에 자기 학교 Newsletter article를 동성애에 대해서 쓴 것도 있고 해서 나는 그 두 아이들과 동성애에 관하여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나는 그들에게 만일 너희가 부모가 되어 너희 자녀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자녀가 같은 동성과 결혼하겠다고 하면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식으로 물어봤다. 너희는 너희 자녀에 동성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복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딜런은 아무 머뭇거림도 없이 참석해서 축복하겠다고 말하였다. 딜런의 말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동성애나 우리가 짖는 죄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리도 '이혼'도 죄가 아니냐고 말하면서 오빠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예리는 내 질문에 답은 하지는 않았지만 예리는 사랑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예리에게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을 하되 그 사랑도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사랑을 하되 그들이 행하는 것을 동의하며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우리 차례가 되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우리 각자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각자 먹다가 나는 예리에게 오늘 자기 학교에서 나온 newsletter을 좀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 newsletter에 예리가 쓴 글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글 제목은 ‘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나는 homophobic(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람?)은 아니다’였다. 예리가 이번 학기부터 자기 학교 저널리즘 반에서 newsletter article를 쓰게 되었는데 자기 동성애에 관한 자기 생각을 쓰겠다고 했고 쓴 글이 뽑혀서 학교 newsletter에 실렸다고 했기에 나는 그 newsletter을 좀 나에게 갔다 달라고 예리에게 부탁한 것이다. 물론 나는 예리가 쓴 글을 읽었지만(예리의 글을 학교 newsletter editor이 좀 수정했다고 함) 전체적으로 무슨 글들이 실려있는지를 쭉 훑어보았다. 아마 다음주에 학교 동성애자들과 동맹/연합(ally)하는 주래서인지 여러 글들이 동성애자들을 지지하는 글들이 여러 개 실려 있었다. 심지어 예리의 글에는 editor이 십자가 뒤에 무지개를 그려서 넣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다시 예리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예리가 쓴 글에 대해서 좀 대화를 나눴다. 나는 예리에게 그 글을 쓴 후 혹시 주위 학생들이 뭐라 말을 하더냐 식으로 물어보았다. 예리 말로는 자기 반에 잘 모르는 여학생이 자기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예리는 그 여학생이 동성애자라고 말하면서 아마도 자기의 글을 읽고 자기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은 것 같다고 한다. 아마도 그 여학생이 예리의 글을 읽고 예리하고 대화하고 싶었나 보다. 그 여학생이 예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는 동성애를 지지(support)하냐?’ 그 질문을 받고 예리는 그 여학생에 ‘나는 동성애는 지지하지 않지만 …’라고 말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한 것 같다. 아마도 예리는 자기가 쓴 글 내용처럼 자기는 동성애자들을 혐오하지 않고 그들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핍박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예리에게 내가 인터넷 사역을 통해서 알게된 동성애자 자매를 한국에 가서 만났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예리에게 어떤 동성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받아들임(acceptance)이 필요하다고 말해주면서 자기 스스로가 동성애자 죄인 줄 알고 원치 않는데 같은 이성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예리에게 우리가 그러한 자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되 그들의 행하는 동성애 행위는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다시 말해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미워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그리 말한 이유는 예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용서가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리에게 물론 하나님의 사랑에는 용서가 있지만 그 용서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용서임이라고 말해주었다. 우리가 죄를 계속 짖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회개하지 않는 죄까지 포용하여 용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리에게 예수님께서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돌려 치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요8:7)는 말씀을 하셨지만 또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너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11절)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예리에게 우리가 죄인을 받아들이지만 죄는 미워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대화하다가 학교에 다 와서 나는 예리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하고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서 학교로 걸어가는 예리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집으로 와서 아이들과 동성애에 관하여 나눈 대화를 좀 정리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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