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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소중한 아내/엄마인데 ... 제주도에 사는 사랑하는 어느 형제가 저의 부탁을 들어줘서 딜런과 제시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냈더니 밑에 사진을 만들어 줬답니다 ㅎㅎ 그런데 희안한 것은 그 형제의 말로는 AI가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한다고 하네요 ㅎㅎㅎ Mystery네요 ㅎㅎㅎ 왜 original 사진은 6명인데 제 아내를 인식을 못하는지 좀 이상하지만 제가 그 형제에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여기에 좀 글을 써서 나누겠다고 말했답니다 ㅎㅎ 제가 좀 나누고자 하는 것은 뭐냐면 제 아내 또는 세 자녀들의 엄마인 김(오)현영(Jane)이는 우리 가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AI가 인식을 못하듯이(그런데 AI이네요 ㅋㅋㅋ) 어쩌면 남편이 저나 세 자녀들이(이젠 며느리까지? ㅎㅎ) 아내/엄마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좀(?)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아내/엄마라는 존재가요. 그리도 희생적으로 가정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자녀들이 아내/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을 머리로는 좀 알면서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인식(?)을(여기선 "인식"이란 단어보다 "인정"이란 단어가 적합하겠네요) 잘 못하고(안하고? ㅠ) 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가 밑에 사진을 저희 여섯 식구 카톡방에 나누고 싶어도 제 아내가 없어서 나누기가 좀 곤란하네요. 혹시나 아내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ㅠ [근디 어떻게 AI 사진에 제 모습은 완전 할아버지네요 ㅎㅎㅎ] 다른 지체가 이렇게 만들어 줬습니다. 하하. 감사. 

'하나님, 언제까지(how long) ...?'

'하나님, 언제까지(how long) ...?'  여러가지 괴로운 일들로 말미암아 만일 우리가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고 견딤의 한계를 느낄 때에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충분히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을 것입니다 : ‘ 하나님 , 언제까지 (How long)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 ( 참고 : 시편 35:17, 현대인의 성경 ), ‘ 하나님 , 이런 일이 언제까지 (How long) 계속되겠습니까 ?’( 참고 : 89:46; 90:13, 현대인의 성경 ), ‘ 내가 언제까지 (How long) 이 괴로움과 고통 속에 지내야 합니까 ?’( 참고 : 13:2, 현대인의 성경 ), ‘ 하나님 , 언제까지 (How long) 나를 잊으시겠습니까 ?’ ( 참고 : 13:1), ‘ 하나님 , 내 마음이 심히 괴로운데 언제까지 (How long) 기다리겠습니까 / 지체하시렵니까 ?’( 참고 : 6:3, 현대인의 성경 / 새 번역 ), ‘ 하나님 , 언제까지 제 기도를 거절하시겠습니까 ?’( 참고 : 80:4, 현대인의 성경 ).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천사처럼 ‘ 주님께서 언제나 (How long)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겠습니까 ?’ 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 : 스가랴 1:12, 현대인의 성경 ).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그럽고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해주실 것입니다 : ‘ 내가 너에 대해서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있다 .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며 너를 단련시켜 정금같은 믿음의 반석 위에 견고히 세울 것이다 .   그리고 내가 너를 넘치도록 축복하여 풍부하게 할 것이다 .   내가 너를 위로하고 축복하노라 ’ ( 참고 : 스가랴 1:13-17; 욥기 23:10; ...

우리는 실컷 먹고 배부른 다음에를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컷 먹고 배부른 다음에를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광야의 메마른 땅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계십니다 .   그러나 우리는 실컷 먹고 배부른 다음에는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 참고 : 호세아 13:5-6, 현대인의 성경 ).   이것은 마치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며 양떼와 소떼와 은과 금과 재산이 많아질 때 교만하여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을 인도해 내신 그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 여러분은 오늘 내가 가르치는 여호와의 모든 법과 규정을 어기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 입니다 ( 참고 : 신명기 8:11-14, 현대인의 성경 ).

“그제서야”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그제서야 ”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 그제서야 ” 신부된 교회는 신랑되신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즉 , 교회인 우리가 영적으로 음란하게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여 돈을 그리도 열심히 찾고 쫓아갔지만 주님께서 계속해서 그 길을 막으시므로 말미암아 돈을 얻지 못할 그제서야 우리는 궁핍함 가운데서 주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   그 이유는 그 때 우리가 주님만 쫓고 따랐을 때의 형편이 돈을 쫓다가 궁핍해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기 때문입니다 ( 참고 : 호세아 2: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의 탕자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 눅 15:11-32).   아마도 그 이유는 탕자는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생황을 하다가 자기 재산을 모두 날려버려 궁핍함 가운데 있었을 “ 그제서야 ”(17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는 제정신이 들어 “ 내 아버지의 집에는 양식이 풍부하여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 하고 말한 후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17-20 절 , 현대인의 성경 ).

도시에서 풍부함보다 광아에서 궁핍함이 더 귀합니다!

  도시에서 풍부함보다 광아에서 궁핍함이 더 귀합니다! 도시 한 복판에서 세상적으로 풍부함을 누리면서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기보다 이 세상을 광야로 삼고 궁핍함 가운데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모하는 영혼과 주린 영혼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서로 갈라설 때에 선택한 곳의 기준?

서로 갈라설 때에 선택한 곳의 기준?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가축의 풍부함으로 인해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므로 서로 갈라섰을 때 롯은 마치 에덴 동산 같고 이집트의 비옥한 땅과 같은 요단강 유역을 택하자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머물렀습니다 .   여기서 롯의 선택의 근거는 그 요단강 유역을 바라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였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롯은 소돔 사람들이 대단히 악하여 하나님께 크게 범죄하므로 아직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너무 많은 가축 등을 위해 물이 넉넉한 요단강 유역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 창세기 13:10-13, 현대인의 성경 ).   물질의 풍부함으로 인해 친척끼리 서로 다툼으로 인해 서로 갈라설 때에 선택한 곳의 기준이 그 풍부한 물질을 지킬 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 사람들이 악한지 아니면 선한지 그래서 하나님께 크게 범죄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인지 입니다 .

서로 갈라서야?

서로 갈라서야?  한 친척끼리 풍부한 물질때문에 서로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   어쩌면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서로 갈라서는 것입니다 ( 창세기 13:8, 현대인의 성경 ).

지금 내가 필요한 것,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금 내가 필요없다?

지금 내가 필요한 것,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금 내가 필요없다? 지금 내가 절실히 필요한 것 ,  어쩌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금 내가 그것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내게 그것이 필요가 없는데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내 욕심일 수도 ...   그 욕심을 채우고자 내가 필요한 것을 추구하므로 얻었을 때  내가 풍부해졌다는 느낌은 들 수 있겠지만  그 풍부함은 오히려 나의 믿음을 가난하게 할 수도 ...

"위험한 광야"

"위험한 광야" 우리의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  우리 마음이 교만해질 수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 위험한 광야 " 를 지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는 그 위험한 광야를 지나므로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 신명기 8:13-16).

성경을 읽다가 비슷한 말씀이 나올 때 ...

성경을 읽다가 비슷한 말씀이 나올 때 ...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함께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   그 이유는 그들의 소유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 창 13:6).   그래서 롯은 가나안 땅을 떠났습니다 (9-11 절 ).   야곱과 에서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함께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   그 이유는 그들의 소유가 풍부하여 그들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36:7).   그래서 에서는 가나안 땅을 떠났습니다 (6 절 ).   성경을 읽다보면 비슷한 말씀들이 나옵니다 .   그리할 때 그 말씀들을 연관해서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위에 두 말씀들을 연관해서 묵상할 때  왜 롯과 에서는 가나안 땅을 떠나고  아브람과 야곱은 그 땅에 남아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했을 때 든 생각은 창세기 12 장의 말씀입니다 .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라고 명하시고 보여주신 땅입니다 (12:1).   그리고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7 절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신 아브람과 그의 후손인 야곱으로 하여금  그 가나안 땅에 두신 것입니다 .   그리고 롯과 에서를 풍부하게 축복하신 후 그 가나안 땅을 떠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   이 말씀을 적용해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