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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도 욥을 본받아 가정사역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우리도 욥을 본받아 가정사역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   진실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던 욥은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신 후 그 잔치가 끝날 때마다 자녀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녀 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   그 이유는 혹시 자기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욥의 행위는 항상 이러하였습니다 ( 욥기 1:1-5).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욥은 아버지로서 먼저 진실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운 ( 경외하는 ) 마음으로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본을 그의 자녀들에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욥은 가정 사역을 중요시했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욥기 1 장 1-5 절을 보면 욥은 누구이고 (1 절 ) 그의 자녀가 몇 명이고 (2 절 ) 그의 소유에 대해서 말씀한 후 (3 절 ) 4-5 절은 욥의 자녀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욥은 자기 자녀들이 혹여나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봐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린 것을 보면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도 “ 마음으로 ”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길 그리도 원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행동보다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   우리도 욥을 본받아 진실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   그리고 우리도 욥을 본받아 가정사역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   행동보다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 생활함에 있어서 혹여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우리 마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

보이는 데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보이는 데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의 지시대로 사무엘을 7 일 동안 기다리다가 자기에게 남아 있던 사람들이 다가올 위험을 생각하며 무서워서 떨고 있다가 그들마저 하나씩 둘씩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직접 불로 태워 드렸습니다 .   그러나 그가 막 제사를 다 드렸을 때 사무엘이 도착했습니다 ( 사무엘상 13:7-10, 현대인의 성경 ).   사울 왕이 사무엘에게 한 변명입니다 : " 내 부하들은 내 곁을 떠나고 당신은 오기로 약속한 날에 오지 않고 게다가 블레셋 군은 믹마스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고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려고 오는데 나는 아직도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소 .   그래서 내가 당신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하는 수없이 번제를 드리고 말았소 "(11-12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고 보이는 것을 살면 기다리지 못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참고 : 고린도후서 5:7, 현대인의 성경 ).   만일 사울 왕이 믿음으로 살았다면 그는 사무엘의 지시대로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입니다 .   그런데 사울 왕은 보이는 것으로 행했습니다 .   그가 본 것은 적군인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올라와 진을 쳤는데 전차가 30,000 대와 마명이 6,000 명을 가진 그들의 병력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고 (5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렇게 적의 어마어마한 병력을 보고 사태가 다급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빈 무덤과 웅덩이를 찾아 숨었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차기도 하였으니 이렇게 무서워서 떨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둘씩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6-8 절 ,...

충분한 값을 지불하라!

충분한 값을 지불하라!  비록 헷 사람들은 죽은 자기 아내의 매장지를 사려고 하는 아브라함에게 " 우리 묘지 중에서 제일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아내를 장사하십시오 .    당신이 죽은 아내를 장사하겠다는데 자기 묘지를 아낄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없습니다 " 라고 말했지만 , 아브라함은 충분한 값을 지불해서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부탁하여 그의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사서 자기 가족의 매장지를 삼으려고 했습니다 .   그리했을 때 에브론은 "' 제발 그렇게 하지 마시고 내 말을 들으십시오 . 내가 내 동족들 앞에서 그 밭과 굴을 당신에게 드릴테니 당신의 죽은 아내를 거기 장사하십시오 " 라고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   그러자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 앞에 다시 몸을 굽히고 모든 사람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 아닙니다 .   내가 그 땅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 아무쪼록 그것을 받으시고 죽은 내 아내를 장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라고 말했습니다 .   그러자 에브론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 제발 내 말을 들으십시오 .   땅 값은 은 4.5 킬로그램이지만 나와 당신 사이에 그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   당신의 아내를 거기에 장사하십시오 " 라고 말했습니다 .   그래서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대중 앞에서 말한 대로 은 4.5 킬로그램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고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두 나무가 다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   그리고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의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굴에 장사하였습니다 ( 창세기 23:6-19,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이 생각났습니다 .   그 이유는 다윗도 오르난이 자신의 타작 마당을 " 가지십시오 .   대왕께서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 라고 말했음에...

"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 여호와 이레 " 셨습니다 .   즉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독자 이삭대신 번제할 어린 양을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 " 해 주셨습니다 .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대신 번제 ( 제물 ) 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 창세기 22:8, 13-14).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 자신에게 " 여호와 이레 " 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   즉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대신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바쳐질 어린 양을 하나님의 산에서 준비하지 않으셨습니다 .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준비하셔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죽게하셨습니다 ( 요한일서 4:10).

이삭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이삭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번제 나무를 지고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가면서 아들 이삭은 자기 자신이 제물로 바쳐질 어린 양인 줄 몰랐습니다 .   그래서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 라고 물었고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에게 "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직접 준비하실 것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 창세기 22:6-9).   그러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 히브리 말로 골고다 ) 이라 하는 곳에 나가셨던 예수님께서는 ( 요한복음 19:17) 자기 자신이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 요한복음 1:29, 현대인의 성경 )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로서 ( 요한일서 2:2)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 ( 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 에 못 박혀 죽으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줄 알고 계셨습니다 ( 요한복음 1:29, 현대인의 성경 ).

아브라함과 이삭,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님

아브라함과 이삭,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님 아버지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 이삭에게 번제 나무를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함께 예배하되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자기 아들 이삭을 묶어 제단 나무 위에 올려 놓은 후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치려고 했던 것을 생각할 때 ( 창세기 22:5-6, 9-10, 현대인의 성경 )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 마가복음 1:11, 현대인의 성경 ; 요한복음 3:16)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 이사야 53:6, 12, 현대인의 성경 ) 해골이라고 불리는 골고다로 가셔서 ( 마태복음 27:33) 함께 예배하시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로마 군병을 통해 저주의 나무 ( 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 에 번제할 어린 양 ( 창세기 22:8) 이신 자기의 아들 예수님을 못 박으신 후 창으로 자기 아들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셨다 ( 요한복음 19:34, 현대인의 성경 )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어떻게 친구에게 그렇게 말할수 있을까요?

어떻게 친구에게 그렇게 말할수 있을까요?  욥은 "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 봐 "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 " 습니다 .   "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 " 했습니다 ( 욥기 1:5).   그런데 그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18-19 절 ).   이해가 안되는 것은 욥의 친구 중 빌닷은  욥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 " 다 (8:4).

번제 나무를 번제물에게 지운다?

번제 나무를 번제물에게 지운다? 흥미롭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그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준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려고 가는 길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게 한 것이 말입니다 ( 창세기 22:1-6).   왜 아브라함은 번제 나무를 번제물인 이삭에게  지우겐 한 것일까요 ?   혹시 이것이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우게 한 것과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요 ?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일까 ?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인데 ( 창 22:1-2)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일까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알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않는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   그 근거는 바로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 길로 걷게 하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광야 길로 걷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며 그들을 시험하사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않는지를 알려고 하신 것이다 ( 신 8: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했다 .    즉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다 .   그 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멈추게 하였고 ( 창 22:11-12 상 )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2 절하 ).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셨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셨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도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라고 두 번이나 부르셨습니다 ( 창 22:11).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독자 이삭을 칼로 잡으려는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여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0, 12 절 ).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 나의 하나님 , 나의 하나님 "( 마 27:46) 하고  두 번이나 부르짖으셨을 때 분명히 들으셨을텐데도 불구하고 그 부르짖음을 외면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으로 하여금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죽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  왜 그러셨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