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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요 ,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 즉 ,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버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 막 8:35, 현대인의 성경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 삶으로 복음전도 )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께 복음의 열매를 맺어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 형제와 화해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

그 형제와 화해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 만일 우리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을 하고 난 후에 그 형제와 화해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 참고 : 마태복음 5:23-24,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그러한 예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 너희의 수많은 예배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 ‘ 나는 너희가 드리는 예배에 이제 싫증이 났다 ’ ‘ 나는 너희가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지 않는다 ’ ‘ 누가 너희에게 그런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느냐 ?’ ‘ 너희는 내 성전 바닥만 밟을 뿐이다 ’ ‘ 너희는 무가치한 예배를 더 이상 드리지 말아라 ’ ‘ 너희가 들는 예배도 나는 싫어졌다 ’ ‘ 너희가 주일이나 종교적인 모임을 가지면서도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구나 ’ ‘ 너희가 드리는 내가 싫어하는 예배는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되어 내가 감당하기에도 지쳤기 때문이다 ’( 참고 : 이사야 1:11-14, 현대인의 성경 ).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행한 “ 음란과 더러운 일 ” 에 대해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우리의 수치를 감당해야 합니다 ( 참고 : 에스겔 16:52, 58, 현대인의 성경 ).

우리의 힘을 빼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힘을 빼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의 손에 우리를 넘기셔서 우리로 하여금 여러 종류의 멍에를 지게 하시므로 우리의 힘을 빼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 참고 : 예레미야 애가 1:14, 현대인의 성경 ).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죄가 내 머리까지 넘쳐 무거운 짐같이 되었으므로 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죄가 내 머리까지 넘쳐 무거운 짐같이 되었으므로 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죄가 내 머리까지 넘쳐 무거운 짐같이 되었으므로 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   그로 인해 내 몸이 병들었고 내 몸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 .   내가 피곤하고 지쳤으며 심적인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신음하며 하루 종일 슬픔으로 다닙니다 .   나를 사랑하는 자들과 친구들이 내 상처 때문에 나에게 가까이하기를 꺼려하고 내 가족까지도 나를 멀리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신뢰합니다 .   주님은 나의 소원을 아십니다 .   주님께서는 나의 탄식을 들으셨습니다 .   내 주 하나님이시여 , 나에게 응답하소서 ( 시편 38:3-11, 15, 현대인의 성경 ).

비록 우리를 반대하므로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할지라도 ...

비록 우리를 반대하므로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할지라도 ...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 재건 공사를 반대하므로 비웃고 조롱하는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오 .   우리는 그의 종이므로 이 성벽을 재건할 생각이오 .   하지만 당신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주장할 권리나 명분이 아무것도 없소 ”( 느헤미야 2:20,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사사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실 때 비록 우리를 반대하므로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할지라도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우리 스스로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충분히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 우리를 도울 자 ” 되시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 우리 하나님 , 우리를 도와 주소서 .   우리가 주님을 의지합니다 ’ 라고 간구하면서 그 큰 난관을 당면하는 것입니다 ( 참고 : 역대하 14:11,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일라로 갔었을 때 자기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이 자기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사무엘상 23:9,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 사울이 나 때문에 그일라로 내려와서 이 성을 쑥밭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을 주의 종이 들었습니다 .   그일라 주민들이 나를 사울에게 넘겨주겠습니까 ?   아니면 내가 들은 대로 사울이 정말 내려옵니까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 주의 종에게 일러 주소서 ”(10-11 절 , 현대인의 성경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 사울이 내려올 것이다 ” 하고 대답하셨고 (11 절 , 현대인의 성경 ) 다윗은 “ 그러면 그일라 주민들이 나와 내 부하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준다는 말입니까 ?” 하고 다시 묻자 하나님께서는 “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12 절 ,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분명히 그는 그일라 사람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출해줬는데 어떻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과 다윗의 부하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줄 수 있는지 충분히 분노하고 원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그 이유는 다윗은 사울 왕에게 잡혀서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부하들도 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을 무릎 쓰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어떻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사울 왕에게 넘겨줄 수 있단 말입니까 .   다윗이 그들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   그러나 그일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정도로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 죽이고 싶어했기에 다...

아무리 능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큰 문제를 당면했다 할지라도 ...

아무리 능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큰 문제를 당면했다 할지라도 ...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 아무리 능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큰 문제를 당면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는 그 큰 문제를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 참고 : 신명기  9:1-3, 고린도전서 10:13, 현대인의 성경 ).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힘든 위기에서도 ...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힘든 위기에서도 ...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고 생각할 때 우 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힘든 일을 접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제일 힘든 위기에서도 건져 주신 것을 기억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 이유는 과거의 제일 힘든 위기에서도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접한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힘든 위기에서도 반드시 건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 : 신명기 7:17-19; 고린도전서 10:13;  히브리서 13:8, 현대인의 성경 ).

큰 위기를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

큰 위기를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 우리가 당면한 이 큰 위기를  우리가 감당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줄도 모를 때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 대하 20:12)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9 절 ).   그 이유는 주님의 손에는  권세와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6, 9 절 ).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   그 이유는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기에 때문입니다 .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고전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