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 바리새인들 ” 과 같은 의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그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 죄인 ” 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를 부르셔서 “ 나를 따르라 ” 고 말씀하신 후 그의 집에서 “ 많은 세리와 죄인들 ” 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입니다 . 이렇게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참고 : 마태복음 9:9-13).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2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 (1)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 참고 : 에베소서 2:4). (2) 긍휼이 여기는 우리는 복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 : 마태복음 5:7).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범죄하는 그 사람입니다 . 죽어야 할 사람은 바로 범죄하는 그 사람입니다 . 아들이 아버지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가 아들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의로운 사람의 의에 대한 보상도 자기에게 돌아가고 악인의 악에 대한 형벌도 자기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 에스겔 18:20, 현대인의 성경 ).
그는 자기 아버지의 죄로 죽지 않고 분명히 살 것입니다 . 만일 그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고 가정해 볼 때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범한 모든 죄를 보았으면서도 그런 죄를 범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그는 자기 아버지의 죄로 죽지 않고 분명히 살 것입니다 . 이렇게 공정하고 옳은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모든 법을 준수하는 의로운 사람은 반드시 살 것입니다 ( 에스겔 18:14, 17, 19, 현대인의 성경 ).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 그 중에 하나는 의인이 악인의 벌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악인이 의인의 상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이것도 헛된 것입니다 ( 전도서 8:14,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살펴보니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을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아무리 애써서 찾는다고 해도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으며 지혜로운 사람이 다 안다고 주장하여도 실제로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17 절 , 현대인의 성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