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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기회입니다. (6)

"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시 119:67, 71). 이러한 깨달음(나의 죄)과 배움(하나님의 말씀)과 지킴( 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 1. 깨달음: 교만함(시119:69), 그릇 행함(67절), 마음의 살찜과 기름덩이(70절) [마음에 지방을 제거하라!: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12959844] 2. 배움: 자녀들의 위기를 통해 저는 선하신 주님께서(68절) 저를 선대하사(65절) 가르쳐주신(68절) 시편 63편 3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71절).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째 아기 주영이를 추모하면서 ...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262767368] [금년 2019년 한 해를 영원히 과거로 보내기에 앞서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756284213] 3. 지킴: https://youtu.be/i6TfokavYN4?si=P1E4vvk_bnPOvabx

"왜 미국 주류 개신교는 몰락의 길에 들어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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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 주류 개신교는 몰락의 길에 들어섰는가?



올해는 한국 선교 140주년이 되는 해이다. 1895년,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미국 주류 교단의 파송을 받아 조선 땅을 밟았다. 이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복음이 전해졌고, 근대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 교육은 훗날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언더우드를 파송했던 미국북장로교회의 후신인 미국장로교회(PCUSA)가 해외선교회를 공식 폐쇄했다. 표면의 이유는 재정난이라 하지만, 더 깊은 원인은 종교 다원주의 신학이 교단 내부에 뿌리내리면서 해외 선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데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2월 26일에 퓨 리서치 센터가 발표한 ‘미국의 종교 지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장로교(PCUSA), 성공회(ECUSA), 복음주의루터교회(ELCA) 등 미국의 전통 주류 교단에 속한 인구는 이제 전체의 11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2007년 이후 40퍼센트가 줄어든 수치다. ELCA만 보더라도, 1988년 출범 당시 500만 명이 넘던 교인이 현재는 300만 명 이하로 감소했다. 게다가 2050년에는 6만 7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예배당은 여전히 장엄하고 부동산 자산은 풍부하지만, 좌석은 텅 비고 헌금과 인적 자원은 말라가고 있다.

미국 시골의 주류 개신교회에 가보면 회중의 대부분이 고령자이며 교회 문을 닫는 것은 시간 문제인 곳이 많다. 어떤 곳은 건물만 남아 겉모습만 유지한 채, 그 안의 신앙은 사라져 버렸다. 한때 거대한 신앙의 구조물이던 주류 교회가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원인 1: 기독교 복음의 정치 종속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였던 칼 트루먼(Carl R. Trueman)은 미국 주류 교회가 몰락한 첫 원인으로 ‘복음의 정치 종속’을 지목한다. 20세기 초중반까지 미국의 주류 개신교회는 반공주의를 전파하며, 오늘날로 치면 우파 정치 진영의 시녀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주류 개신교회는 베트남 전쟁 반대와 평화운동, 시민권 운동에 동참하면서 좌파 정치와 진보 노선으로 선회했고 지금까지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트루먼은 주류 개신교회가 시대의 정치 풍향에 따라 우파와 좌파를 오가며 스스로를 특정 정치 노선의 대변자로 자리매김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복음이 정파나 이념을 대변하는 ‘종교형 시민단체’ 역할에 머물렀을 때, 교회는 정체성을 잃고 성도는 교회를 떠나는 비극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진보적 보수 그리스도인(Republocrat: Confessions of a Liberal Conservative)>을 통해 스스로 민주당원임을 밝히고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를 적극 권했던 트루먼조차,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의 과도한 정치 개입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내놓고 있다.

“교회는 세상에 대한 믿음의 예언자적 증인이 되기보다, 세상 문화가 요구하는 미덕의 신호에 굴복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세상과의 차이를 자랑하지 않고, 세상과의 유사성을 자랑했다. 관련성을 추구하다가, 누구에게나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른 데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교회에서 들을 필요가 있을까?”

원인 2: 복음의 세속화

두 번째 원인은 복음의 세속화다. 유럽 사회는 19-20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급속히 쇠락한 유럽 교회는 교회를 살리기 위한 시도로, 복음을 사회에 유용한 가치로 포장해 설득하려고 시도했다. 그 대표적 예가 독일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이 제시한 “비신화화(demythologizing)”다. 그는 현대인이 수용할 수 있도록 성경의 초자연적 요소를 윤리적·심리적·철학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복음의 초월성과 구속의 역사성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미국 주류 개신교회 역시 이를 따라 복음을 사회 정의·인권·정치 의제를 위한 ‘종교적 언어’로 번역하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예언자적 선포는 줄어들었고, 세속 담론에 대한 ‘종교적 포장’이 늘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고유한 메시지를 잃었고, 세상과의 연결성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복음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복음주의루터교회(ELCA)의 지난 40년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교단 지도부와 신학교는 인종 정의, 동성애자 권리, 정치적 올바름(PC), 다양성·형평성·포용(DEI) 의제에 집중했지만, 정작 회중이 직면한 실업, 가정 해체, 지역 공동체 붕괴 같은 문제들을 외면했다. 정치 양극화가 심한 미국에서 교회는 또 하나의 정치 전장이 되었고, 초월적이고 복음적인 신앙을 기대하던 이들은 발길을 끊었다.

원인 3: 선교 사명의 상실

세 번째 원인은 선교와 전도 사명의 상실이다. PCUSA의 해외선교회 폐쇄 결정은 단순한 재정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종교 다원주의에 뿌리 내린 ‘선교 회피’라는 주류 신학의 논리적 결론이었다. 더 이상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마 28:19-20)는 지상명령이 교회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미국의 주류 개신교회는 세상 정치의 대안이 되려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들은 복음의 유일성을 상실했다. ‘예수 믿으라’는 선포, 전도, 선교는 제국주의의 잔재이자 종교를 강요하는 폭력이라는 인식이 복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상실한 것이다.

원인 4: 부유한 자산, 빈약한 신앙

네 번째 원인은 여전히 주류 개신교회는 부동산과 유산 등의 기금이 풍부하여 그 위기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산 대부분은 교회의 현 신학 방향을 알지 못한 채 기부한 고령 신자들의 유산이다. 그러니 화려한 예전과 전례는 유지되지만, 그 안의 믿음은 이미 전복되어버렸다. 『스펙테이터 월드』 8월호에서, 필라델피아의 유나이티드 루터 신학교(ULS) 이사였던 크리스 몬딕스(Chris Mondics)는, 목사·교회 지도자·신학자들이 교회를 자신들의 정치 신념을 실현하는 도구로 삼을 때, 그것이 어떻게 미국복음주의루터교회(ELCA)를 황폐하게 만들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교회 건물은 대부분 텅 비어 있으며, 진보 이념에 의해 속이 비어 버린 이 기관들은 이제 가짜 마을(Potemkin village)에 불과해질 위험이 있다.”

한국 교회가 새겨야 할 경고와 교훈

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 안의 정치 양극화와 대립은 미국 못지않게 치열하다. 우파와 좌파로 갈라진 갈등 속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또한 오늘의 한국 교회는 세상에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신학을 철학·사회학·심리학으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에게 이해 가능하고 유용한 지식으로 보이기를 원하다 보니,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설교는 사회 주류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 결과, 복음은 사라지고 인간의 유익과 심리를 달래는 지식이 기독교적 용어를 입은 채 재생산되고 있다.

선교 현장은 또 어떤가? 최근 막을 내린 ‘선교한국’ 대회에는 과거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 선교 관심자와 헌신자가 모였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교사의 다수가 50대 이상이며, 20·30대 선교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도시의 비싼 땅 위에는 여전히 웅장한 교회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곳곳에 기도원과 교회 수련원이 눈에 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는 절과 교회 수련원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출석 성도는 줄고 고령 성도만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도, 교회의 막대한 자산과 재정은 교회의 문제점을 시급한 문제점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미국 주류 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전조가 곳곳에서 보인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붙들고 회복해야 할 것은 신앙의 본질과 복음의 내용이다. 몰락의 길에 들어선 미국 주류 개신교회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정치 성향과 같은 비본질에 교회와 사역자가 집착했다가는 복음 공동체인 교회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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