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임무는 예수님의 복음을
불신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마가복음16:7-8)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마태복음
28장 7-8절 말씀입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누가복음
24장 8-10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a)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이 여자들”인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
및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눅24:10)에게 주어진 임무는 예수님께서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7절; 9:22 참고)하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마28:7)는 말을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에게 빨리 가서(7절) 알려 주는 것(막16:7, 현대인의 성경)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 여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참고: 호크마).
(i)
흥미로운 점은 마태는 “그의 제자들에게”(마28:7)라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눅24:9)라고 기록한 반면에,
마가는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막16:7)라고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는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이라고 기록하였는데 마가만 예수님의 제자들과 “베드로”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왜 마가는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사도들) 중에 “베드로”를 유난히 언급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것은 마가의 자료의 상당 부분이 베드로로부터 나온 것임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탁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아 열 한 제자의 무리 속에 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호크마).
·
마가는 베드로를 따로 분리시켜 그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함으로써 베드로의 대표적 불신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26:69-74).
실제로 베드로는 세번에 걸쳐서 예수를 부인하기까지 했었던 것입니다(14:66-72).
그에 반해 마태는 베드로를 따로 언급하지 않고 제자들 속에 포함시켜 말함으로써 제자들 모두의 공동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혹 이 말씀이 책망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두려움과 실망 가운데서 고독해하고 있을 제자들에게 보내는 기쁨의 소식이라고 해도 베드로에 대한 특별성이 언급되지 않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우
`주의 부활'이라고 하는 기쁨의 소식은 각각의 제자들 모두에게 동일한 기쁨이 됨을 말해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호크마).
(ii)
이것이 저에게 주는 교훈은 주님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와 같이 실패한 주님의 종인 저 같은 목사에게도 예수님의 기쁜 소식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소식을 전해주시길 원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저나 여러분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b)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할 때 “이 여자들”(눅24:10)은 몹시 놀라 떨며(막16:8) 예수님의 무덤에서 도망쳐 나와(8절, 현대인의 성경)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하였습니다(마28:8).
(i)
그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에서의 사건과 천사의 메시지를 전해 듣고 몹시 놀라 떨었고 무서움과 더불어 큰 기쁨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녀들의 혼합된 심리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8장 8절에서 “무서움”과 “큰 기쁨”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대비시킴으로써 한편은 천사의 임재를 위시한 초자연적인 사건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에 접하여 “큰 기쁨”을 느끼고 있음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이것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건을 체험할 때 생겨나는 심리 상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바 초자연적 사건 앞에 인간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나,
그 사건이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자각할 때 한없는 기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모순된 감정이 통일되면서 인간은 진정한 신앙적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호크마).
(ii)
마가복음에서는 여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천사가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한 말(막16:7)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마태복음에서는 여인들이 천사의 말을 들은 후
`큰 기쁨'에 차서 천사의 고지 사항을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가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마28:8). 이것은 마가와 마태의 교훈적 강조점이 다름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
마가는 예수의 측근들에게 있는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로마의 혹독한 탄압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달아날 위기에 처해있는 마가의 공동체에게 제자들처럼 나약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동시에 신앙을 지키지 못한 성도들에게는 제자들도 실패했었기 때문에 평범한 신앙인들은 더더욱 그럴 수 있는 일이므로 한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말라고 하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반면 마태 공동체의 경우는 마가에 비해 덜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어두운 면보다는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을 기념하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뜻에서 기쁨의 요소를 강조하는 것입니다(호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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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승리 공동체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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