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고난은 기회입니다. (6)

"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시 119:67, 71). 이러한 깨달음(나의 죄)과 배움(하나님의 말씀)과 지킴( 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 1. 깨달음: 교만함(시119:69), 그릇 행함(67절), 마음의 살찜과 기름덩이(70절) [마음에 지방을 제거하라!: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12959844] 2. 배움: 자녀들의 위기를 통해 저는 선하신 주님께서(68절) 저를 선대하사(65절) 가르쳐주신(68절) 시편 63편 3절 말씀과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71절). [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째 아기 주영이를 추모하면서 ...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262767368] [금년 2019년 한 해를 영원히 과거로 보내기에 앞서 ...: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756284213] 3. 지킴: https://youtu.be/i6TfokavYN4?si=P1E4vvk_bnPOvabx

주일에 여인들의 값비싼 헌신

주일에 여인들의 값비싼 헌신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마가복음16:1)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마태복음28 1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누가복음 24 1 말씀입니다: “안식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요한복음 20 1 말씀입니다: “안식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사복음서 말씀들을 종합해서 묵상합니다:

 

(a)   안식일이 지나매”(16:1)라는 말씀을 마태는 안식일이 지나고 안식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28:1)라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안식 첫날 새벽에”(24:1)라고 기록하였으며, 요한은 안식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20:1)라고 기록하였습니다.

 

(i)                  기록들을 종합해서 묵상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시 살아나신 ) 안식일인 토요일이 지나고 안식 첫날인 일요일 새벽인 아직 어두울 때에라고 말할 있습니다. 

 

·       이날은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이후로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인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던 유대인의 전통을 깨고 예수께서 부활하신 , 일요일(주님의 날인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20:7) “ 주간의 첫날(안식 첫날)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회가 지키고 있는 주일의 기원입니다(참고: 호크마).

 

-          이날은 역사상 최초의 주일을 가리킬 아니라 구약의 안식일이 예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주일로 대체되어 지키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의 안식일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주일은 예수께서 세상을 다시금 새롭게 창조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라 있으니 바로 여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주일을 성수하는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호크마).


n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더이상 안식일이 시간적 구속력을 강요하는 율법적 멍에가 아니라는 사상이 보편화되고 있었습니다( 2:16).  그들은 안식일의 기본 정신은 폐기하기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를 주는 '안식 첫날'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인들이 태양의 (Sun day) 인정했던 주간의 첫날이 A.D.321 콘스탄틴(Constantine, 274-337) 대제에 의해 공휴일화 되면서 날이 '의로운 태양'( 4:2)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굳어진 듯합니다(호크마).

 

(b)   “…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첫날 매우 일찍이 돋을 때에 무덤으로 가며”(16:1-2)라고 마가는 기록하였는데, 마태는 “…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28:1)라고 기록하였고, 누가는 “…  여자들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24:1)라고 기록하였고, 요한은 “…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20:1)라고 기록하였습니다.

 

(i)                  기록들을 종합해서 묵상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들어가니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24:3)]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1, 참고: 16:1)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16:1; 28:1; 20:1) 다른 마리아”(28:1)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16:1) 살로매”(16:1)인데 누가는 여자들”(24:1)이라고만 기록한 반면에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 사람만 언급하였습니다(20:1).

 

·       누가의 경우 여자들”(24:1)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23:49, 55, 현대인의 성경)[참고: “(예수님)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무리”(27)]로서 예수님의 무덤과 시체를 어떻게 모셔 두었는가를 이미 두고 집으로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한 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여자들이었습니다(55-56, 현대인의 성경).

 

·       요한의 경우 막달라 마리아”(20:1) 언급한 이유는 아마도 요한은 방문자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가 핵심 인물이었기에 그녀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기록한 같습니다(참고: 호크마). 


-          막달라 마리아란 여인은 한때 일곱 귀신에 들려 고통을 받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이후 예수님을 따랐던 여제자격의 인물인데( 16:9; 8:2),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을 따르며 수종들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끝까지 남아 이를 지켜보았을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19:25)(호크마).


n  대부분의 제자와는 달리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근처에 머물렀습니다.  마태는 "그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도 있었다..."(27:56)라고 기록하고,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곁에 있는 마리아를 특별히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 19:25).  그녀의 용기는 진정한 제자도는 상황이 적대적으로 변할 때에도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또한 그녀의 존재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으셨다는 목격자 증언을 제공하는데, 이는 사도적 설교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인터넷).

 

(ii)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16:1)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24:1) 예수님의 무덤에 이유는 향품으로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서였습니다(16:1, 현대인의 성경).

 

·       유대인의 장례는 신속하게 매장하고, 시신을 세마포로 감싸고, 부패를 지연시키고 냄새를 가리기 위해 마른 향료로 둘러싼 것이었습니다(11:39-44 참조).  몰약과 침향(19:39) 흔했지만, "향료"에는 값비싼 발삼이나 나드 향료도 포함되었을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시작한 일을(38-40) 완수하려는 여인들의 의도는 관습적인 경건함과 가족에 대한 의무를 반영합니다(인터넷).

 

·       그녀들의 의도는 제자들의 헌신을 강조하고 무덤의 배경을 마련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요한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이미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았다”( 11:2) 기록하는데, 예수님은 이를 자신의 장례를 앞둔 준비로 해석하셨습니다( 12:7).  따라서 표현은 사랑의 마지막 역할과 죽음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붙잡아 없다는 선포를 모두 함축합니다(인터넷).

 

-          누가복음 7 38(“예수의 뒤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요한복음 12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여인이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붓는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우 모두 기름 부음은 신앙의 개인적, 희생적 표현입니다.  누가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여인의 눈물과 입맞춤, 그리고 끊임없는 기름 부음을 회개와 감사의 생생한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요한은 베다니 마리아의 행동을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에 대한 예언적 인정으로 묘사합니다.   사건들은 신자들에게 예배에는 값비싼 헌신이 필요하며, 그리스도께서는 겸손한 사랑으로 부어진 가장 귀한 물질을 받으실 자격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인터넷).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