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기회입니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
제가 지난 주에
2019년 6월에 “기혼여성
72% ‘부부갈등 해결 안 되면 이혼이 낫다’”라는 기사를 읽고 쓴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그 기사 내용 중 이 한 부분만 나눕니다:
“연구팀은 ‘자녀의 존재와 상관없이 결혼생활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장애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이혼을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여기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매우 일반화돼 있는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인터넷). 제가 쓴 글도 나눕니다:
"이혼을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여기는 경향
... 매우 일반화돼 있는 점",
참으로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부 갈등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두 죄인이 만나서 결혼해서 함께 사는데 두 배로,
세, 네 배로 죄가 들춰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부부 갈등은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부 갈등을 안하려고 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그 노력보다 부부 갈등을 어떻게 주님 안에서 해결해 나아가야하는지를 수 많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 계속해서 배워 나아가고자 하는 헌신과 각오/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무 쉽께 부부 갈등의 해결하는 방안으로
"이혼"을 선택하고 있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심히 염려됩니다.”
제가 2019년 3월 4일에 “부부 갈등의 유익한 점은 …”이란 제목 아래 쓴 글입니다:
“부부 갈등의 유익한 점은 …”
(7개)
1.
서로의 다른점을 들춰내 줍니다.
2.
서로의 단점들을 잘 보게 됩니다.
3.
서로의 죄성을 들춰내 줍니다.
4.
서로의 자라난 배경까지 알아 갈 수가 있습니다.
5.
서로의 습관이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을 알 수가 있습니다.
6.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됩니다.
7.
서로에게 무슨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부부 갈등을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선
... (7개)
1.
서로의 다른점을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서로의 단점들을 보는 가운데서 서로의 장점을 의지적으로 더 열심히 보고 감사하며 칭찬하는 가운데 서로의 단점들을 서로 보완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3.
서로의 죄성을 보면서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주님이 나를 용서하셨듯이 부부가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4.
서로의 자라난 배경을 알아가면서 서로의 부모님에 대해서 알아가므로 부부가 양가 부모님의 사돈 관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5.
서로의 습관이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을 알아갈 때에 서로가 고치려고 하던지 비난하지 말고 성경 말씀에 근거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여 믿음으로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기대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6.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내려놓으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므로 서로의 필요성을 채워주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7.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성령님의 열매인 절제를 사모하면서 무슨 말과 행동을 하려고 애쓰기보다 무슨 말과 행동은 서로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부지런히 그리고 겸손히 배워가면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5장 36-41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을 정도로(39절) 심하게 갈등을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그들이 피차 갈라섰을 정도로 심하게 갈등한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설마 그 두 사람이 그 정도로 심하게 다투었는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그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크게 우선
3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인터넷):
첫 번째 단계는, 바나바가 바울의 보증인이 되어준 것입니다.
교회를 핍박하였던 사울(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예루살렘 교회를 찾았을 때,
제자들은 과거 교회를 박해하던 그를 두려워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모두가 기피하던 바울의 손을 잡고 사도들에게 데려가 그의 회심이 진심임을 보증해 준 사람이 바로 사도 바나바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 26-27절 말씀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어떻게 바나바는 바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에게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일까요? 바나바가 그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울의 회심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과 바나바 특유의
'영적 담대함 및 포용력'
덕분이었습니다(인터넷):
(1)
철저한 사실 확인
(객관적 증거 확보)
바나바는 소문만 듣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 일어난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Fact)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27절에 기록된 바나바의 변호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
주께서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바울이 다메섹에서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했는지 바나바는 이 명확한 인과관계와 증거를 확인했기 때문에,
바울의 회심이 거짓이나 위장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2)
성령 충만함이 준 영적 담대함
성경은 바나바를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행
11:24).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을 이겨낸 것은 그의 영적인 상태 덕분이었습니다. 성령의 분별력을 통해 바울을 박해자가 아닌,
'하나님이 이방인을 위해 택하신 그릇'으로 바라보는 영적 안목이 있었습니다.
(3)
'위로의 아들'이라는 성품과 중재자 역할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지만,
사도들은 그를 격려하고 세워주는 성품을 보고
'바나바(번역하면 위로/권면의 아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과거에 집중하기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내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칠 만큼 신뢰와 영향력이 두터웠던 인물이었기에,
그 두터운 신용을 바탕으로 바울의 강력한 신원 보증인 역할을 자처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확실한 사실(이성)'과 '성령이 주신 담대함(영성)', 그리고 '사람을 품는 사랑(인성)'이 결합하였기에 모두가 두려워 도망치던 바울의 손을 잡고 예루살렘 교회의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합류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인터넷).
두 번째 단계는, 바나바는 바울을 사역의 무대로 이끌어낸 멘토였습니다.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약
10년간 묻혀 지내고 있을 때,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는 바울을 찾아가 공동 목회자로 초빙했습니다(행11:25-26). 바나바는 바울의 신학적 깊이와 능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사역의 기회를 열어준 진정한 멘토였습니다.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함께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바나바는 바울의 제1차 선교(전도) 여행을 이끈 최고의 동역자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합니다(행13장). 초기에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다가
(바나바와 사울),
선교가 진행되면서 바울의 영적 영향력이 커지자 성경의 기록 순서가
'바울과 바나바'로 바뀌게 됩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후배였던 바울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시기하지 않고 묵묵히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증인이요 멘토요 최고의 동역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이 왜 피차 갈라섰을 정도로 심하게 갈등한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두 사람(사도)가 그토록 깊은 신뢰 관계였음에도 심하게 다투고 갈라선 표면적인 이유는
'마가 요한을
2차 전도 여행에 데려갈 것인가'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두 사람의 성격,
사역적 가치관,
그리고 마가 요한과의 개인적 관계가 복합적으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마가 요한의 과거 무단이탈
(신뢰의 문제)
사건의 발단: 마가 요한은
1차 전도 여행 당시 두 사도를 수행하는 조력자로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밤빌리아 지역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역을 중단하고 예루살렘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행 13:13).
바울의 입장: 바울은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험난한 선교 길에,
한번 무단이탈하여 팀의 사기를 떨어뜨린 사람을 다시 데려가는 것은 선교의 엄중함과 책임감에 어긋난다고 보았습니다.
(2)
가치관과 사역 스타일의 충돌
(원칙 vs 은혜)
바울 (사명과 원칙 중심):
바울은 목표 지향적이고 단호한 성품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위로보다
'하나님의 사역을 완수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다시 세웠다가 선교 전체를 그르칠 수 없다는 완고한 원칙주의적 시각을 가졌습니다.
바나바 (사람과 회복 중심):
바나바는 타고난
'위로자'이자 사람을 세우는 은사자였습니다. 과거 낙인찍혔던 바울을 믿고 세워주었듯,
실수한 마가 요한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어 영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주의였습니다.
(3)
사적인 관계와 안디옥 사건의 앙금
(정서적 배경)
친족 관계: 골로새서 4장 10절을 보면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조카 또는 사촌)이었습니다. 바나바 입장에서는 혈육이자 영적 후배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정서적 책임감이 더 컸을 것입니다.
안디옥에서의 외식 사건:
사도행전 15장의 갈등 직전,
안디옥 교회에서 베드로와 바나바가 유대주의자들의 눈치를 보며 이방인들과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
'외식(위선)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바나바를 향해 엄하게 책망한 적이 있음(갈
2:11-13). 비록 복음 안에서 해결되었으나,
두 사람 사이에 은연중 사역 방식에 대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이 갈등은 어느 한쪽이 틀려서가 아니라,
'선교라는 대의(바울)'와 '영혼의 회복(바나바)'이라는 두 가지 올바른 가치가 충돌했기 때문에 타협점 없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충돌과 치열한 대립이 지금도 사역자들(목사님들, 선교사님들, 등등)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역 현장에서 흔히 보는
'바울형' vs '바나바형'의 충돌입니다. 현재의 교회나 선교지에서도 이 두 기질과 가치관의 대립은 늘 존재합니다(인터넷):
(1)
바울형 사역자
(과업 중심,
Mission-Oriented)
주요 관점: 하나님의 일은 탁월해야 하며,
영적 전쟁터인 선교지와 목회 현장에는 철저히 훈련되고 헌신된 준비된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
일어나는 갈등: 준비되지 않거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는 팀원,
혹은 사역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냉정하게 잘라내거나 징계하려 할 때 갈등이 발생합니다.
(2)
바나바형 사역자
(관계 중심,
People-Oriented)
주요 관점: 아무리 사역이 중요해도 한 영혼이 실족하면 무슨 소용인가.
실패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끝까지 품고 세워주는 것이 진짜 복음이다.
일어나는 갈등: 공동체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계속 감싸 안아,
전체 사역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거나 다른 팀원들에게 부담을 줄 때 갈등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치열한 대립이 주는 현대적 교훈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가 의견이 대립할 때
'상대방이 틀렸다'거나 '영적으로 미성숙하다'고 비난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바울과 바나바 중 어느 한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두 사람의 대립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두 가치 모두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울만 있으면 교회는 군대처럼 딱딱해지고 상처받은 이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집니다.
반대로 바나바만 있으면 교회는 사역의 추진력을 잃고 느슨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이러한 갈등을 통한
'선교의 확장'의 기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은,
이 치열한 대립과 갈라섬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 팀이
'한 팀'에서 '두 팀'으로 배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소아시아와 유럽(마케도니아)으로 향했고,
바나바와 마가는 구브로 섬으로 향했습니다. 인간의 한계와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은 각자의 가치관에 맞는 선교 사역을 독립적으로 성공시키셨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사역자들도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대립할 때,
상대를 정죄하기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은사를 가졌을 뿐이며,
하나님은 이 다른 색깔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냉정함이 마가를 정신 차리게 했고,
바나바의 따뜻함이 마가를 치료했듯이 말입니다. 결국 마가 요한의 동행 문제를 놓고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고 갈라섰지만
(행 15장), 결별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존중은 변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후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나바를 여전히 자신과 동등한 사도의 권위를 가진 자로 존중하며 언급합니다(고전
9:6). 그리고 바울은 인생 말년에 바나바가 끝까지 챙겼던 마가 요한을 향해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인정하며,
바나바의 포용과 안목이 옳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습니다(딤후 4:11).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 “갈등”이란 주제에 대해 잊지 못하는 강의 내용 하나는 바로 한국 서울 할렐루야 교회를 시무하셨던 김상복 목사님이 ‘갈등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아마 그 때 그 분은 ‘갈등 신학’이란 말까지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금 인공지능에게 김 목사님의 갈등에 관한 견해를 물어보았습니다. 인공지능에 답변입니다(인터넷):
(1)
갈등의 정의:
"갈등은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실이다."
김 목사님께서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갈등이 생기는 것
= 죄를 짓거나 영적으로 미성숙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을 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다양성의 결과: 갈등은 하나님이 인간을 각각 다르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도 갈등했다:
성경의 위대한 두 사도조차도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잘 믿고 성령이 충만해도 기질,
우선순위, 사역의 성향에 따라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2)
김상복 목사님의 갈등 해결
3단계 (화해의 신학)
김 목사님께서는 갈등 그 자체보다
'갈등을 대하는 태도'가 영성을 결정한다고 보셨습니다.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늘 제시하셨던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다름'을 인정하기
(Accpetance)
상대방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은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르게 보기 때문'임을 인정하는 단계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처럼 각자의 은사와 관점이 다름을 먼저 수용해야 합니다.
2단계: '정죄'를 멈추고 경청하기
(Listening)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를
'틀린 사람'으로 정죄하는 순간 갈등은 파괴적으로 변합니다. 상대방의 대의(바나바의 사람 중심,
바울의 과업 중심)가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3단계: 주권적 분립 혹은 창조적 연합
(Creative Resolution)
만약 도저히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면,
서로를 축복하며
'아름다운 결별(분립)'을 하는 것도 성경적인 해결책입니다. 억지로 하나 됨을 강요하다가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보다,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흩어져 사역을 확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3)
"극단이 지배하는 시대는 지났다"
김상복 목사님은 특히 한국 교계와 사회의 고질적인
'흑백논리'와 '양극화 현상'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내가 100% 옳고 상대가
100% 틀린 경우는 없다. 사역자들 사이의 갈등도 대부분 서로의
'좋은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복음 안에서 넓은 가슴을 가질 때 갈등은 파괴가 아닌 창조적 에너지가 된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도 바울과 사도 바나바의 갈등은 무슨 기회였고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사역의 지평이 넓어지는 기회’이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숙을 이루는 기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특히 현대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에게 주는 핵심적인 기회의 의미와 구체적인 삶의 적용을
3가지입니다(인터넷):
(1)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두 사도의 갈등은
'무슨 기회'였습니까?
(a)
선교가
'배가(Multiply)'
되는 확장기회였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한 팀이 깨진 위기였지만,
하나님의 손길 위에서 선교 팀은 두 팀이 되었습니다. 바울 팀은 유럽으로 향했고,
바나바 팀은 구브로로 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영토가 동시에 넓어지는 창조적 분립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b)
실패자가
'위대한 사역자'로 거듭나는 회복기회였습니다.
바울의 냉정한 거절은 마가 요한에게 영적인 경각심(Tough
Love)을 주었고,
바나바의 따뜻한 품어줌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낙오자였던 마가가 최초의 복음서 기자가 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c)
‘진리와 사랑’의 균형을 완성하는 성숙기회였습니다.
바울의 ‘타협 없는 진리와 사역의 철저함’,
바나바의 ‘끝없는 사랑과 사람 중심의 포용’이라는 두 가지 핵심 가치가 교회 공동체 안에 함께 공존해야 함을 보여주는 영적 체력 다지기의 기회였습니다.
(2)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을까요?
(a)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인정하십시오
(Acceptance)
사역 현장이나 가정,
직장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 상대를 무조건
'악'이나 '틀린 사상'으로 정죄하지 마십시오. 김상복 목사님의 갈등 신학처럼,
갈등은 대부분
'나와 다른 성향의 올바른 가치(과업 vs 사람)'가 충돌하는 자연스러운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의 출발점입니다.
(b)
갈등의 순간에
'하나님의 더 큰 주권'을 신뢰하십시오
(Faith)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동역자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갈라 서야 하는 아픔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이 상황을 통해 더 선한 일을 계획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한계마저도 선교의 도구로 부수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c)
앙금을 남기지 않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십시오
(Respect)
바울과 바나바는 치열하게 다투고 갈라섰지만,
결코 상대방을 비방하는 파당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훗날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바나바의 권위를 높이고,
마가를 향해
"내게 유익한 자"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갈등 이후에도 상호 존중과 화해의 끈을 놓지 않는 성숙한 태도가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내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의 치열한 대립을 통해,
갈등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넓은 가슴을 배우십시오.
진리의 바울과 사랑의 바나바,
이 두 날개가 함께 날아오를 때 비로소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마가 요한과 같은 위대한 영혼을 길러내는 거룩한 터전이 될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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