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이 아빠의 품에 잠든
사랑하는 첫쨰 아기 주영(Charis)이를 추모하면서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1998년 4월 26일, 주일 오후에 교회 사역을 다 마치고
주영이가 누워있었던 엘에이 어린이 병원 중환자실로 갔었을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만 할말이 있다고 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주영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두 가지 선택을 주셨다:
(1) 아기를 빨리 죽게 할 것인지 아니면 (2) 천천히 죽게 할 것인지.
그 때 나는 두 선택다 결론은 아이가 죽는다는 생각에 충격에 휩싸인체 의사 선생님에게 아기를 천천히 죽게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나서 손을 씻고 까운을 입고 병실로 들어갔더니
아내가 아기를 쳐다보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아내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 그 이유는 아기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인 내 아내를 붙들어 주고 계셨음을 엿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날 아내와 함께 주영이를 보고
55일동안 매일 그랬던 것처럼 "예수 사랑하심을" 찬양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 나중에 집으로 가서
아내에게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 다음 날인 1998년 4월 27일 월요일 아침에
나는 성경책을 펴서 읽다가 시편 63편 3절에 은혜를 받았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을 주를 찬양할 것이라."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주님의 영원한 사랑이 주영이의 55일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받은 은혜를 아내하고 나눴고
아내와 함께 주영이를 빨리 죽도록 하자고 결정하였다.
그 의미는 55일 동안 우리 부모의 욕심(?) 속에서
아기가 겪고 있었던 고통을 잘 헤아리지 못했기에
우리는 주영이가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길 원했다.
그래서 결정 후 우리는 병원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의 결정을 알려주고 내 부모님과 형 부부와 여동생에게 연락을 해서 다 중환자실에 모여 마지막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드린 후 모두 다(아내까지도) 옆 방에 가 있었고
나 홀로 주영이 옆에 서 있을 때 담당 간호사가 모든 호수들과 바늘을 뺴고 기계를 끊후
주영이를 내 품에 안겨줬다.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영이를 안았다.
그 때 나는 통곡하였다. 내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나는 통곡하면서 아기를 품에 안고 옆 방으로 갔다. 모두 다 울고 있었다.
딱 한 분, 아버님만 울지 않고 계시다가
나에게 다가오셔서 주영이를 좀 줄수 있는지...
아버님께 주영이를 드렸더니 한 손으로 팔에 안으시고
다른 손으로 주영이의 이마에 대시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셨다.
한 5분 정도인가 있다가 의사가 청진기를 가지고 들어오더니
주영이의 심장 소리를 점검한 후 아이가 잠들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1998년 4월 27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주영이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수 많은 바늘에 찔려 더 이상 여기 저기 바늘 자국이 없게 되었다(나는 성찬식 때마다 예수님의 못자국을 생각할 때 주영이의 수 많은 바늘 자국들을 생각한다).
더 이상 입에 호수를 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는 그리도 주영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더 이상 이런 저런 약물들로 인해 몸이 부어 있을 필요도 없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주영이를 불렀을 때 주영이는 발가락 하나를 움직여 줬다, 이 아빠를 위해.
오늘 주영이의 20주년을 추모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임을 다시금 마음이 새긴다.
이 아빠의 죄로 인하여, 이 아빠가 죽어 마땅한 죄인인데,
이 아빠 되신 고통스러운 55일을 이 세상 중환자실에서만
지내다가 이 아빠의 품 안에 잠든 주영이,
이 아빠는 가슴으로 너를 생각한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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